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육군 건군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건군기는 1945년 광복 이후 미군정기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후를 거치며 국군이 창설·정비된 시기를 말한다. 미군정 하에서 군사영어학교와 조선경비대를 중심으로 군 조직이 형성되었으며, 이후 정규 육군으로 발전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본군·만주군·중국군·광복군 출신 인사들이 초기 장교단을 구성하였다.
배경
광복 직후 대한민국 육군의 인적 구성은 일제강점기와 항일전쟁 과정에서 형성된 서로 다른 군사적 배경을 지닌 인물들로 이루어졌다. 초기 장교단은 주로 일본군·만주군 출신 직업 군인, 일본군에 징병된 군인, 중국 국민혁명군 출신, 그리고 독립군 및 한국광복군 계열로 구분되는 네 가지 출신 배경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이러한 군맥의 차이는 군 조직 운영 방식과 인사, 지휘 체계 형성 과정에 영향을 미쳤다.
미군정과 건군 과정
광복 이후 한반도 남부를 통치한 미군정(1945~1948)은 치안 유지와 공산화 방지를 목적으로 군사 조직 창설을 추진하였다. 1945년 말 군사영어학교가 설치되어 장교 양성이 시작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조선경비대가 창설되었다. 이후 경비대는 병력과 조직을 확장하며 정규 군대로 발전하였다. 미군정은 군 조직 운영과 인사에서 미국식 군제와 훈련 체계를 도입하였으며, 실무 경험을 중시하여 일본군·만주군 출신 인력을 적극 활용하였다. 일본/만주군 출신은 중국군/독립군과 달리 미군 고문관과 함께 일하는 데 익숙하여 미군과의 실무에 유리함이 있었다. 이러한 정책은 단기간 내 군 조직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였으나, 출신 계통 간 불균형과 갈등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초기 장교단 구성
미군정 하에서 대한민국 육군의 일본군·만주군 출신 직업 군인들은 군사 경험과 조직 운영 능력을 바탕으로 초기 지휘관층을 형성하였으며, 일본군에 징병되었던 인원들은 단기 교육을 거쳐 하급 장교와 부사관으로 편입되었다. 한편 중국 국민혁명군 및 독립군·한국광복군 출신 인사들도 장교로 참여하였으나, 귀국 시기와 인원상의 제약으로 인해 수적으로는 제한적이었다. 이들 가운데 김홍일은 중국 국민혁명군 장성 출신으로 건군 초기 육군 장교단에 참여하여 해외 항일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군 조직 정비에 관여하였다. 이러한 출신 배경의 차이는 초기 육군의 인사 구조와 지휘 체계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우익과 좌익의 충돌
대한민국 육군의 건군기에는 해방 직후 한반도 전반에 존재하던 우익과 좌익 간의 이념적 대립이 군 조직 형성 과정에도 반영되었다. 일부 군사 조직과 치안 기구 내에서는 좌익 계열 인사들이 활동하였으며, 군의 성격과 지휘 체계를 둘러싼 갈등이 발생하였다. 미군정은 공산주의 세력의 군 내 확산을 우려하여 좌익 성향 인사에 대한 배제와 검증을 강화하였고, 그 결과 우익 성향 인사들이 군 조직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