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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예관 신규식'''(申圭植, 1880년 1월 13일 ~ 1922년 9월 25일)은 조선 말기~일제강점기 초기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이다. 그의 자호는 예관이며, 본관은 고령 신씨이다. | + | '''예관 신규식'''(申圭植, 1880년 1월 13일 ~ 1922년 9월 25일)은 조선 말기~일제강점기 초기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이다. 그의 자호는 예관이며, 본관은 고령 신씨이다. |
== 생애 == | == 생애 == | ||
| − | 예관 신규식은 한성부에서 태어났고, 본향은 충청북도 청원(현재 충청북도 청주시)이다. | + | 예관 신규식은 한성부에서 태어났고, 본향은 충청북도 청원(현재 충청북도 청주시)이다. |
| − | 그는 한어학교와 무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군인으로 복무한 뒤 나라의 위기에 깊은 분노를 느껴 항일운동에 투신하였다. 을사조약 이후, ‘동제사’라는 비밀결사조직을 설립하고 활동하였다. | + | 그는 한어학교와 무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군인으로 복무한 뒤 나라의 위기에 깊은 분노를 느껴 항일운동에 투신하였다. 을사조약 이후, ‘동제사’라는 비밀결사조직을 설립하고 활동하였다. |
| + | 1905년 을사늑약 이후 고향으로 내려가 운동을 계속했고, 민족 계몽과 교육기관 설립에도 힘썼다. | ||
| − | + | 1911년 상하이로 망명한 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핵심 인물이 되어 법무총장, 외무총장, 국무총리대리 등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토대를 닦았다. | |
| − | + | 1922년, 상하이에서 순국하였다. 정부는 1962년 그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 |
| − | 1911년 상하이로 망명한 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핵심 인물이 되어 법무총장, 외무총장, 국무총리대리 등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토대를 닦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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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922년, 상하이에서 순국하였다. 정부는 1962년 그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 ||
== 주요 업적 == | == 주요 업적 == | ||
| − | * 대한자강회 및 대한협회에서 항일 계몽 운동 전개 | + | * 대한자강회 및 대한협회에서 항일 계몽 운동 전개 |
| − | * 비밀결사 단체 동제사 설립 및 활동, 신해혁명 참여 | + | * 비밀결사 단체 동제사 설립 및 활동, 신해혁명 참여 |
| − | *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법무총장, 외무총장, 국무총리대리 역임, 중화민국 및 국제 외교 활동 | + | *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법무총장, 외무총장, 국무총리대리 역임, 중화민국 및 국제 외교 활동 |
| − | * 독립운동가로서 ‘한국혼(韓國魂)’ 등의 저술 활동 | + | * 독립운동가로서 ‘한국혼(韓國魂)’ 등의 저술 활동 |
== 사망 및 추모 == | == 사망 및 추모 == | ||
| − | 1922년 9월 25일, 상하이에서 순국하였다. 그의 순국 100주년(2022년)에는 고향 청주에서 기념식이 열렸고, 그의 공적과 생애가 재조명되었다. | + | 1922년 9월 25일, 상하이에서 순국하였다. 그의 순국 100주년(2022년)에는 고향 청주에서 기념식이 열렸고, 그의 공적과 생애가 재조명되었다. |
| − |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 |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 저서 == | == 저서 == | ||
* 『한국혼(韓國魂)』 | * 『한국혼(韓國魂)』 | ||
| − | * 시집 『아목루(兒目淚)』 | + | * 시집 『아목루(兒目淚)』 |
== 평가 및 의의 == | == 평가 및 의의 == | ||
예관 신규식은 일제강점기 초기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설립에 기여한 대표적 독립운동가이다. | 예관 신규식은 일제강점기 초기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설립에 기여한 대표적 독립운동가이다. | ||
| − | 그의 생애와 활동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후대 독립운동사 연구와 민족정신 계승에 큰 의미가 | + | 그의 생애와 활동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후대 독립운동사 연구와 민족정신 계승에 큰 의미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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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3일 (수) 17:17 판
예관 신규식(申圭植, 1880년 1월 13일 ~ 1922년 9월 25일)은 조선 말기~일제강점기 초기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이다. 그의 자호는 예관이며, 본관은 고령 신씨이다.
생애
예관 신규식은 한성부에서 태어났고, 본향은 충청북도 청원(현재 충청북도 청주시)이다. 그는 한어학교와 무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군인으로 복무한 뒤 나라의 위기에 깊은 분노를 느껴 항일운동에 투신하였다. 을사조약 이후, ‘동제사’라는 비밀결사조직을 설립하고 활동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고향으로 내려가 운동을 계속했고, 민족 계몽과 교육기관 설립에도 힘썼다.
1911년 상하이로 망명한 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핵심 인물이 되어 법무총장, 외무총장, 국무총리대리 등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토대를 닦았다. 1922년, 상하이에서 순국하였다. 정부는 1962년 그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주요 업적
- 대한자강회 및 대한협회에서 항일 계몽 운동 전개
- 비밀결사 단체 동제사 설립 및 활동, 신해혁명 참여
-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법무총장, 외무총장, 국무총리대리 역임, 중화민국 및 국제 외교 활동
- 독립운동가로서 ‘한국혼(韓國魂)’ 등의 저술 활동
사망 및 추모
1922년 9월 25일, 상하이에서 순국하였다. 그의 순국 100주년(2022년)에는 고향 청주에서 기념식이 열렸고, 그의 공적과 생애가 재조명되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저서
- 『한국혼(韓國魂)』
- 시집 『아목루(兒目淚)』
평가 및 의의
예관 신규식은 일제강점기 초기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설립에 기여한 대표적 독립운동가이다. 그의 생애와 활동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후대 독립운동사 연구와 민족정신 계승에 큰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