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옥포진성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Heritag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영문)
 
(같은 사용자의 중간 판 2개는 보이지 않습니다)
1번째 줄: 1번째 줄:
{{진행중}}
 
 
{{문화유산정보
 
{{문화유산정보
 
|사진=
 
|사진=
23번째 줄: 22번째 줄:
 
=='''해설문'''==
 
=='''해설문'''==
 
===국문===
 
===국문===
조선 초기 거제를 포함한 남해안 일대는 왜구의 침략이 많았던 곳으로 세조 때 왜구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거제 각 지역에 진지를 설치하였는데 그때 옥포는 군사 요충지의 하나가 되었다. 옥포성과 관련하여 『증보문헌비고』에 ‘성종 19년(1488)에 성을 쌓아 왜적을 방어하였다’와 『조선왕조실록』에 ‘성종 21년(1490)쌓은 성으로 둘레가 1,074척(325.42m), 높이 13척(3.93m)이다’라는 기록이 있어 축성시기와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옥포 수군 만호(萬戶)가 머물던 성’이란 기록을 통해서도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주둔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옥포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장군이 첫 해전에서 첫 승리를 거둔 옥포해전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
이곳은 왜구 침략에 대비하기 위하여 성종 21년(1490) 쌓은 옥포진성이 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까지만 하더라도 성안에 ‘충무정(忠武井)’이라 부르던 연못이 있었고, 우물과 사방에 문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1970년대 옥포지역에 대우조선소가 들어서고 이 일대가 상업지역으로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성벽의 대부분이 훼손되어 현재 옥포교회 앞 도로변과 주택 담장 주변에 성벽 일부와 축대만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옥포성은 조선 전기의 읍성처럼 평면형태가 사각형으로 되어 있으며, 남해안 일대를 방어하기 위한 수군의 성 가운데 평지에 축조된 드문 경우로 당시의 해안지역 방어와 조선 전기 성곽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이다.  
+
조선 초기 거제를 포함한 남해안 일대는 왜구의 침략으로 자주 피해를 입었다. 15세기 중반, 왜구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거제 각 지역에 7개의 진지를 설치하고 수군을 주둔시켰는데, 옥포진성은 거제 7진 중 하나였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조선 수군이 이곳에 주둔하였으며,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서 첫 승리를 거둔 옥포대첩(1592년 6월)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
 
 +
기록에 의하면 옥포진성은 둘레가 약 325m, 높이가 약 4m이며, 사방으로 문이 있고, 성안에 우물과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성벽 대부분은 1970년대 이 일대가 상업지역으로 개발되는 과정에서 훼손되어, 지금은 일부 성벽만 남아있다.
 +
 
 +
옥포진성은 조선 전기의 일반적인 읍성처럼 사각형 형태를 하고 있었다. 남해안 일대를 방어하기 위해 축조한 수군의 성 가운데 평지에 쌓은 드문 경우로 당시의 해안 지역 방어와 조선 전기 성곽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
 
 +
----
 +
*진지(陣地): 언제든지 적과 싸울 수 있도록 설비 또는 장비를 갖추고 부대를 배치하여 둔 곳.
  
 
===영문===
 
===영문===
48번째 줄: 54번째 줄:
 
[[분류:시도기념물]]
 
[[분류:시도기념물]]
 
[[분류:성곽]]
 
[[분류:성곽]]
 +
[[분류:2020 영문집필]]

2020년 10월 21일 (수) 07:00 기준 최신판

거제 옥포진성지
Okpojinseong Fortress Site, Geoje
대표명칭 거제 옥포진성지
영문명칭 Okpojinseong Fortress Site, Geoje
한자 巨濟 玉浦鎭城址
주소 경상남도 거제시 옥포동
국가유산 종목 경상남도 기념물 제104호
지정(등록)일 1990년 12월 20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수량/면적 1,928㎡(16필)
웹사이트 거제 옥포진성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곳은 왜구 침략에 대비하기 위하여 성종 21년(1490) 쌓은 옥포진성이 있던 곳이다.

조선 초기 거제를 포함한 남해안 일대는 왜구의 침략으로 자주 피해를 입었다. 15세기 중반, 왜구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거제 각 지역에 7개의 진지를 설치하고 수군을 주둔시켰는데, 옥포진성은 거제 7진 중 하나였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조선 수군이 이곳에 주둔하였으며, 이순신 장군이 해전에서 첫 승리를 거둔 옥포대첩(1592년 6월)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기록에 의하면 옥포진성은 둘레가 약 325m, 높이가 약 4m이며, 사방으로 문이 있고, 성안에 우물과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성벽 대부분은 1970년대 이 일대가 상업지역으로 개발되는 과정에서 훼손되어, 지금은 일부 성벽만 남아있다.

옥포진성은 조선 전기의 일반적인 읍성처럼 사각형 형태를 하고 있었다. 남해안 일대를 방어하기 위해 축조한 수군의 성 가운데 평지에 쌓은 드문 경우로 당시의 해안 지역 방어와 조선 전기 성곽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 진지(陣地): 언제든지 적과 싸울 수 있도록 설비 또는 장비를 갖추고 부대를 배치하여 둔 곳.

영문

Okpojinseong Fortress Site, Geoje

This is the former site of Okpojinseong, a fortress built at Okpojin Garrison in 1490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In the early Joseon period, the southern coastal regions of the Korean Peninsula frequently suffered from plunder by Japanese pirates. In the mid-15th century, a number of garrisons were established in the Geoje area to protect the region from the invaders, and Okpojin was one of the most strategic location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the Korean navy was stationed in this garrision, and this is where Admiral Yi Sun-sin (1545-1598) made his first victory in the war, defeating Japanese fleet in June 1592.

According to historical records, the fortress measured about 325 m in perimeter and about 4 m in height. It is said that there were four main gates in each cardinal direction as well as a pond and a well inside the fortress. Most of the fortress was demolished in the 1970s, when the neighborhood was developed into a commercial area.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조선시대인 1490년에 지어진 옥포진성이 있던 곳이다.

조선 초기 남해안 일대는 왜구의 침략으로 자주 피해를 입었다. 15세기 중반, 왜구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거제 각 지역에 진지를 설치하였는데, 옥포는 군사 요충지 중 하나였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조선 수군이 이곳에 주둔하였으며, 이순신(1545-1598)이 1592년 6월 첫 승리를 거둔 곳이기도 하다.

기록에 의하면 옥포진성은 둘레가 약 325m, 높이가 약 4m였다. 사방에 문이 있었고 성 안에는 연못과 우물이 있었따고 한다. 성벽 대부분은 1970년대 이 일대가 상업지역으로 개발되는 과정에서 훼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