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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22일 (월) 20:49 기준 최신판
하나는 자리를 비우고, 하나는 이름을 바꾸었다:초은정과 정각정 이야기
이야기
광주 북구 효령동 학동마을에는 한때 초은정이라는 정자가 서 있었다. 이 정자는 성리학자 이호헌이 만년에 짓기 시작했으나 완성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자, 그의 아들 이상학과 이상호가 뜻을 이어 아버지의 호를 따 ‘초은정(超隱亭)’이라 이름 붙였다.
정자의 현판 글씨는 서화가 윤용구가 썼으며, 이곳에서는 종종 시회가 열려 지역 유림들의 모임이 이어졌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1956년, 이길신이 정자의 목재를 매수하여 옮겨 세우면서 초은정은 본래 자리를 비우게 된다.
이후 이길신은 수곡동 수곡마을에 새로운 정자를 세우고, 부친 이장섭을 기리기 위해 ‘정각정’이라 이름 지었다. 1959년 완공된 이 정자는 초은정의 정신을 이어받으면서도 새로운 의미를 품은 공간이 되었다. 초은정의 자취는 사라졌지만, 그 목재는 정각정의 기둥으로 다시 세워져 또 다른 역사를 품었다.
하나는 자리를 비웠고, 하나는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초은정과 정각정은 모두 선비의 뜻과 후손의 효심이 깃든 공간으로, 광주 지역 유학의 정신이 옮겨 다닌 흔적이다.
스토리 그래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