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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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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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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각은 조선 중종 때 효자 최포(1526~?)공의 정효각이다. 후손들이 공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1924년에 세웠지만, 퇴락하여 1966년 다시 중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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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려각은 충신이나 효자, 열녀 등의 행적을 기리고자 그들이 살았던 고을에 세운 비각이다. 정려각은 효자공 손성한(孫星漢)의 효부 월성 정씨의 효행을 기리고자 지은 것이다.  
  
최포의 본관은 경주이며 호는 우천(愚川)이고, 시조 최치원의 15세손이다. 공의 효행은 『동경잡기』에 실려 있다. 공의 아버지는 눈병으로 앞을 보지 못했다. 여러 해 동안 명의를 찾아 치료했지만, 효험이 없었다. 공은 아버지의 모든 일에 손발이 되어 불편함이 없도록 봉양했다. 아버지가 공이 과거급제하기를 간절히 원하자 공은 아버지의 시중을 들면서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마침내 과거에 급제하여 아버지에게 소식을 전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기뻐하는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사람들은 최포공의 효성에 감응해 아버지의 눈이 나았다고 입을 모아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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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한의 처 정씨는 10여년 동안 시아버지를 간병하였다. 오랫동안 병에 차도가 없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약으로 쓰기도 하였고, 한겨울에 꿩을 구해오는 등 극진한 간호로 모셨다. 시아버지는 병환에서 완전히 회복하여 82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비문은 이채원이 지었으며 글씨는 정병찬이 쓰고 정효각의 편액 글씨는 계전 최현주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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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의 효행에 감동하여 경주 사림이 연명으로 공적을 수 차례 청원하여 여러 군역(軍役)을 영구히 감면한다는 정표를 받았다. 지금의 정려각은 1991년 가을에 경주 손씨 율동 송림 종중이 다시 세운 것이다.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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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morative Stele of Lady Jeong for Her Filial Devo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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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tele was erected to commemorate the filial devotion of Lady Jeong of the Wolseong Jeong Clan, the wife of Song Seong-han.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a commemorative plaque or stele was bestowed by the government to honor a person’s patriotic loyalty, filial devotion, or matrimonial devotion and was meant to be hung on a red gate or in a pavilion in front of the honored family’s home.
  
===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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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dy Jeong is said to have faithfully cared for her chronically ill father-in-law for ten years, having gone to extreme length to ensure his recovery, such as by cutting off a piece of her own thigh flesh and feeding it to him as medicine and catching a pheasant in the middle of winter. He recovered fully from his illness and lived to be 82 years 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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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urrent pavilion was built in 1991 by the Gyeongju Son Clan.
  
  

2021년 8월 18일 (수) 16:09 기준 최신판

월성 정씨 정려각
Commemorative Stele of Lady Jeong for Her Filial Devotion
대표명칭 월성 정씨 정려각
영문명칭 Commemorative Stele of Lady Jeong for Her Filial Devotion
한자 月城 鄭氏 旌閭閣



해설문

국문

정려각은 충신이나 효자, 열녀 등의 행적을 기리고자 그들이 살았던 고을에 세운 비각이다. 이 정려각은 효자공 손성한(孫星漢)의 효부 월성 정씨의 효행을 기리고자 지은 것이다.

손성한의 처 정씨는 10여년 동안 시아버지를 간병하였다. 오랫동안 병에 차도가 없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약으로 쓰기도 하였고, 한겨울에 꿩을 구해오는 등 극진한 간호로 모셨다. 시아버지는 병환에서 완전히 회복하여 82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부인의 효행에 감동하여 경주 사림이 연명으로 공적을 수 차례 청원하여 여러 군역(軍役)을 영구히 감면한다는 정표를 받았다. 지금의 정려각은 1991년 가을에 경주 손씨 율동 송림 종중이 다시 세운 것이다.

영문

Commemorative Stele of Lady Jeong for Her Filial Devotion

This stele was erected to commemorate the filial devotion of Lady Jeong of the Wolseong Jeong Clan, the wife of Song Seong-han.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a commemorative plaque or stele was bestowed by the government to honor a person’s patriotic loyalty, filial devotion, or matrimonial devotion and was meant to be hung on a red gate or in a pavilion in front of the honored family’s home.

Lady Jeong is said to have faithfully cared for her chronically ill father-in-law for ten years, having gone to extreme length to ensure his recovery, such as by cutting off a piece of her own thigh flesh and feeding it to him as medicine and catching a pheasant in the middle of winter. He recovered fully from his illness and lived to be 82 years old.

The current pavilion was built in 1991 by the Gyeongju Son Cl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