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수
개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다.
생애
1912년 출생하였다.
1935년 5월, 중국 난징에서 의열단에 입단하여 화북 지역의 연락원으로 활동하였다.
1939년 8월, 조선의용대 제2구대 소속으로 만주 선양으로 파견되어 선전공작을 하였다.
1942년 조선의용대가 한국광복군에 통합되었을 때 한국광복군 제1지대에 소속되어 산시, 화베이지구 등에서 지하공작을 전개하였다.
이후 유원해, 윤원장 등과 함께 임시정부요원 및 한국광복군 간부들로부터 20일에 걸친 특수 훈련을 받았다.
1944년에 만주지구공작반으로 활동하였다. 이때, 백범 김구의 주선으로 광복군에서 활동하던 19살의 전월순과 결혼하였다.
1944년 9월에는 선양에 도착해 김세원, 김언수, 고윤원, 안흥기 등을 포섭해 조직망을 구축하고 첩보 공작을 전개하였다. 김세원을 한인이 많이 거주하는 류허로 파견하였고 김언수, 고윤원, 안흥기 등을 국내로 침투시킴으로써 조직망을 구축하였다.
1945년 초에는 유원해를 충칭에 보냈다.
1945년, 한미연합작전의 한국측 대표로 선정되었다. 미국 정보기관인 전략정보국과 함께 한국광복군과 미군이 국내에 상륙하기 위한 OSS 작전, 일명 독수리 작전을 추진하는 일에 협력하였다.
1955년에서 1956년에는 한국독립당의 최고위원직을 지냈고, 1958년에는 충청남도 도지사 직무대행 서리 직책을 잠시 지냈다.
196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1977년에는 건국포장,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다.
1992년 1월 30일 향년 80세의 나이에 노화로 인해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아들로는 김원웅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