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영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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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2호 | |지정번호=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2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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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다듬어진 자연 암석면에 ‘월영대(月映臺)’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쓴 사람과 새긴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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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래 안동 월곡면의 ‘금하재(錦下齋)’라는 정자 앞에 서 있었다고 하나,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4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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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이 비치는 대(臺)'라는 뜻으로, 글씨는 단아한 해서체(楷書體)로 쓰여져 선비의 풍류를 느낄 수 있다. 글씨의 크기는 대략 26cm 정도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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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참고자료'''== | ||
− | + | *월영대, 디지털안동문화대전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928 → 월영대(月映臺)란 ‘달이 비치는 대(臺)’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경관 속에서 달빛을 감상하던 임원(林苑)의 암벽에 붙인 이름이다. 깔끔한 해서체로 쓰여 있으나, 필자와 새긴 이는 알 수 없다. 월영대는 원래 안동댐 수몰 이전 월곡면 사월동 산351번지 월곡면사무소 뒷산 송림 중에 있던 금하재(錦下齋)라는 정자와 함께 길쭉한 자연 암벽을 다듬어 새겨놓았으나, 1974년 안동댐 건설로 인해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 | |
+ | *찬바람 부는데 생각난 안동 석빙고... 가을을 만끽하다, 오마이뉴스, 2020.10.26.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87143&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 석빙고를 지나 몇 걸음 더 가면 '선성현 객사'가 보이는데 객사 입구 왼쪽에는 '월영대'(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2호)라 새겨진 바위가 보인다. 월영대도 안동댐 건설로 인해 현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원래는 월영대라 적혀있는 바위 바로 위에 '금하재'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금하재는 이곳으로 옮겨지지는 못한 듯 '월영대'라 적혀 있는 바위만 이곳에 남아 있다. | ||
2021년 4월 17일 (토) 13:41 판
월영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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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월영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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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月映臺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 산225-1번지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2호 |
지정(등록)일 | 1973년 8월 31일 |
분류 | 유물/일반조각/암벽조각/각석 |
수량/면적 | 일곽 |
웹사이트 | 월영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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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기존 국문
월영대는 자연 암벽을 다듬어 ‘월영대’라는 석 자를 새긴 바위이다. 원래 이 바위의 바로 위에 ‘금하재(錦下齋)’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월영대는 1972년 안동댐 건설로 인해 현 위치로 옮겨졌다. 글자를 새기기 위해 다듬은 장방형 면적은 83×47cm이고, 글씨의 크기는 대략 26cm 정도이다. 글씨는 단아한 해서체(楷書體)로 선비의 풍류를 느낄 수 있다. 이 글을 쓴 사람과 새긴 사람은 금하재의 건립과 직접 관계가 있을 것으로 여겨지지만 단정하기는 어렵다.
수정 국문
초고
잘 다듬어진 자연 암석면에 ‘월영대(月映臺)’라는 세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쓴 사람과 새긴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원래 안동 월곡면의 ‘금하재(錦下齋)’라는 정자 앞에 서 있었다고 하나,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4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달이 비치는 대(臺)'라는 뜻으로, 글씨는 단아한 해서체(楷書體)로 쓰여져 선비의 풍류를 느낄 수 있다. 글씨의 크기는 대략 26cm 정도이다.
1차 수정
문맥요소
Nodes
ID | Class | Label | Description |
---|---|---|---|
월영대 | Object | 월영대 | |
금하재 | Place | 금하재 | |
안동댐_건설 | Event | 안동댐_건설 |
Links
Source | Target | Relation |
---|---|---|
월영대 | 금하재 | isRelatedTo |
월영대 | 안동댐_건설 | isRelatedTo |
참고자료
- 월영대, 디지털안동문화대전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928 → 월영대(月映臺)란 ‘달이 비치는 대(臺)’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경관 속에서 달빛을 감상하던 임원(林苑)의 암벽에 붙인 이름이다. 깔끔한 해서체로 쓰여 있으나, 필자와 새긴 이는 알 수 없다. 월영대는 원래 안동댐 수몰 이전 월곡면 사월동 산351번지 월곡면사무소 뒷산 송림 중에 있던 금하재(錦下齋)라는 정자와 함께 길쭉한 자연 암벽을 다듬어 새겨놓았으나, 1974년 안동댐 건설로 인해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
- 찬바람 부는데 생각난 안동 석빙고... 가을을 만끽하다, 오마이뉴스, 2020.10.26.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87143&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 석빙고를 지나 몇 걸음 더 가면 '선성현 객사'가 보이는데 객사 입구 왼쪽에는 '월영대'(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2호)라 새겨진 바위가 보인다. 월영대도 안동댐 건설로 인해 현 위치로 옮겨졌다고 한다. 원래는 월영대라 적혀있는 바위 바로 위에 '금하재'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금하재는 이곳으로 옮겨지지는 못한 듯 '월영대'라 적혀 있는 바위만 이곳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