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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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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는 한편, 군사 및 행정 기능을 담당했던 지방 주요 지역에 쌓은 성이다. 우리나라 서해안 곳곳에는 외적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읍성을 많이 쌓았는데 태안읍성도 이들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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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읍성은 돌로 쌓은 성이다.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는 한편, 군사 및 행정 기능을 담당했던 지방 주요 지역에 쌓은 성이다. 우리나라 서해안 곳곳에는 외적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읍성을 많이 쌓았는데 태안읍성도 이들 중 하나이다.
  
1416년에 태종(太宗)이 사냥을 위해 태안에 행차하였다가 왜구에 의해 황폐화 된 지역의 모습을 보고 복구를 명하여 다음해인 1417년에 태안읍성이 축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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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6년에 태종(太宗)이 사냥을 하기 위해 태안에 행차하였다가 왜구에 의해 황폐화된 지역의 모습을 보고 복구를 명하여 다음 해인 1417년에 태안읍성을 쌓았다.
  
처음 축조되었을 당시의 둘레는 약 728m의 규모였으나 성벽 주변에 민가가 들어서면서 대부분 파괴되었다. 오늘날 남아있는 성벽의 둘레는 약 100m로 온전한 성벽의 높이는 약 4m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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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쌓을 당시의 둘레는 약 728m의 규모였으나 성벽 주변에 민가가 들어서면서 대부분 파괴되었다. 오늘날 남아 있는 성벽의 둘레는 약 144m로 온전한 성벽의 높이는 약 4m 정도이다.
  
과거 기록에 따르면 남문과 동문에 옹성*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나 현재는 동문과 옹성 터만 남아있으며, 읍성 안에는 목애당(牧愛堂)과 근민당(近民堂), 경이정(憬夷亭) 등의 관아시설이 일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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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기록에 따르면 남문과 동문에 옹성*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나 현재는 동문과 옹성 터만 남아  있으며, 읍성 안에는 목애당(牧愛堂)과 근민당(近民堂), 경이정(憬夷亭) 등의 관아 시설이 일부 남아 있다.
  
태안읍성은 조선시대 읍성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현재 남아있는 동쪽성벽은 축조 당시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어 조선시대 읍성의 구조를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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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읍성은 조선 시대 읍성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쌓은 것으로 현재 남아 있는 동쪽 성벽은 그 당시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어 조선 시대 읍성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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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성(甕城) :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벽 밖으로 원형이나 방형으로 돌출되게 쌓은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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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성: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벽 밖으로 원형이나 사각형으로 돌출되게 쌓은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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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alled town, called ''eupseong'' in Korean, was established at an important regional location to protect local residents and serve military and administrative functions. Many walled towns were constructed along the western coast of the Korean Peninsula to defend the area against attacks by Japanese pirates.
 
A walled town, called ''eupseong'' in Korean, was established at an important regional location to protect local residents and serve military and administrative functions. Many walled towns were constructed along the western coast of the Korean Peninsula to defend the area against attacks by Japanese pirates.
  
Among the walled towns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Taeaneupseong was the earliest to be constructed. It is presumed that it was first built during the reign of King Jeongjong (r. 1034-1046) of the Goryeo dynasty (918-1392) and demolished by Japanese pirates. In 1416, King Taejong (r. 1400-1418) stopped here and ordered its reconstruction, and the current fortress wall was constructed in the following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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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ng the walled towns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Taeaneupseong was the earliest to be constructed. In 1416, King Taejong (r. 1400-1418) visited this area and ordered the construction of a walled town, and the current fortress wall was completed in the following year.  
  
 
The fortress wall measured about 728 m in perimeter and had a gate in each of the four cardinal directions. To aid in defense, the south gate and the east gate were equipped with a semi-circular bastion in front of them. It is also said there were four wells inside the walled town.
 
The fortress wall measured about 728 m in perimeter and had a gate in each of the four cardinal directions. To aid in defense, the south gate and the east gate were equipped with a semi-circular bastion in front of them. It is also said there were four wells inside the walled town.
  
Most of the fortress wall was destroyed due to urbanization, as homes were built in the vicinity. Only about 100 m of the wall remains. '''However, the section of the wall where the east gate and its semi-circular bastion were located still remains.''' The best preserved parts of the wall measure about 4 m in h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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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st of the fortress wall was destroyed due to urbanization, as homes were built in the vicinity. Only about 1440 m''' of the wall remains. However, the section of the wall where the east gate and its semi-circular bastion were located still remains. The best preserved parts of the wall measure about 4 m in height.
  
 
Some of the Joseon-period local government buildings remain in the vicinity, including Mogaedang Hall (Chungcheongnam-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138), Gyeongijeong Pavilion (Chungcheongnam-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123), and Geunmindang Hall.
 
Some of the Joseon-period local government buildings remain in the vicinity, including Mogaedang Hall (Chungcheongnam-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138), Gyeongijeong Pavilion (Chungcheongnam-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123), and Geunmindang Hall.
 
*마지만 문장의 "읍성 안에는" 표현은 - 경기정은 읍성 밖에 위치했다고 해서... 안 맞는 말인 것 같아요.
 
*동쪽 성벽이 동문과 옹성 터 등 축조 당시의 모습을 잘 유지하며 남아 있다.
 
*문+옹성 터만 남아 있으면, 당시의 모습은 어떻게 유지된 걸까요? 유지 안 된 거잖아요...
 
*참고 자료에 의하면 144m 남았는데, "약 100m"와 너무 다른 것 같아요. 거의 1.5배...
 
*지금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 하는 것 같은데, 이 내용을 반영해야 되지 않을까요?
 
  
 
===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읍성이란 지방 주요 지역에 쌓은 성으로, 지방 주민들을 보호하고 군사, 행정 기능을 담당하던 곳이다. 한반도 서해안 곳곳에는 외적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이러한 읍성을 많이 쌓았다.
 
읍성이란 지방 주요 지역에 쌓은 성으로, 지방 주민들을 보호하고 군사, 행정 기능을 담당하던 곳이다. 한반도 서해안 곳곳에는 외적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이러한 읍성을 많이 쌓았다.
  
태안읍성은 조선시대 읍성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축조되었다. 정종(재위 1398-1400) 때 처음 세워졌다가 왜구에 의해 황폐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1416년 이곳에 들렀던 태종(재위 1400-1418)이 복구를 명하여 1417년 지금의 태안읍성이 축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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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읍성은 조선시대 읍성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축조되었다. 1416년 이곳에 들렀던 태종(재위 1400-1418)이 읍성을 세울 것을 명하여 1417년 지금의 태안읍성이 축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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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조 당시 성벽의 둘레는 약 728m였으며, 사방으로 성문이 있었고 남문과 동문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벽 밖으로 돌출되게 쌓은 옹성도 있었다. 성 안에는 4기의 우물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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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화로 인해 성벽 주변에 민가가 들어서면서 성벽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성벽의 둘레는 약 144m이다. 동쪽 성벽에는 동문과 옹성 터 등이 남아 있다. 온전한 성벽의 높이는 약 4m 정도이다.  
  
축조 당시 성벽의 둘레는 약 728m였으며, 사방으로 성문이 있었고 성 안에 4기의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남문과 동문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벽 밖으로 돌출되게 쌓은 옹성도 있었다. 도시화로 인해 성벽 주변에 민가가 들어서면서 성벽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동쪽 성벽이 동문과 옹성 터 등 축조 당시의 모습을 잘 유지하며 남아 있다. 현재 남아있는 성벽의 둘레는 약 100m고, 온전한 성벽의 높이는 약 4m 정도이다. 읍성 안에는 동헌인 목애당(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8호), 누정인 경이정(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3호), 내삼문인 근민당 등 일부 관아 건물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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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성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관아 건물로는 목애당(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8호), 경이정(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3호), 근민당 등이 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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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문화유산해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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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태안군 문화유산]]
 
[[분류:태안군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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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충청남도 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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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읍성]]
 
[[분류:2021 영문집필]]
 
[[분류:2021 영문집필]]

2023년 6월 24일 (토) 11:50 기준 최신판

태안읍성
Taeaneupseong Walled Town
태안읍성, 충남도 기념물 제195호 지정, 아시아엔 2020년 9월 10일자 기사.
대표명칭 태안읍성
영문명칭 Taeaneupseong Walled Town
한자 泰安邑城
주소 충청남도 태안군 경이정3길 43-3 (태안읍)
국가유산 종목 충청남도 기념물 제195호
지정(등록)일 2020년 9월 10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63m
웹사이트 태안읍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태안읍성은 돌로 쌓은 성이다.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는 한편, 군사 및 행정 기능을 담당했던 지방 주요 지역에 쌓은 성이다. 우리나라 서해안 곳곳에는 외적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읍성을 많이 쌓았는데 태안읍성도 이들 중 하나이다.

1416년에 태종(太宗)이 사냥을 하기 위해 태안에 행차하였다가 왜구에 의해 황폐화된 지역의 모습을 보고 복구를 명하여 다음 해인 1417년에 태안읍성을 쌓았다.

처음 쌓을 당시의 둘레는 약 728m의 규모였으나 성벽 주변에 민가가 들어서면서 대부분 파괴되었다. 오늘날 남아 있는 성벽의 둘레는 약 144m로 온전한 성벽의 높이는 약 4m 정도이다.

과거 기록에 따르면 남문과 동문에 옹성*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나 현재는 동문과 옹성 터만 남아 있으며, 읍성 안에는 목애당(牧愛堂)과 근민당(近民堂), 경이정(憬夷亭) 등의 관아 시설이 일부 남아 있다.

태안읍성은 조선 시대 읍성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쌓은 것으로 현재 남아 있는 동쪽 성벽은 그 당시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어 조선 시대 읍성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이다.

  • 옹성: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벽 밖으로 원형이나 사각형으로 돌출되게 쌓은 시설.

영문

Taeaneupseong Walled Town

A walled town, called eupseong in Korean, was established at an important regional location to protect local residents and serve military and administrative functions. Many walled towns were constructed along the western coast of the Korean Peninsula to defend the area against attacks by Japanese pirates.

Among the walled towns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Taeaneupseong was the earliest to be constructed. In 1416, King Taejong (r. 1400-1418) visited this area and ordered the construction of a walled town, and the current fortress wall was completed in the following year.

The fortress wall measured about 728 m in perimeter and had a gate in each of the four cardinal directions. To aid in defense, the south gate and the east gate were equipped with a semi-circular bastion in front of them. It is also said there were four wells inside the walled town.

Most of the fortress wall was destroyed due to urbanization, as homes were built in the vicinity. Only about 1440 m of the wall remains. However, the section of the wall where the east gate and its semi-circular bastion were located still remains. The best preserved parts of the wall measure about 4 m in height.

Some of the Joseon-period local government buildings remain in the vicinity, including Mogaedang Hall (Chungcheongnam-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138), Gyeongijeong Pavilion (Chungcheongnam-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123), and Geunmindang Hall.

영문 해설 내용

읍성이란 지방 주요 지역에 쌓은 성으로, 지방 주민들을 보호하고 군사, 행정 기능을 담당하던 곳이다. 한반도 서해안 곳곳에는 외적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이러한 읍성을 많이 쌓았다.

태안읍성은 조선시대 읍성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축조되었다. 1416년 이곳에 들렀던 태종(재위 1400-1418)이 읍성을 세울 것을 명하여 1417년 지금의 태안읍성이 축조되었다.

축조 당시 성벽의 둘레는 약 728m였으며, 사방으로 성문이 있었고 남문과 동문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벽 밖으로 돌출되게 쌓은 옹성도 있었다. 성 안에는 4기의 우물도 있었다고 한다.

도시화로 인해 성벽 주변에 민가가 들어서면서 성벽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현재 남아있는 성벽의 둘레는 약 144m이다. 동쪽 성벽에는 동문과 옹성 터 등이 남아 있다. 온전한 성벽의 높이는 약 4m 정도이다.

읍성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관아 건물로는 목애당(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8호), 경이정(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23호), 근민당 등이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