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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경상좌도병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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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경상좌도병영성
Military Headquarters of East Gyeongsang-do Province, Ulsan
대표명칭 울산 경상좌도병영성
영문명칭 Military Headquarters of East Gyeongsang-do Province, Ulsan
한자 蔚山 慶尙左道兵營城
주소 울산광역시 중구 서동 149-8번지 외
국가유산 종목 사적
지정(등록)일 1987년 7월 18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지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72,828㎡
웹사이트 울산 경상좌도병영성,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울산 경상좌도병영성은 조선 태종 17년(1417)에 구릉을 따라 돌로 계곡을 감싸며 쌓는 ‘포곡식’ 방식으로 축조된 성으로, 경상좌도의 국방을 맡은 병마절도사가 있는 곳이다. 울산만에서 태화강과 동천으로 이어지는 곳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지리와 군사적 요충지에 성을 쌓았다. 을미개혁(1895)으로 군사제도가 개편되어 병영이 폐지되기 전까지 왜적의 내륙침입로를 견제하는 등 동남해안권 방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조선시대 병영성의 규모와 구성, 훼손과 복구 과정은 당대 지리지 등 여러 문헌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병영성의 동서남북으로 옹성을 갖춘 성문과 치성, 해자 등의 견고한 방어시설을 두었다. 성 안에는 객사인 선위각(宣威閣), 병마절도사의 근무처인 체오헌(掣鰲軒) 등 주요 건물과 무기와 군수물자를 보관하는 창고로 추정되는 시설과 우물, 연못 등이 있었다. 현재 병영초등학교 자리에서 객사의 유물로 추정되는 주춧돌, 기단 등이 발굴되었으며, 그 주변에는 연못을 돌로 쌓은 흔적이 남아 있다.

울산 경상좌도병영성은 임진왜란(1592)과 정유재란(1597) 당시 왜군이 성벽을 헐어 울산왜성을 쌓는 과정에서 크게 훼손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Quote-left.png 바닷가 변두리의 성은 가장 먼저 적과 대치하는 지역인데도 무너진 성을 수리하지 못하고, 못은 메워져 평지가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울산의 병영은 주장이 주둔하는 곳인데도 성과 연못이 무너지고 메워졌으며 문에는 문짝도 없습니다. 지금 제찰사가 성안에 있는데 사나운 짐승이 넘어 들어와 사람과 말을 죽이거나 해칠까 염려하여 성 위에다가 그물을 쳐놓았으니 그 성의 높이를 이로써 알 수 있습니다. Quote-right.png
출처: 선조실록(1601년)


17~18세기에 병영성과 성내 관아, 객사 등의 주요 건물들을 복구하였는데, 이 사실은 18세기 지리지인 『여지도서』에 나타난다. 조선 철종 11년(1860)에 병마절도사 이원희가 남문 밖에 외성을 쌓은 일이 당시의 기록인 『영남영지』에 적혀 있으며, 그 모습은 19세기 후반 제작된 「영좌병영지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울산 경상좌도병영성은 이상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7년 국가지정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2010년부터 지속적인 보수와 정비 사업을 통해 관리되고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