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2024-C318

광주문화예술인문스토리플랫폼
이동: 둘러보기, 검색


일제강점기 광주의 체육인

이야기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의 광주에서는 근대 체육의 보급과 청년운동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1924년 창설된 갑자단(甲子團)은 전라남도 광주 최초의 축구클럽으로, 김복실(金卜實)이 선수로 활동하였다. 김복실은 해방 이후 광주청년단 결성대회에서 북부대장으로 선출되고, 광축단 초대 단장을 맡아 지역 체육 진흥에 기여하였다. 1946년 가을, 그는 광주시민운동회를 총괄하며, 행사 개최지였던 조선대학교(당시 광주묵은바탕운동장)에서 지역민의 체육 참여를 독려했다.

김후옥(金厚玉)은 일본 강도관에서 유도 3단을 취득한 뒤, 광주 YMCA 회관 종합체육관 관장으로 권투·유도·역도·레슬링·기계체조를 지도하였다. 그는 녹성구락부 체육관을 세워 활동 무대를 넓혔으며, 정인세와는 서울YMCA 유도부 시절부터 인연을 맺었다. 정인세는 광주에 정착 후 YMCA 유도부 사범과 수피아여학교 농구 코치를 맡았다.

주봉식(朱奉植)은 광주YMCA 체육부 권투 사범으로 활동하며 흥학관에서도 권투를 가르쳤다. 그는 광주청년단 부단장으로도 선출되어 청년계와 체육계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이처럼 갑자단·광축단·YMCA를 중심으로 한 체육 활동은 광주 지역 근대 스포츠 발전과 청년 사회운동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스토리 그래프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