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의 모스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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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일마을 안동권씨 가문의 독립운동가들

  • 가일마을에서는 사회주의 운동가들이 많이 배출되어 '안동의 모스크바'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기록으로 확인 가능한 안동권씨 가문의 독립운동가는 모두 13분이다. (출처 : 막난 권오설 열사, 권오진, 다음 블로그.)
  1. 권준희(權準羲, 1849~1936) : 대한광복회의 고문으로 군자금모금 활동에 주력. 1918년 체포되어 공주감옥에 수감되었다가 고령으로 풀려남.
  2. 권준흥(權準興, 1881~1939) : 대한광복회 단원으로 권준희와 함께 활동. 원흥의숙에서 강학활동.
  3. 권재수(權在壽, 1882~?) : 1920년 신흥무관학교 생도 모집 중 체포됨.
  4. 권준표(權準杓, 1894~1953) : 원흥의숙에서 강학활동. 1923년 안동풍산소작인회 집행위원 활동
  5. 권영식(權寧植, 1894~1930) : 대한광복회 단원. 권준희와 함께 활동하다가 1918년 체포되어 공주감옥에 수감. 1920년 안동청년회와 조선노동공제회 안동지회 설립에 참여.
  6. 권영달(權寧達, 1901~1945) : 1926년 6.10 만세운동과 관련한 일로 경찰에 쫒기게 되어 자퇴. 경북 예천 대창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을 때 최현배 등의 한글학자들과 교류하며 민족운동 전개.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 이후 일제의 감시를 피해 도망다니던 중 사망.
  7. 권오설(權五卨, 1897~1930) : 조선공산당 창당 주역이자 1926년 6·10 만세운동 기획자로 활약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옥고를 치르다 1930년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하였다. 2005년 3월 1일 건국훈장독립장이 추서되었다.
  8. 권오상(權五尙, 1900~1928) : 일명 오돈(五敦). 1924년 서울에서 신흥청년동맹에 가입해 활동. 1925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해 조선공산당 입당. 1926년 6.10 만세운동 당시 태극기와 격문 제작 등 주도적인 역할을 하다가 체포되어 수감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석방되었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
  9. 권오운(權五雲, 1904~1927) : 1926년 6.10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됨. 귀향 후 신간회 안동지회에 참여해 활동하다가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
  10. 권오헌(權五憲, 1905~1950): 신간회 안동지회에 참여. 안동청년동맹 풍산지부 집행위원 활동.
  11. 권오직(權五稷, 1906~?) : 1946년 조선공산당의 기관지 《해방일보》 사장을 지냄. 권오설의 막내동생.
  12. 권각(權慤, 1923~1943) : 1940년 서울 사직공원에 대한독립만세 벽보 붙여 체포되어 투옥됨.
  13. 권혁수(權赫壽, 1926~?) : 일명 재탁(在倬). 1944년 조선회복연구단을 조직해 무장 투쟁을 계획하다가 1945년 체포. 광복으로 풀려남.

권오설 관련 유적·유물

  1. 6월의 독립운동가 권오설, 낯선 이름이지요? 오마이뉴스, 2021.6.1. 기사.
  2. 권오설, 살인적 고문 견디고 '6·10만세'를 지켜냈다 - (사회주의 독립운동가②) 조선공산당 산하 고려공산청년회 책임 비서 권오설(1897~1930), 오마이뉴스, 2020.12.29

권오설 생가터

남천고택(南川古宅) 옆으로 전해지나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어 흔적을 확인하기 어려움.[1] [2]

권오설 선생 기적비

2001년 가곡 저수지 옆 언덕에 '항일 구국 열사 권오설 선생 기적비(紀蹟碑)' 건립.

권오설 묘

  • 2008년 부인과의 합장묘로 조성하기 위한 이장 과정에서 일제가 고문 흔적을 숨기기 위해 제작한 철제관이 확인되었음. 이 관은 현재 독립운동기념관으로 옮겨져 전시되고 있음.

'독립운동 성지'인가 '때늦은 애국'인가? , 프레시안, 2021.03.15. 기사

  • 천상의 컬렉션 37회 독립운동특집-권오설 철제관 (37:20 부터) (KBS방송, 2018.10.27 방송)

향후 확장(아이디어 기록)

  • 가일마을과 연관되어 있는 다른 독립운동가 : 김우모(金羽模, 1874~1965) 여사가 1934년 만주로 망명한 두 아들과 함께 살기 위해 1940년 망명길에 오르면서 지은 '눈물뿌린 이별가'라는 가사도 남아 있다.김우모 여사는 안동 서후면 금계마을 의성김씨 김세락의 딸로, 가일마을 안동권씨 권준희의 며느리이자 권동만의 아내이다. 친정은 독립운동 명문가로 유명하다. [3] / 안기성-조선노농총동맹 중앙집행위원 역임. 권오설과 함께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