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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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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산 서쪽 산기슭에 위치한 이 요지는 10세기 후반에서부터 11세기 후반까지 고려 초기의 청자를 집중적으로 생산하던 가마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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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암리 지역은 용산천이 흘러 서해로 나가는 곳으로 원료, 땔감, 운송 등에 있어 가마터로 최적의 장소이다. 예로부터 가마골로 불렸으며 논바닥에 점토 채취와 관련된 구덩이가 많았다고 전한다. 반암리 청자요지는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청자의 생산 관리를 담당하던 관청터까지 함께 확인되어, 고려시대 청자 도입과 전개 과정은 물론 관리체계까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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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요지에서는 벽돌가마 1기, 중형 진흙가마 1기, 소형 진흙가마 3기가 순서대로 겹쳐져 축조된 형태로 발견되었다. 벽돌가마의 제작기법과 벽돌가마에서 진흙가마로의 변화 과정을 명확히 볼 수 있다. 건물터도 5기 발견되었는데, 이중 가장 큰 건물터는 청자 생산을 관리하고 선별하는 관청이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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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은 고려 초기의 청자 양식인 해무리굽 사발, 꽃잎 모양 접시, 잔, 주전자 등이 있고, 갑발도 함께 발견되었다. 갑발은 도자기를 구울 때 가마 안의 이물질이나 재가 떨어지는 것을 막고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큰 그릇으로, 이곳에서 최상품의 청자를 제작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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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용계리 청자요지]], [[고흥 운대리 도요지]] 참고.
 
 
  
  

2022년 5월 7일 (토) 19:30 판


고창 반암리 청자요지
고창 반암리 청자요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고창 반암리 청자요지
한자 高敞 盤岩里 靑瓷窯址
국가유산 종목 전라북도 기념물 제 152호
지정(등록)일 2022년 1월 14일
분류 유적건조물 / 산업생산 / 요업 / 도자기가마
시대 후백제~고려
수량/면적 2,827㎡
웹사이트 고창 반암리 청자요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반암리 청자요지는 계명산 서쪽 산기슭에 있다. 이곳은 앞으로 용산천이 흘러 서해로 나가는 곳으로 원료, 땔감, 운송 등에 있어 가마터로 최적의 장소이다. 일찍이 여기는 가마골로 불리며 논바닥에 점토 채취와 관련된 구덩이가 많았다고 전한다.

이 유적은 10세기 후반에서부터 11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초기 청자 가마터이다. 초기 청자가마를 대표하는 벽돌가마 1기, 중형 진흙가마 1기, 소형 진흙가마 3기가 순서대로 겹쳐져 있다. 가마의 중첩된 모습을 통해 이곳에서 초기 청자 생산이 집중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유물은 해무리굽* 사발, 독립문 모양 청자, 꽃잎 모양 접시, 잔, 주전자 등의 초기 청자와 함께 갑발**, 기왓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대형 건물터에서는 관○거(○官○車○), 이월입일(二月卄日), ○평(○坪) 등의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는데 이곳은 초기 청자의 생산을 관리하고 선별하던 관청터로 추정된다.

반암리 청자요지는 유적이 잘 보존되어 벽돌가마의 제작기법과 벽돌가마에서 진흙가마로의 변화 과정을 명확히 볼 수 있다. 또한 청자의 생산 관리를 담당하던 관청터까지 확인되어 청자의 도입과 전개 과정은 물론 관리체계까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 해무리굽 : 그릇의 굽을 깎아낸 모양이 해의 둘레에 나타나는 흰빛의 테, 즉 햇무리와 같은 도자기 굽
  • 갑발 : 불길과 재 등이 청자에 닿지 않도록 청자 위에 덮는 진흙으로 만든 그릇

영문

영문 해설 내용

계명산 서쪽 산기슭에 위치한 이 요지는 10세기 후반에서부터 11세기 후반까지 고려 초기의 청자를 집중적으로 생산하던 가마터이다.

반암리 지역은 용산천이 흘러 서해로 나가는 곳으로 원료, 땔감, 운송 등에 있어 가마터로 최적의 장소이다. 예로부터 가마골로 불렸으며 논바닥에 점토 채취와 관련된 구덩이가 많았다고 전한다. 반암리 청자요지는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청자의 생산 관리를 담당하던 관청터까지 함께 확인되어, 고려시대 청자 도입과 전개 과정은 물론 관리체계까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유적이다.

이 요지에서는 벽돌가마 1기, 중형 진흙가마 1기, 소형 진흙가마 3기가 순서대로 겹쳐져 축조된 형태로 발견되었다. 벽돌가마의 제작기법과 벽돌가마에서 진흙가마로의 변화 과정을 명확히 볼 수 있다. 건물터도 5기 발견되었는데, 이중 가장 큰 건물터는 청자 생산을 관리하고 선별하는 관청이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은 고려 초기의 청자 양식인 해무리굽 사발, 꽃잎 모양 접시, 잔, 주전자 등이 있고, 갑발도 함께 발견되었다. 갑발은 도자기를 구울 때 가마 안의 이물질이나 재가 떨어지는 것을 막고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큰 그릇으로, 이곳에서 최상품의 청자를 제작했다는 것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