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부원군 조원길 묘 및 묘표"의 두 판 사이의 차이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잔글 (강혜원님이 옥천부원군조원길묘및묘표 문서를 넘겨주기를 만들지 않고 옥천부원군 조원길 묘 및 묘표 문서로 이동했습니다)
(참고자료)
 
(사용자 4명의 중간 판 8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1번째 줄: 1번째 줄:
{{진행중}}
 
 
{{문화유산정보
 
{{문화유산정보
 
|사진=옥천부원군조원길묘및묘표.jpg
 
|사진=옥천부원군조원길묘및묘표.jpg
 
|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501240000 옥천부원군조원길묘및묘표],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501240000 옥천부원군조원길묘및묘표],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옥천부원군조원길묘및묘표
+
|대표명칭=옥천부원군 조원길 묘 및 묘표
|영문명칭=0
+
|영문명칭=Tomb and Tombstone of Jo Won-gil
|한자=옥천부원군조원길묘및묘표
+
|한자=玉川府院君 趙元吉 墓 및 墓標
|주소=0
+
|주소=
 
|소장처=
 
|소장처=
 
|지정번호=전라북도 기념물 제124호
 
|지정번호=전라북도 기념물 제124호
17번째 줄: 16번째 줄:
 
|수량/면적=2기
 
|수량/면적=2기
 
|웹사이트=[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501240000 옥천부원군조원길묘및묘표],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웹사이트=[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501240000 옥천부원군조원길묘및묘표],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위도=0
+
|위도=
|경도=0
+
|경도=
 
}}
 
}}
  
 
=='''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
===국문===
 +
고려 말의 충신 조원길(趙元吉)의 묘와 봉분 앞에 세워졌던 묘표이다. 묘표는 현재 묘소 아래 비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사진형태 자료. 구체적 내용 파악 불가
+
조원길은 고려 공민왕 18년(1369)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을 두루 지냈다.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1389∼1392 재위)을 옹립한 공으로 공신에 책봉되었으며, 순창의 옛 이름인 옥천의 이름을 따 옥천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러나, 곧 이성계를 중심으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순창에 은거하였다.  
===수정 국문===
 
====초고====
 
조원길묘는 이건곡마을에 옥천조씨 시조의 설단(設壇)과 함께 있다. 조원길과 옥천군부인 조씨를 함께 장사한 봉토분으로 묘역의 형태와 배치가 고려시대의
 
능묘와 매우 유사하다. 묘는 ‘冂’ 자형의 곡장(曲牆)을 두르고 장방형의 석축을 쌓아 봉분을 만들었다. 묘 정면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있고 좌우로 장명등과 비
 
석, 망주와 인석을 세웠다.
 
묘소 아래에 있는 묘표는 비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묘표의 규모는 길이 2m, 폭 50cm, 두께 30cm이다. 마멸이 심해 비문을 식별하기 어려우나 정밀탁본을
 
통해 1391년 조원길 예장 당시 조원길과 옥천군부인 조씨를 함께 장사한 묘이며, 아들 조유(趙瑜)가 세웠다는 내용을 파악하였다. 조원길의 묘표가 발견되기
 
이전까지 전라북도에는 김제 금산사 혜덕왕사 탑비(金堤金山寺慧德王師塔碑)가 유일한 고려시대의 비로 전해졌으나, 조원길의 묘표가 발견되면서 전라북도에 1
 
기의 고려시대 비가 추가되었다. 조원길의 묘와 묘표는 고려시대 묘역과 금석문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조원길(1344~1391)은 고려 말기 충신으로 정몽주·설장수와 함께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옹립한 공으로 1등공신에 책봉되어 순창의 옛이름인 옥천의 이름을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에 봉해졌다. 이성계를 중심으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순창에 농은(農隱)이라는 작은 집에서
 
세속을 멀리하여 은거하였다. 당대 사람들은 조원길의 충절을 일러 목은(牧隱), 포은(圃隱), 도은(陶隱), 야은(冶隱)과 함께 오은(五隱)이라 칭송하였다.
 
  
====1차 수정====
+
조원길의 묘는 부인 조씨와 함께 장사한 봉토분이다. ‘冂’ 자형의 곡장(曲牆, 무덤 뒤에 기와를 덮어 둘러쌓은 나지막한 담)을 두르고, 장방형의 석축을 쌓아 봉분을 만들었다. 봉분 앞에는 상석, 향로석, 장명등, 묘비, 망주석, 석인상 등의 석물을 세웠다.
  
 +
묘표는 원래 묘소 앞의 축대석으로 방치되어 있었다. 마멸이 심해 비문을 식별하기 어려워 정밀 탁본을 통해 일부 내용을 확인한 결과  조원길 묘의 묘표임이 밝혀졌다. 비문에 따르면 조원길의 묘소는 공양왕 3년(1391)에 조성되었으며, 아들 조유(趙瑜)가 묘표를 세웠다. 묘표의 윗부분에만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별도의 받침돌을 두지 않고 땅속에 절반쯤 묻어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맥요소'''==
+
===영문===
===Nodes===
+
'''Tomb and Tombstone of Jo Won-gil'''
  
===Links===
+
These are the tomb and tombstone of Jo Won-gil, a loyal subject of the Goryeo dynasty (918-1392). The tombstone was originally erected in front of the burial mound, but is now kept in a protective pavilion near the tomb. Jon Won-gil’s wife, Lady Jo, is also interred in the same burial mound.
  
 +
Jo Won-gil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369 and served various high official posts. He became a meritorious subject for his contributions to the enthronement of Goryeo’s last king, King Gongyang (r. 1389-1392). When the Goryeo dynasty fell and the Joseon dynasty (1392-1910) was founded, Jo left office and lived in retirement in Sunchang.
  
 +
The rectangular earthen burial mound is surrounded at the base by a stone retaining wall. Behind the burial mound, there is a tiled semi-circular stone enclosure wall. In front of the burial mound are various stone structures, such as a table, an incense table, a lantern, a tombstone, a pair of pillars, and two pairs of human statues.
 +
 +
The tombstone was discovered being used as part of the stone retaining wall. Due to the severe erosion, its inscription is illegible by sight, but it was verified as the tomb’s tombstone through a stone rubbing that revealed part of its inscription. According to the inscription, the tomb was made in 1391, and the tombstone was made by his son Jo Yu. Because the inscription is located only on the upper part of the tombstone, it is presumed that the tombstone was originally buried halfway underground without any pedestal.
 +
 +
===영문 해설 내용===
 +
고려 말의 충신 조원길의 묘와 묘표이다. 묘표는 원래 봉분 앞에 세워져 있었는데, 지금은 묘소 근처 비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조원길의 묘는 부인 조씨와 함께 장사한 봉토분이다.
 +
 +
조원길은 1369년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을 두루 지냈다.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재위 1389-1392)을 옹립한 공으로 공신이 되었다. 이후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세워지자, 벼슬에서 물러나 순창에 은거하였다.
 +
 +
장방형의 봉분은 아래 부분에 석축을 둘렀다. 봉분 주위에는 기와를 얹은 곡장을 둘렀다. 봉분 앞에는 상석, 향로석, 장명등, 묘비, 망주석, 석인상 등의 석물을 세웠다.
 +
 +
묘표는 원래 묘소 앞의 축대석으로 방치되어 있었다. 마멸이 심해 비문을 식별하기 어려워, 정밀 탁본을 통해 일부 내용을 확인한 결과 조원길 묘의 묘표임이 밝혀졌다. 비문에 따르면 조원길의 묘소는 1391년에 조성되었으며, 아들 조유가 묘표를 세웠다. 묘표의 윗부분에만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별도의 받침돌을 두지 않고 땅속에 절반쯤 묻어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자료'''==
 
=='''참고자료'''==
*한국민족대백과사전 ‘조원길’
+
* 옥천부원군 조원길 묘 및 묘표,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333501240000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2446
+
* 옥천부원군 조원길 묘 및 묘표, 디지털순창문화대전. http://sunchang.grandculture.net/sunchang/toc/GC05900816  
* 향토문화전자대전 ‘옥천 부원군 조원길 묘 및 묘표’
+
* 옥천부원군 조원길 묘 및 묘표,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338200&cid=40942&categoryId=33382
http://sunchang.grandculture.net/sunchang/toc/GC05900816
+
* 조원길, 두산백과.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41995&cid=40942&categoryId=33382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옥천부원군 조원길 묘 및 묘표‘
+
* 조원길 신도비, 디지털순창문화대전. http://sunchang.grandculture.net/sunchang/toc/GC05900817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
+
 
VdkVgwKey=23,01240000,35&pageNo=1_1_1_0
 
* 향토문화전자대전 ’조원길 신도비‘
 
http://sunchang.grandculture.net/sunchang/toc/GC05900817
 
  
  
 
[[분류:문화유산해설문]]
 
[[분류:문화유산해설문]]
[[분류:전라북도 문화유산]]
+
[[분류:순창군 문화유산]]
[[분류:기념물]]
+
[[분류:시도기념물]]
[[분류:무덤]]
+
[[분류:묘]]
 +
[[분류:묘표]]
 
[[분류:2021 국문집필]]
 
[[분류:2021 국문집필]]
 
[[분류:2021 국문초안지원사업]]
 
[[분류:2021 국문초안지원사업]]
 +
[[분류:2021 영문집필]]

2022년 10월 28일 (금) 20:05 기준 최신판

옥천부원군 조원길 묘 및 묘표
Tomb and Tombstone of Jo Won-gil
옥천부원군조원길묘및묘표,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옥천부원군 조원길 묘 및 묘표
영문명칭 Tomb and Tombstone of Jo Won-gil
한자 玉川府院君 趙元吉 墓 및 墓標
지정번호 전라북도 기념물 제124호
지정일 2005년 12월 16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시대 고려시대
수량/면적 2기
웹사이트 옥천부원군조원길묘및묘표,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고려 말의 충신 조원길(趙元吉)의 묘와 봉분 앞에 세워졌던 묘표이다. 묘표는 현재 묘소 아래 비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조원길은 고려 공민왕 18년(1369)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을 두루 지냈다.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1389∼1392 재위)을 옹립한 공으로 공신에 책봉되었으며, 순창의 옛 이름인 옥천의 이름을 따 옥천부원군에 봉해졌다. 그러나, 곧 이성계를 중심으로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순창에 은거하였다.

조원길의 묘는 부인 조씨와 함께 장사한 봉토분이다. ‘冂’ 자형의 곡장(曲牆, 무덤 뒤에 기와를 덮어 둘러쌓은 나지막한 담)을 두르고, 장방형의 석축을 쌓아 봉분을 만들었다. 봉분 앞에는 상석, 향로석, 장명등, 묘비, 망주석, 석인상 등의 석물을 세웠다.

묘표는 원래 묘소 앞의 축대석으로 방치되어 있었다. 마멸이 심해 비문을 식별하기 어려워 정밀 탁본을 통해 일부 내용을 확인한 결과 조원길 묘의 묘표임이 밝혀졌다. 비문에 따르면 조원길의 묘소는 공양왕 3년(1391)에 조성되었으며, 아들 조유(趙瑜)가 묘표를 세웠다. 묘표의 윗부분에만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별도의 받침돌을 두지 않고 땅속에 절반쯤 묻어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영문

Tomb and Tombstone of Jo Won-gil

These are the tomb and tombstone of Jo Won-gil, a loyal subject of the Goryeo dynasty (918-1392). The tombstone was originally erected in front of the burial mound, but is now kept in a protective pavilion near the tomb. Jon Won-gil’s wife, Lady Jo, is also interred in the same burial mound.

Jo Won-gil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369 and served various high official posts. He became a meritorious subject for his contributions to the enthronement of Goryeo’s last king, King Gongyang (r. 1389-1392). When the Goryeo dynasty fell and the Joseon dynasty (1392-1910) was founded, Jo left office and lived in retirement in Sunchang.

The rectangular earthen burial mound is surrounded at the base by a stone retaining wall. Behind the burial mound, there is a tiled semi-circular stone enclosure wall. In front of the burial mound are various stone structures, such as a table, an incense table, a lantern, a tombstone, a pair of pillars, and two pairs of human statues.

The tombstone was discovered being used as part of the stone retaining wall. Due to the severe erosion, its inscription is illegible by sight, but it was verified as the tomb’s tombstone through a stone rubbing that revealed part of its inscription. According to the inscription, the tomb was made in 1391, and the tombstone was made by his son Jo Yu. Because the inscription is located only on the upper part of the tombstone, it is presumed that the tombstone was originally buried halfway underground without any pedestal.

영문 해설 내용

고려 말의 충신 조원길의 묘와 묘표이다. 묘표는 원래 봉분 앞에 세워져 있었는데, 지금은 묘소 근처 비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조원길의 묘는 부인 조씨와 함께 장사한 봉토분이다.

조원길은 1369년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을 두루 지냈다.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재위 1389-1392)을 옹립한 공으로 공신이 되었다. 이후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세워지자, 벼슬에서 물러나 순창에 은거하였다.

장방형의 봉분은 아래 부분에 석축을 둘렀다. 봉분 주위에는 기와를 얹은 곡장을 둘렀다. 봉분 앞에는 상석, 향로석, 장명등, 묘비, 망주석, 석인상 등의 석물을 세웠다.

묘표는 원래 묘소 앞의 축대석으로 방치되어 있었다. 마멸이 심해 비문을 식별하기 어려워, 정밀 탁본을 통해 일부 내용을 확인한 결과 조원길 묘의 묘표임이 밝혀졌다. 비문에 따르면 조원길의 묘소는 1391년에 조성되었으며, 아들 조유가 묘표를 세웠다. 묘표의 윗부분에만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별도의 받침돌을 두지 않고 땅속에 절반쯤 묻어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