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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이름이 바뀐 사건

이야기

광주지역의 행정 지위는 조선 시대 두 차례의 강등을 겪었다. 1430년 무진군 강등 사건광주목사 신보안이 지역민 노흥준의 기생 첩을 빼앗으려 하다 충돌이 발생한 데서 비롯되었다. 사건이 중앙에 보고된 뒤 노흥준은 유배되고, 광주목은 무진군으로 강등되었다. 이후 광주목 복호 과정에서 이선제(李先齊)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복호 후 건립된 희경루(喜慶樓)는 이를 기념하는 상징 건축물로 전해진다.

1489년 광산현 강등 사건에서는 우윤공이 귀가 중 화살을 맞았으나 아전과 목사가 이를 수습하지 못한 일이 문제가 되었다. 조정은 이를 풍속을 바로잡고 후일을 경계하려는 조치로 해석하여 광주목을 광산현으로 강등시켰다.

스토리 그래프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