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사 원증국사 탑"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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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시대의 승려 보우(원증국사, 1301-1382)를 기리기 위해 1383년에 세워진 승탑이다. 스님의 사후에는 유골을 모신 승탑과 그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탑비가 함께 조성된다. 이 승탑은 누구의 것인지 적혀 있지 않지만, 바로 왼쪽에 | + | 고려시대의 승려 보우(원증국사, 1301-1382)를 기리기 위해 1383년에 세워진 승탑이다. 스님의 사후에는 유골을 모신 승탑과 그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탑비가 함께 조성된다. 이 승탑은 누구의 것인지 적혀 있지 않지만, 바로 왼쪽에 보우의 탑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3호)가 있어서 승탑의 주인이 보우임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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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보우는 홍주(지금의 충청남도 홍성) 출신으로 13세 때 양주 회암사에서 출가하였다. 이후 1346년 중국 원나라에 가서 선불교의 하나인 임제종을 배웠고, 이를 본격적으로 고려에 도입하였다. 1356년 공민왕(재위 1351-1374)의 왕사로 책봉되었고, 1371년에는 승려 최고 지위인 국사에 책봉되었다. 입적 후 화장을 하니 헤아릴 수 없는 사리가 나왔다고 하며, 지금의 문경 봉암사, 양주 태고사, 양평 사나사에 승탑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 |
− | + | 이 승탑은 종 형태의 몸돌에 연꽃 봉오리 모양의 머리 장식이 얹혀 있다. 종 모양 승탑은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에 유행하였다. | |
2021년 7월 29일 (목) 11:06 판
사나사 원증국사탑 Stupa of State Preceptor Wonjeung at Sanasa Temp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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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사나사 원증국사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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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tupa of State Preceptor Wonjeung at Sanasa Temple |
한자 | 舍那寺 圓證國師塔 |
주소 |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304번지 |
지정번호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2호 |
지정일 | 1978년 10월 10일 |
분류 |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
시대 | 고려시대 |
수량/면적 | 1기 |
웹사이트 | 사나사 원증국사 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고려 후기 승려 보우(普愚, 1301~1382)의 사리*를 모신 탑(부도)이다. 원증은 보우대사가 열반한 뒤 그의 업적과 덕을 칭송하여 붙인 이름(시호)이다.
원증국사 탑은 종 형태의 몸돌에 연꽃 봉오리 모양의 머리 장식이 얹혀 있다. 종 모양(석종형) 부도는[탑은] 고려 말부터 조선 시대에 유행하였다. 탑에는 누구의 것인지 적혀 있지 않지만, 바로 옆에 있는 비석을 통해 탑의 주인이 원증국사 보우 임을 알 수 있다. 보우가 열반한 뒤 다음 해인 고려 우왕 9년(1383)에 그의 제자 달심(達心)이 탑을 세웠다.
원증국사 보우는 고려 충목왕 2년(1346)에 중국 원나라에 가서 선(禪) 불교**의 하나인 임제종(臨濟宗)을 배워 이를 본격적으로 고려에 도입하였다. 고려 공민왕·우왕 때 덕이 높아 왕과 국가의 스승이 될 만한 승려에게 주는 최고의 칭호인 왕사(王師)·국사(國師)가 되었다.
원증국사 탑 왼쪽에 원증국사의 업적을 적은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3호)가 있다.
- 사리 : 승려가 죽은 뒤 화장한 후에 나오는 구슬 모양의 것
- 선불교 : 참선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는 것을 중요시하는 불교의 한 종파
영문
Stupa of State Preceptor Wonjeung at Sanasa Temple
영문 해설 내용
고려시대의 승려 보우(원증국사, 1301-1382)를 기리기 위해 1383년에 세워진 승탑이다. 스님의 사후에는 유골을 모신 승탑과 그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탑비가 함께 조성된다. 이 승탑은 누구의 것인지 적혀 있지 않지만, 바로 왼쪽에 보우의 탑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3호)가 있어서 승탑의 주인이 보우임을 알 수 있다.
보우는 홍주(지금의 충청남도 홍성) 출신으로 13세 때 양주 회암사에서 출가하였다. 이후 1346년 중국 원나라에 가서 선불교의 하나인 임제종을 배웠고, 이를 본격적으로 고려에 도입하였다. 1356년 공민왕(재위 1351-1374)의 왕사로 책봉되었고, 1371년에는 승려 최고 지위인 국사에 책봉되었다. 입적 후 화장을 하니 헤아릴 수 없는 사리가 나왔다고 하며, 지금의 문경 봉암사, 양주 태고사, 양평 사나사에 승탑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 승탑은 종 형태의 몸돌에 연꽃 봉오리 모양의 머리 장식이 얹혀 있다. 종 모양 승탑은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에 유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