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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113804450000 함양 영원사 승탑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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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함양 영원사 승탑군
 
|대표명칭=함양 영원사 승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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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Stupas of Yeongwonsa Temple, Hamyang
|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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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咸陽 靈源寺 僧塔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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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산 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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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처=
 
|지정번호=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45호
 
|지정번호=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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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량/면적=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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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113804450000 함양 영원사 승탑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웹사이트=[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113804450000 함양 영원사 승탑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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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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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영원사의 5기 부도들은 모두 주변에서 산출되는 화강암으로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각각 부도의 주인공을 밝혀주는 탑호를 탑신석에 새겨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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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사에 남아 있는 부도(浮屠, 스님의 사리를 안치한 탑)는 모두 5기로 부도의 주인임을 밝혀주는 승려의 호가 탑신에 새겨져 있다.  
  
좌측으로 첫 번째 부도는 탑신석 중앙에 장방형으로 얇게 파낸 후 영암당탑이라는 탑호를 음각하고, 두 번째 부도는 탑신석에 설파당탑이라고 새겨져 있다. 번째 부도는 중봉당탑이라는 탑호가 탑신석에 음각되어 있으며, 네 번째 부도는 조선시대 전형적인 석종형 부도 양식으로 청계당탑이라고 새겨 있다. 다섯 번째 부도는 탑신에 벽허당탑이라는 탑호를 새긴 석종형 부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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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좌측부터 영암당탑(靈巖堂塔), 설파당탑(雪坡堂塔), 중봉당탑(中峯堂塔), 청계당탑(淸溪堂塔), 벽허당탑(碧虛堂塔) 순으로 가로로 세워져 있다. 부도의 위치는 약간의 선후 관계를 두었는데 가장 뒤쪽에 있는 것은 좌측에서 두 번째 부도이고, 그 다음으로는 좌측에서 네 번째, 다섯 번째, 세 번째, 첫 번째  순으로 조성하였다.  
  
5기의 부도는 거의 횡렬로 건립되어 있고 그 중에 설파당탑은 규모가 가장 크며, 치석도 나름대로 정교한 편으로 설파당탑의 건립 시기가 가장 앞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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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 가운데서는 설파당탑이 규모가 가장 크고 상대적으로 돌을 정교하게 다듬어 건립 시기가 가장 앞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설파당탑의 주인은 조선 후기 화엄학의 대가로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에 있는 영각사(靈覺寺)를 창건하고 화엄경판을 새겨 영각사에 봉헌한 설파상언(雪坡尙彦, 1707~1791) 대사이다. 나머지 4기의 부도는 주인들의 생존 연대나 행적을 확인할 수 없다.
  
설파당탑의 주인공인 설파상언 대사는 1707년에 출생하여 1791년에 입적한 분으로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에 소재한 영각사를 창건하고 화엄경판을 새긴 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머지 4기의 부도 주인공들은 그 생몰연대나 행적이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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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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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pas of Yeongwonsa Temple, Hamyang'''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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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upa is a structure built to enshrine the relics or cremated remains of a Buddhist monk. When a renowned monk passes away, his disciples and followers build a stupa and a stele to commemorate him. The stele records the deceased monk’s life and achievements.
====초고====
 
승탑은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셔 놓은 일종의 무덤이다. 덕망 높은 스님이 입적하고 나면 제자와 신도들이 스님을 기려 승탑과 탑비를 세웠으며, 탑비에는 스님의 행적을 기록한 비문을 새겼다.  
 
  
영원사에 있는 5기의 승탑은 모두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에서부터 영암당탑(靈巖堂塔), 설파당탑(雪坡堂塔), 중봉당탑(中峯堂塔), 청계당탑(淸溪堂塔), 벽허당탑(碧虛堂塔)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지붕돌을 갖추고 있는 설파당탑이 가장 이른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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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five stupas of Yeongwonsa Temple are bell-shaped stupas presumably made during the late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The stupas have the names of their owners inscribed on the body stones, which are monk Yeongam, monk Seolpa, monk Jungbong, monk Cheonggye, and monk Byeokheo, in order from left to right. The stupa of monk Seolpa is the largest and presumably the oldest among the five stupas, and it is also the only one to have a roof stone.
  
설파당탑의 주인공인 설파 상언(雪坡 尙彦, 1707~1791)은 19세에 출가한 후 화엄학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조선 후기의 승려이다. 해인사에 소장된 『화엄경』의 여러 판본을 비교하여 가장 표준이 될만한 정본(定本) 80권을 만들었고, 이를 낙안(지금의 순천) 징광사에 봉안하였다. 1770년 징광사에 불이 나서 화엄경을 새긴 목판이 모두 타버린 적이 있는데, 상언이 경전의 내용을 모두 외워서 다시 판각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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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hing is known about these monks apart from monk Seolpa (1707-1791, i.e. Sangeon), who was an influential figure in the Huayan school of Buddhism of the late Joseon period. He founded Yeonggaksa Temple in Hamyang and oversaw the creation of printing woodblocks for the Avatamsaka Sutra (Flower Garland Sutra), which he then enshrined at the temple.
  
나머지 네 승탑의 주인공들에 대해서는 그 행적이 알려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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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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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탑은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셔 놓은 일종의 무덤이다. 덕망 높은 스님이 입적하고 나면 제자와 신도들이 스님을 기려 승탑과 탑비를 세웠으며, 탑비에는 스님의 행적을 기록하였다.
====자문의견====
 
#분야별 자문위원 1
 
#*‘승탑는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셔 놓은 일종의 무덤이다.’ → ‘~사리를 모셔놓은 조형물이다. 부처의 사리를 모신 불탑과 같은 의미에서 승탑이라고도 한다.’
 
#*‘탑비에는 스님의 행적을 기록한 비문을 새겼다.’ → ‘~ 글로 지어 새겼다.’
 
#*‘영원사에 있는 5기의 승탑은 모두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되었다.’ *승탑 주인공이 모두 조선후기 인물임.
 
#*각 승탑의 양식 설명 보완 필요 (문화재청 정보 참조)
 
#분야별 자문위원 2
 
#*승탑은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셔 놓은 일종의 무덤이다. →승탑은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며, 그의 유골과 사리를 모셔두는 곳이다. 다르게는 부도라 부른다.
 
#*영원사에 있는 5기의 승탑은 모두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에서부터 영암당탑(靈巖堂塔), 설파당탑(雪坡堂塔), 중봉당탑(中峯堂塔), 청계당탑(淸溪堂塔), 벽허당탑(碧虛堂塔)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지붕돌을 갖추고 있는 설파당탑이 가장 이른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원사에 있는 5기의 승탑은 모두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종모양으로 생긴 석종형을 기본으로 하며 팔각의 기단부에 세우거나 지붕을 갖춘 것도 있다. 또한 몸돌이 공과 같이 구형을 이루는 것도 있다. 몸돌에는 영암당탑(靈巖堂塔), 설파당탑(雪坡堂塔), 중봉당탑(中峯堂塔), 청계당탑(淸溪堂塔), 벽허당탑(碧虛堂塔)이라는 탑 주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중에서도 설파당탑이 가장 크며 돌을 정교하게 다루어 가장 이른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승탑은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셔 놓은 일종의 무덤이다. 덕망 높은 스님이 입적하고 나면 제자와 신도들이 스님을 기려 부도와 탑비를 세웠으며, 탑비에는 스님의 행적을 기록한 비문을 새겼다. → ‘승탑’의 정의를 굳이 문화재 안내판에 명기할 필요가 있을까? 필요하다면 안내판 아래쪽에 주석과 같이 부연설명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함.
 
#* 영원사에 있는 5기의 승탑은 모두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 주어가 ‘함양 영원사 승탑군’이 되어야 함. 이 문단에서 승탑 현상과 관련된 내용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음. 문화재청 문화재정보에는 비교적 자세히 언급되어 있으므로, 이를 참고하여 개별 승탑의 크기, 형태를 간략히 언급할 필요가 있음. 승탑 중 중앙에 있는 중봉당탑은 원구형 승탑, 다른 승탑들은 모두 석종형 승탑임. 이 문단에서는 승탑들은 조선후기에 제작된 것이지만 상세한 제작시기가 다르며, 형태도 다양하다는 특징을 언급할 필요가 있음.
 
#* 설파당탑의 주인공인 설파 상언(雪坡 尙彦, 1707~1791)은 19세에 출가한 후 화엄학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조선 후기의 승려이다. 해인사에 소장된 『화엄경』의 여러 판본을 비교하여 가장 표준이 될만한 정본(定本) 80권을 만들었고, 이를 낙안(지금의 순천) 징광사에 봉안하였다. 1770년 징광사에 불이 나서 화엄경을 새긴 목판이 모두 타버린 적이 있는데, 상언이 경전의 내용을 모두 외워서 다시 판각할 수 있었다고 한다. → ‘5기 승탑 중 설파당탑의 주인공인 설파 상언 스님의 행적만이 알려져 있다.’라는 문장을 전제로 하며, 이후 설파 상언 스님에 대한 설명을 기록함. 이 문단은 기존 문안의 문구가 훨씬 축약적이고 알기 쉬우므로 기존 문안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함.
 
 
 
====2차 수정====
 
승탑은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셔 놓은 일종의 무덤이다. 덕망 높은 스님이 입적하고 나면 제자와 신도들이 스님을 기려 승탑과 탑비를 세웠으며, 탑비에는 스님의 행적을 기록하였다.  
 
 
 
영원사에 있는 5기의 승탑은 모두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종모양으로 생긴 석종형을 기본으로 하며 팔각의 기단부에 세우거나 지붕을 갖춘 것도 있다. 또한 몸돌이 공과 같이 구형을 이루는 것도 있다. 왼쪽에서부터 영암당탑(靈巖堂塔), 설파당탑(雪坡堂塔), 중봉당탑(中峯堂塔), 청계당탑(淸溪堂塔), 벽허당탑(碧虛堂塔)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지붕돌을 갖추고 있는 설파당탑이 가장 이른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설파당탑의 주인공인 설파 상언(雪坡 尙彦, 1707~1791)은 19세에 출가한 후 화엄학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조선 후기의 승려이다. 해인사에 소장된 『화엄경』의 여러 판본을 비교하여 가장 표준이 될만한 정본(定本) 80권을 만들었고, 이를 낙안(지금의 순천) 징광사에 봉안하였다. 1770년 징광사에 불이 나서 화엄경을 새긴 목판이 모두 타버린 적이 있는데, 상언이 경전의 내용을 모두 외워서 다시 판각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머지 네 승탑의 주인공들에 대해서는 그 행적이 알려져 있지 않다.
 
 
 
=='''문맥요소'''==
 
===Nodes===
 
 
 
===Li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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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사에 있는 5기의 승탑은 모두 석종형의 승탑이며,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승탑의 몸돌에 주인공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왼쪽에서부터 승려 영암, 설파, 중봉, 청계, 벽허의 탑이다. 이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지붕돌을 갖추고 있는 설파당의 승탑이 가장 이른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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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파(1707-1791, 법명: 상언) 외의 나머지 네 승탑의 주인공들에 대해서는 생존연대나 행적이 알려져 있지 않다. 설파는 함양 영각사를 창건하였고 『화엄경』을 목판에 새겨 영각사에 봉안하였다.
  
 
=='''참고자료'''==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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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시도유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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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승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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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20 영문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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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2020 국문집필]] [[분류: 2020 국문초안지원사업]]

2021년 2월 5일 (금) 16:34 기준 최신판


함양 영원사 승탑군
Stupas of Yeongwonsa Temple, Hamyang
함양 영원사 승탑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함양 영원사 승탑군
영문명칭 Stupas of Yeongwonsa Temple, Hamyang
한자 咸陽 靈源寺 僧塔群
주소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산 161
국가유산 종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45호
지정(등록)일 2006년 7월 20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수량/면적 5기
웹사이트 함양 영원사 승탑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영원사에 남아 있는 부도(浮屠, 스님의 사리를 안치한 탑)는 모두 5기로 부도의 주인임을 밝혀주는 승려의 호가 탑신에 새겨져 있다.

부도는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좌측부터 영암당탑(靈巖堂塔), 설파당탑(雪坡堂塔), 중봉당탑(中峯堂塔), 청계당탑(淸溪堂塔), 벽허당탑(碧虛堂塔) 순으로 가로로 세워져 있다. 부도의 위치는 약간의 선후 관계를 두었는데 가장 뒤쪽에 있는 것은 좌측에서 두 번째 부도이고, 그 다음으로는 좌측에서 네 번째, 다섯 번째, 세 번째, 첫 번째 순으로 조성하였다.

부도 가운데서는 설파당탑이 규모가 가장 크고 상대적으로 돌을 정교하게 다듬어 건립 시기가 가장 앞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설파당탑의 주인은 조선 후기 화엄학의 대가로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에 있는 영각사(靈覺寺)를 창건하고 화엄경판을 새겨 영각사에 봉헌한 설파상언(雪坡尙彦, 1707~1791) 대사이다. 나머지 4기의 부도는 주인들의 생존 연대나 행적을 확인할 수 없다.

영문

Stupas of Yeongwonsa Temple, Hamyang

A stupa is a structure built to enshrine the relics or cremated remains of a Buddhist monk. When a renowned monk passes away, his disciples and followers build a stupa and a stele to commemorate him. The stele records the deceased monk’s life and achievements.

All five stupas of Yeongwonsa Temple are bell-shaped stupas presumably made during the late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The stupas have the names of their owners inscribed on the body stones, which are monk Yeongam, monk Seolpa, monk Jungbong, monk Cheonggye, and monk Byeokheo, in order from left to right. The stupa of monk Seolpa is the largest and presumably the oldest among the five stupas, and it is also the only one to have a roof stone.

Nothing is known about these monks apart from monk Seolpa (1707-1791, i.e. Sangeon), who was an influential figure in the Huayan school of Buddhism of the late Joseon period. He founded Yeonggaksa Temple in Hamyang and oversaw the creation of printing woodblocks for the Avatamsaka Sutra (Flower Garland Sutra), which he then enshrined at the temple.

영문 해설 내용

승탑은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셔 놓은 일종의 무덤이다. 덕망 높은 스님이 입적하고 나면 제자와 신도들이 스님을 기려 승탑과 탑비를 세웠으며, 탑비에는 스님의 행적을 기록하였다.

영원사에 있는 5기의 승탑은 모두 석종형의 승탑이며,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승탑의 몸돌에 주인공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왼쪽에서부터 승려 영암, 설파, 중봉, 청계, 벽허의 탑이다. 이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지붕돌을 갖추고 있는 설파당의 승탑이 가장 이른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설파(1707-1791, 법명: 상언) 외의 나머지 네 승탑의 주인공들에 대해서는 생존연대나 행적이 알려져 있지 않다. 설파는 함양 영각사를 창건하였고 『화엄경』을 목판에 새겨 영각사에 봉안하였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