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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송담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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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담서원
대표명칭 송담서원
한자 松潭書院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송담서원길 27-7 (언별리)
지정(등록) 종목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지정(등록)일 1973년 7월 31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송담서원,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해설문

국문

송담서원은 율곡 이이(栗谷 李珥)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강릉 지역 유림들이 세운 조선 시대 사립 교육 기관이다.

선조 25년(1592)에 서원 건립 논의가 있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이후 인조 2년(1624)에 이이가 왕으로부터 문성(文成)이라는 시호*를 받자, 공조 참의를 지낸 김몽호와 사헌부 감찰을 지낸 이상필을 중심으로 서원 건립을 다시 논의하였다.

인조 8년(1630)에 강원 감사 윤안성과 강릉 부사 이명준이 유림의 요청을 받아들여 학산리에 석천서원을 짓고 이이의 위패를 모셨다. 효종 3년(1652)에 강원 감사 김익희와 강릉 부사 이만영이 서원을 지금의 자리인 언별리로 옮겼다.

강릉 지역의 유림이 여러 번 사액**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리자, 현종 1년(1660)에‘송담’이란 현판을 받아 국가의 공식적인 지원을 받게 되었다. 고종 5년(1868)에 서원 철폐령에 따라 문을 닫았다가, 1905년에 유림이 송담사(松潭祠)를 다시 짓고 오늘날까지 다례제***를 지내고 있다.

현재 송담서원에는 제사를 받드는 송담사, 유생들이 공부하던 동재와 서재, 강당, 서고, 묘정비가 있다. 영조 2년(1726)에 세워진 묘정비는 영의정 정호가 글을 짓고, 영의정 민진원이 글씨를 썼다. 송담서원에서는 매년 음력 2월 두 번째 정일(丁日)에 지역 유림이 다례제를 올리고 있다.


  • 시호(諡號): 제왕이나 재상, 유현(儒賢)들이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칭송하여 붙인 이름.
  • 사액(賜額): 임금이 사당(祠堂), 서원(書院), 누문(樓門) 따위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리던 일.
  • 다례제(茶禮祭): 차를 올리며 지내는 제사.

영문

A Confucian academy, called seowon in Korean, is a private education institution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that usually combined the functions of a Confucian shrine and a lecture hall.


영문 해설 내용

서원은 조선시대에 설립된 사설교육기관으로, 선현 제향과 교육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송담서원은 조선의 학자이자 문신인 이이(1536-1584)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강릉 지역 유림들이 세웠다. 1592년 서원을 건립하기 위한 논의가 있었으나, 임진왜란이 일어나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1624년 인조가 이이에게 ‘문성(文成)’이라는 시호를 내리면서, 서원 건립을 다시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1630년 강원 감사 윤안성과 강릉 부사 이명준이 유림의 요청을 받아들여 학산리에 석천서원을 짓고 이이의 위패를 모셨으며, 1652년에 강원 감사 김익희와 강릉 부사 이만영이 서원을 지금의 자리인 언별리로 옮겼다.

이후 강릉 지역의 유림이 여러 번 사액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리자, 1660년에‘송담’이라는 사액을 받아 국가의 공식적인 지원을 받게 되었다. 1868년 서원 철폐령에 따라 문을 닫았다가, 1905년에 유림이 송담사를 다시 지었다.

현재 송담서원에는 이이의 위패를 모신 송담사, 강당, 동재와 서재, 서고, 묘정비가 있다. 1726에 세워진 묘정비는 영의정 정호(1648-1736)가 글을 짓고, 영의정 민진원(1664-1736)이 글씨를 썼다. 매년 음력 2월에 지역 유림이 제사를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