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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馬嵬<br/> 미앙 || [[파일:6.jpg]] || 미앙궁을 뜻한다. 전한의 정궁. 당나라 시기까지 존재했지만 현재는 소실되었다. 長恨歌에서는 당나라의 궁전을 가르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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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南內<br/> 남내 || [[파일:6.jpg]] || 당현종이 거주했던 흥경궁이 북쪽의 태극궁(太極宮), 대명궁(大明宮)과 구별하기 위해 남내(南内)라고도 불렸다. 현종이 사천에서 장안으로 돌아온 후 숙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남내에서 지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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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昭陽殿<br/> 소양전 || [[파일:6.jpg]] || 하나라 때 궁전의 이름이며, 조비연의 동생인 조소의가 기거하던 궁전이다. 長恨歌에서는 양귀비가 살아 있을 때 기거하던 궁전을 가르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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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5일 (월) 13:50 판
: '長恨歌'의 공간적 배경 중심으로
중어중문학과 배정아
목차
Contents
개요
백거이(白居易, 772-846)는 당나라 중기의 저명한 시인이다. 그는 洛陽 부근의 鄭州 新鄭県에서 태어났다.
백거이는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올라 여러 관직을 역임했으며, 특히 민중의 고통을 다룬 서정시로 유명하다. 그의 대표작인 '琵琶行'[1]과 '長恨歌'[2]는 감정의 깊이와 서사적 요소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정치적 문제에도 관심을 가졌고, 사회의 불합리함을 비판하며 민중의 삶을 대변하는 시를 썼다. 생애 말기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평화로운 삶을 살며 문학 활동을 계속했다. 백거이는 그의 시와 사회적 메시지 덕분에 후세에 큰 영향을 미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생애
유유자적한 인생관
백거이는 자가 樂天이고, 만년에 香山居士로 불렸다. 그는 일정한 거주지 없이 곤궁한 생활을 한 학자 가문의 출신이지만 타고난 재능으로 부지런히 독서에 열중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관직을 지냈다. 황제에게 간언을 올려 좌천되는 참담한 시련에도 꽃과 나무를 심으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활에 만족할 줄 아는 유유자적한 인생관을 가지고 있었다. 조익[3]은 백거이가 평생 자신의 재능에 대해 강한 자신감과 자존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입신출세를 추구하지 않는 소박한 삶과 고용한 정서를 가진 인물로 평가하기도 했다.
지재겸재(志在兼濟)와 행유독선(行有獨善)[4]
백거이는 젊은 시절 관직에 나아가 자신이 품은 유가적 가치와 이상을 펼치려는 강한 의지와 포부를 지녔다. 부패한 실정을 비판한 목소리를 내 지방으로 좌천되기도 하였다. 유가를 바탕으로 현실비판에 중점을 둔 풍자시와 요동치는 정국의 변화에서 자신을 잘 보전하려는 내면적인 의식이 깃든 한적시와 감상시에서 작가의 사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우국우민의 애국정신과 현실비판 사상을 가졌고, 은퇴 이후에는 여러 사상을 개방적으로 자유롭게 취하는데 적절한 조절과 절제로 자신을 온전히 잘 지켜서 겸제와 독선을 실천한 인물이다.
長恨歌
〈장한가>는 당 현종과 양귀비의 애정 비극을 다룬 서사시이다. 백거이가 장한가 를 지은 것은 대략 35세 때로 806년 겨울이나 혹은 이듬해 봄으로 추정된다. 백거이는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포부도 문학적으로 실현하고자 했다. 백거이가 장한가를 지은 것은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 이야기에 감동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여자를 경계하여 나라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막고, 후세에 교훈을 주는 데 있었다고 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이 시는 애정시이자 경세시이고 풍자시이자 교훈시이다.[5]
長恨歌 장소 정리
| 장소 | 사진 | 설명 |
|---|---|---|
| 六宮 육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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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中國)의 궁중(宮中)에서 황후(皇后)의 궁정(宮庭)과 부인(夫人) 이하(以下)의 다섯 궁실(宮室). 바둑에서, 빈집이 여섯 집인 형세(形勢). 정육궁(正六宮)과 매화(梅花) 육궁이 있다. 長恨歌에서는 육궁에 거처하는 천자들의 모든 후비들을 가르킨다. |
| 華淸池 화청지 |
![]() |
중국(中國)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의 리산산(驪山山)에 있는 못. 당현종이 양귀비와 놀던 곳으로 유명하다. 황제와 후비들의 전용 목욕탕이며, 원래는 온천궁이라 불렸다. 매년 겨울과 봄이 되면 여기에 와서 머물렀다. |
| 溫泉 온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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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청지의 온천을 뜻한다. |
| 驪宮 여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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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시대의 화청궁(華清宮)은 여산(驪山)에 있었기 때문에 '여궁'(驪宮)으로 불린다. |
| 九重城闕 구중궁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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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 거듭 쌓은 담 안에 자리한 대궐이다. 長恨歌에서는 당현종이 거주했던 흥경궁을 가르키는 것으로 예상된다. |
| 西南 서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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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서남쪽 운남성, 귀주성, 사천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
| 峨嵋山 아미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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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천성에 있는 산이며 도교와 불교의 성지이며, 중국 4대 명산이다. 長恨歌에서는 촉산을 가르킨다. |
| 蜀江 촉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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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사천성 성도 지역을 흐르는 금강을 말한다. |
| 行宮 행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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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나들이 때에 머물던 별궁(別宮)이다. 長恨歌에서는 행재소를 가르킨다. |
| 馬嵬 마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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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현종 때 양귀비(楊貴妃)가 피살된 곳이다. |
| 太液芙 태액지 |
![]() |
중국에서 만들어졌던 옛 못 이름. 한나라•당나라•청나라 때 각기 만들어졌으며, 청의 태액지는 지금의 북경 북해(北海)와 중남해(中南海)가 해당했다. 당현종과 당헌종이 궁전을 중수해 전각을 증축하고 태액지를 준설했다. 長恨歌에서는 당나라 궁중의 지원을 가르킨다. |
| 臨邛 임공 |
![]() |
촉의 지명으로 지금 사천성 공래현 일대를 뜻함 |
| 馬嵬 미앙 |
![]() |
미앙궁을 뜻한다. 전한의 정궁. 당나라 시기까지 존재했지만 현재는 소실되었다. 長恨歌에서는 당나라의 궁전을 가르킨다. |
| 西安市 시안성 |
![]() |
산시성의 성도로 실크로드의 시작점이자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다. |
| 南內 남내 |
![]() |
당현종이 거주했던 흥경궁이 북쪽의 태극궁(太極宮), 대명궁(大明宮)과 구별하기 위해 남내(南内)라고도 불렸다. 현종이 사천에서 장안으로 돌아온 후 숙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남내에서 지냈다. |
| 昭陽殿 소양전 |
![]() |
하나라 때 궁전의 이름이며, 조비연의 동생인 조소의가 기거하던 궁전이다. 長恨歌에서는 양귀비가 살아 있을 때 기거하던 궁전을 가르킨다.
연보
772-787
772 대력 7년, 뤄양 부근의 정주 신정현에서 가난한 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800-808
800 29세, 진사에 급제했다. 810-827
810 39세, 당 헌종이 신라의 헌덕왕에게 보내는 국서를 황제를 대신해서 지었다. 836-846
836-42 65세-71세, 36년 형부시랑(刑部侍郞), 38년 태자소부(太子少傅), 42년 형부상서(刑部尙書)를 마지막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데이터
Data Table
Network Graph
Timeline
Digital Atlas
(추후 임베딩)
참고문헌
오프라인 자료
(서술)
온라인 리소스
김상홍. (2013). 「長恨歌」와 「琵琶行」의 諷刺와 隱喩 攷. 漢字漢文敎育, 1(30), 473-508.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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