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룡
기본 정보
| 이름 | 양산룡 |
|---|---|
| 한자명 | 梁山龍 |
| 이칭 | 우상(宇翔)(자) |
| 생몰년도 | 1552~1597년 |
| 성별 | 남성 |
정의 및 개요
- 양산룡(梁山龍)[1552~1597]은 조선 후기 전라도 광주에서 활동한 의병이자 정려문을 정려받은 효자이다.
특징
- 양산룡의 본관은 제주(濟州)이고 자는 우상(宇翔)이다.
- 양사위(梁思渭)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양이하(梁以河), 할아버지는 양팽손(梁彭孫), 아버지는 양응정(梁應鼎)이다. 어머니는 박중윤(朴仲允)의 딸 죽산박씨(竹山朴氏)이다.
- 형은 양산해(梁山海), 동생은 양산숙(梁山璹), 양산수(梁山岫)이다.
- 양산룡은 1579년(선조 12년)에 식년시에 합격했다. 1597년(선조 30년)에 심암의 죄를 고발하는 상소를 올렸다.
- 선조 8년 동인과 서인으로 분당되었을 때 서인을 지지했다. 1589년에는 선조에게 정암수 등과 이산해, 정언신, 정인홍, 유성룡 등을 멀리할 것을 상소하였으나 추국당했다.
-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송제민 등과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김천일 막하에서 운량장으로 활동하였다.
-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 때 나주 삼향포에서 왜적을 만나 순절하였다.
- 1635년(인조 13년) 때 전라도 생원 홍탁 등의 상소로 양산숙과 양씨 집안의 효자, 열녀, 절부 등을 표창하여 정려문(旌閭門)이 세워졌다. 이때 양산룡은 효자로 정려되었다.
- 1803년, 정려문에 '양씨삼강문'이라는 현판이 제작되었다. 이헌중이 '양씨삼강문' 현판을 썼다. 양씨삼강문은 1985년에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되었다.
- 아버지 양응정과 형제 양산숙, 양산수 등과 함께 양송천묘역에 안치되었다.
의미관계망
참고자료
| Type | Resource | Title/Index | URL |
|---|---|---|---|
| 웹리소스 | 디지털광주문화대전 | 양산룡 | https://gwangju.grandculture.net/gwangju/bukgu/toc/GC60001964 |
| 웹리소스 | 광주역사문화자원스토리텔링 | 양씨 삼강문 | http://gjstory.or.kr/sub.html?pid=48&formtype=view&code=440 |
Contextual Relations
| Source | Target | Relation | Attribute | Remark(Note) |
|---|---|---|---|---|
| 양산해 | 양산룡 | 양산해는 양산룡의 형이다 | ||
| 양산숙 | 양산룡 | 양산숙은 양산룡의 동생이다 | ||
| 양산수 | 양산룡 | 양산수는 양산룡의 동생이다 | ||
| 양산룡 | 양씨삼강문 | 양산룡은 효자로 정려를 받아 양씨삼강문에 이름이 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