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가배량진성"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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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배량진성이 위치하고 있는 가배량의 옛 이름은 오아포(烏兒浦)이다. 오아포의 앞바다는 한산도가 가로막고 있어 풍랑을 막아주고 바람이 불어도 깊숙한 해안지형 때문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이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이 오아포의 지리적 중요성을 인식하여 경상우수영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쌓은 성이 ‘가배량성’이다. 이후 이순신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면서 이곳은 사령부로 이용되었고, 1601년(선조 34)에 제찰사 이덕형의 건의로 통제영이 한산도로 옮겨가고 고성(현재의 통영)에 있던 가배량 만호진이 이곳 오아포로 옮겨오면서 ‘가배량진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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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배량진성은 성종 21년(1490)쌓은 성으로서 조선시대 전기 경상우수영성으로 사용하였으며 거제 7진 중의 하나이다.  
  
성의 외부는 돌로 쌓고 내부는 흙으로 둑을 쌓아 만들었으며, 기록에 의하면 성의 둘레는 796.89m, 높이는 3.94m로 되어 있다. 지금은 농지, 가옥, 학교 등을 만들면서 성의 대부분이 파괴되어 돌로 쌓은 남쪽 성벽 일부만 남아있으며, 성을 둘러싼 물길인 해자의 흔적과 남쪽 산봉우리에 망대터가 확인되고, 만호진이 있던 관아터에는 주춧돌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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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은 한산도를 중앙에 두고 통영과 거제로 갈라지는 두 갈래 바닷길 중 거제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하여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으로, 세종 7년(1425년)부터 선조24년(1601)까지 경상우수영 및 삼도수군통제영으로 이용되었다는 것에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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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16년(1593)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에 제수된 후 한산도에 삼도수군통제영 본영을 구축하고 이곳에는 기존보다 큰 규모로 연장 개축했다는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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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후 이곳 거제의 경상우수영성으로 삼도수군통제영을 옮겼다가, 선조 24년(1601) 다시 거제에서 고성으로 옮겼으며, 3년 뒤 현재의 통영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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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고성(현재의 통영)에 있던 ‘가배량진’이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부터 ‘가배량진성’이라 불렀다. 이후 고종 31년(1894) 갑오개혁에 과정에서 없어질 때까지 해안 방어의 요충지로 기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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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바깥은 돌로 쌓고 안쪽은 흙으로 둑을 쌓아 만들었는데, 기록에 따르면 성의 둘레는 기록에 의하면 성의 둘레는 794m, 높이는 4m이며, 지금 남아있는 성의 둘레는 146m이다. 성을 둘러싼 물길인 해자의 흔적과 남쪽에서 망대 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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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 조선시대 수군으로 거제에 7개의 진이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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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우수영 : 현재의 거제, 창원, 통영 등 서부 경남 해안을 방어하는 경상우수군의 본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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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수군통제사 : 경상좌수영, 경상우수영, 전라좌수영, 전라우수영, 충청수영 등 삼도의 수군을 지휘, 통솔한 지방 수군 총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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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대: 적이나 주위의 동정을 살피기 위하여 높이 세운 곳
  
 
===영문===
 
===영문===
 
'''Gabaeryangjinseong Fortress, Geoje '''
 
'''Gabaeryangjinseong Fortress, Geoje '''
  
This fortress was built in 1488 as the naval headquarters of West Gyeongsang-do Province. The location of this fortress was strategically significant, as it is nearby a recessed body of water, and its coast was blocked by Hansando Island. After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the naval headquarters of all three southern provinces, namely, Chungcheong-do, Jeolla-do, and Gyeongsang-do, was established in this fortress, and it was moved to Hansando in 1601. This fortress played a pivotal role in defending the coastal area up until 1894, when the operation of the local navy headquarters ended as a result of military system refor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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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fortress was built in 1488 as the naval headquarters of West Gyeongsang-do Province. The location of this fortress was strategically significant, as it is nearby a recessed body of water, and its coast was blocked by Hansando Island. After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the naval headquarters of all three southern provinces, namely, Chungcheong-do, Jeolla-do, and Gyeongsang-do, was established in this fortress, and it was moved to Goseong in 1601. This fortress played a pivotal role in defending the coastal area up until 1894, when the operation of the local navy headquarters ended as a result of military system reforms.
  
 
According to historical records, the fortress measured about 794 m in perimeter and about 4 m in height. The outside of the walls were constructed with rocks, which were fixed together by mud on the inside. Most of the walls were destroyed, only leaving its southern part. Remains of a moat and a watchtower site were found inside the fortress.
 
According to historical records, the fortress measured about 794 m in perimeter and about 4 m in height. The outside of the walls were constructed with rocks, which were fixed together by mud on the inside. Most of the walls were destroyed, only leaving its southern part. Remains of a moat and a watchtower site were found inside the fortress.
  
 
===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가배량진성은 1488년에 조선시대 전기 경상우수영성으로 쌓은 성이다. 깊숙한 해안 지대에 위치하였으며, 한산도가 앞바다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이곳에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되었다가 1601년 이후 한산도로 옮겨졌다. 이후 1894년 갑오개혁에 따라 없어지기까지 해안 방어의 요충지로 기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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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배량진성은 1488년에 조선시대 전기 경상우수영성으로 쌓은 성이다. 깊숙한 해안 지대에 위치하였으며, 한산도가 앞바다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이곳에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되었다가 1601년 이후 고성으로 옮겨졌다. 이후 1894년 갑오개혁에 따라 없어지기까지 해안 방어의 요충지로 기능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성의 둘레는 약 794m, 높이는 약 4m였으며, 외부는 돌로 쌓고 내부는 흙으로 둑을 쌓아 만들었다. 지금은 성의 대부분이 파괴되어 남쪽 성벽 일부만 남아 있다. 성 안에서는 해자와 망대터 등이 확인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성의 둘레는 약 794m, 높이는 약 4m였으며, 외부는 돌로 쌓고 내부는 흙으로 둑을 쌓아 만들었다. 지금은 성의 대부분이 파괴되어 남쪽 성벽 일부만 남아 있다. 성 안에서는 해자와 망대터 등이 확인되었다.  

2020년 10월 21일 (수) 06:59 기준 최신판

거제 가배량진성
Gabaeryangjinseong Fortress, Geoje
대표명칭 거제 가배량진성
영문명칭 Gabaeryangjinseong Fortress, Geoje
한자 巨濟 加背梁鎭城
주소 경상남도 거제시 동부면 가배리 산17-1번지
국가유산 종목 경상남도 기념물 제110호
지정(등록)일 1991년 12월 23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수량/면적 23,679㎡
웹사이트 거제 가배량진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가배량진성은 성종 21년(1490)에 쌓은 성으로서 조선시대 전기 경상우수영성으로 사용하였으며 거제 7진 중의 하나이다.

이 지역은 한산도를 중앙에 두고 통영과 거제로 갈라지는 두 갈래 바닷길 중 거제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하여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으로, 세종 7년(1425년)부터 선조24년(1601)까지 경상우수영 및 삼도수군통제영으로 이용되었다는 것에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

선조 16년(1593)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에 제수된 후 한산도에 삼도수군통제영 본영을 구축하고 이곳에는 기존보다 큰 규모로 연장 개축했다는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 이후 이곳 거제의 경상우수영성으로 삼도수군통제영을 옮겼다가, 선조 24년(1601) 다시 거제에서 고성으로 옮겼으며, 3년 뒤 현재의 통영으로 옮겨졌다.

이때 고성(현재의 통영)에 있던 ‘가배량진’이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부터 ‘가배량진성’이라 불렀다. 이후 고종 31년(1894) 갑오개혁에 과정에서 없어질 때까지 해안 방어의 요충지로 기능하였다.

성의 바깥은 돌로 쌓고 안쪽은 흙으로 둑을 쌓아 만들었는데, 기록에 따르면 성의 둘레는 기록에 의하면 성의 둘레는 794m, 높이는 4m이며, 지금 남아있는 성의 둘레는 146m이다. 성을 둘러싼 물길인 해자의 흔적과 남쪽에서 망대 터가 있다.


  • 진 : 조선시대 수군으로 거제에 7개의 진이 있었음
  • 경상우수영 : 현재의 거제, 창원, 통영 등 서부 경남 해안을 방어하는 경상우수군의 본영이다.
  • 삼도수군통제사 : 경상좌수영, 경상우수영, 전라좌수영, 전라우수영, 충청수영 등 삼도의 수군을 지휘, 통솔한 지방 수군 총사령관
  • 망대: 적이나 주위의 동정을 살피기 위하여 높이 세운 곳

영문

Gabaeryangjinseong Fortress, Geoje

This fortress was built in 1488 as the naval headquarters of West Gyeongsang-do Province. The location of this fortress was strategically significant, as it is nearby a recessed body of water, and its coast was blocked by Hansando Island. After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the naval headquarters of all three southern provinces, namely, Chungcheong-do, Jeolla-do, and Gyeongsang-do, was established in this fortress, and it was moved to Goseong in 1601. This fortress played a pivotal role in defending the coastal area up until 1894, when the operation of the local navy headquarters ended as a result of military system reforms.

According to historical records, the fortress measured about 794 m in perimeter and about 4 m in height. The outside of the walls were constructed with rocks, which were fixed together by mud on the inside. Most of the walls were destroyed, only leaving its southern part. Remains of a moat and a watchtower site were found inside the fortress.

영문 해설 내용

가배량진성은 1488년에 조선시대 전기 경상우수영성으로 쌓은 성이다. 깊숙한 해안 지대에 위치하였으며, 한산도가 앞바다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이곳에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되었다가 1601년 이후 고성으로 옮겨졌다. 이후 1894년 갑오개혁에 따라 없어지기까지 해안 방어의 요충지로 기능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성의 둘레는 약 794m, 높이는 약 4m였으며, 외부는 돌로 쌓고 내부는 흙으로 둑을 쌓아 만들었다. 지금은 성의 대부분이 파괴되어 남쪽 성벽 일부만 남아 있다. 성 안에서는 해자와 망대터 등이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