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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문에 의하면, 원경왕사는 대각국사(의천)를 따라 송나라에 갔다가 귀국하여 1104년(숙종 9년)에 승통(僧統)이 되었다. 예종의 스승이 되기도 하였고 그 후 귀법사에 머물다 입적하자 왕은 ‘원경’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비문은 김부식(金富軾)의 형인 김부일(金富佾)이 짓고, 글씨는 고려 인종 때 서예가인 이원부(李元符)가 썼다. 1125년(인종 3년)에 만들어진 이 비는 조각기법이나 간단한 형태의 지붕돌 등에서 고려 중기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비문에 의하면, 원경왕사는 대각국사(의천)를 따라 송나라에 갔다가 귀국하여 1104년(숙종 9년)에 승통(僧統)이 되었다. 예종의 스승이 되기도 하였고 그 후 귀법사에 머물다 입적하자 왕은 ‘원경’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비문은 김부식(金富軾)의 형인 김부일(金富佾)이 짓고, 글씨는 고려 인종 때 서예가인 이원부(李元符)가 썼다. 1125년(인종 3년)에 만들어진 이 비는 조각기법이나 간단한 형태의 지붕돌 등에서 고려 중기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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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e of Royal Preceptor Wongyeong from Banyasa Temple Site, Hapcheon'''
  
  
  
 
===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이 비는 원경왕사(1050-1119)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비문이 새겨진 몸돌과 거북 모양의 받침돌, 머릿돌을 모두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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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는 고려시대의 승려인 낙진(1050-1119)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탑비이다.  
 
 
비석의 각 부분들이 다른 비석들에 비해 얇으며, 머릿돌은 특별한 장식 없이 단순하다. 몸돌의 뒷면에는 원경왕사를 따르던 문도들의 직명(職名)이 새겨져 있다.
 
 
 
비석의 주인은 ‘담진’이라는 승려이다. 비문 내용에 의하면, 담진은 의천을 따라 송나라에서 유학하였으며, 귀국 후 1104년에 승통이 되었고 고려 예종의 스승으로도 활동했다고 한다. 70세에 입적하였으며, 예종이 ‘원경’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1125년에 만들어진 이 비석은 비문은 김부일이 지었고, 글씨는 이원부가 썼다.
 
  
''가야면 야천리 탑동 마을''옛 반야사 터에 있었던 것을 1961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비석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비각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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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진은 고려의 국사였던 의천(1055-1101)제자로, 1085년 의천을 따라 송나라에 가서 불법을 공부하고 1086년에 귀국하였다. 1114년 왕사가 되었으며, 개경 귀법사에서 입적하였다. 예종(재위 1105-1122)이 ‘원경’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장례를 지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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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비는 1125년 합천 반야사에 세워졌다. 절이 폐사된 후 반야사지에 남아있었는데, 1961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 비는 신라의 기본형태에서 벗어난 형태로 귀부의 중곽갑문과 아울러 생경한 문양표현, 옥개형으로 변한 개석 등 고려 중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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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 모양의 받침돌, 몸돌,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다. 앞면에 새겨진 비문은 낙진의 행적과 업적을 기리고 있으며, 뒷면에는 문도(門徒)를 열거하였다. 비문은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1075-1151)의 형인 김부일(1071-1132)지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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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2,01280000,38&pageNo=1_1_1_0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VdkVgwKey=12,01280000,38&pageNo=1_1_1_0
 
*https://blog.naver.com/hanjun105300/221817105861
 
*https://blog.naver.com/hanjun105300/221817105861

2020년 4월 15일 (수) 05:33 판


합천 반야사지 원경왕사비
Stele of Royal Preceptor Wongyeong from Banyasa Temple Site, Hapcheon
합천 반야사지 원경왕사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합천 반야사지 원경왕사비
영문명칭 Stele of Royal Preceptor Wongyeong from Banyasa Temple Site, Hapcheon
한자 陜川 般若寺址 元景王師碑
주소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산1-1
국가유산 종목 보물 제128호
지정(등록)일 1963년 1월 21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고려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합천 반야사지 원경왕사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원경왕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碑)로, 반야사의 옛터에 있었던 것을 1961년에 해인사 경내인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비는 거북받침돌과 비몸, 지붕돌을 갖추었는데, 각 부분이 얇은 것이 특징이다.

비문에 의하면, 원경왕사는 대각국사(의천)를 따라 송나라에 갔다가 귀국하여 1104년(숙종 9년)에 승통(僧統)이 되었다. 예종의 스승이 되기도 하였고 그 후 귀법사에 머물다 입적하자 왕은 ‘원경’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비문은 김부식(金富軾)의 형인 김부일(金富佾)이 짓고, 글씨는 고려 인종 때 서예가인 이원부(李元符)가 썼다. 1125년(인종 3년)에 만들어진 이 비는 조각기법이나 간단한 형태의 지붕돌 등에서 고려 중기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영문

Stele of Royal Preceptor Wongyeong from Banyasa Temple Site, Hapcheon


영문 해설 내용

이 비는 고려시대의 승려인 낙진(1050-1119)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탑비이다.

낙진은 고려의 국사였던 의천(1055-1101)의 제자로, 1085년 의천을 따라 송나라에 가서 불법을 공부하고 1086년에 귀국하였다. 1114년 왕사가 되었으며, 개경 귀법사에서 입적하였다. 예종(재위 1105-1122)이 ‘원경’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장례를 지원하였다.

탑비는 1125년 합천 반야사에 세워졌다. 절이 폐사된 후 반야사지에 남아있었는데, 1961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거북 모양의 받침돌, 몸돌,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다. 앞면에 새겨진 비문은 낙진의 행적과 업적을 기리고 있으며, 뒷면에는 문도(門徒)를 열거하였다. 비문은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1075-1151)의 형인 김부일(1071-1132)이 지었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