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의 키워드 - 문화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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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의 키워드 - 문화교류 (한국학국제학술회의2015)
임상균(NPO Japan-Korea Cultural Exchange Association전무이사

1. 한일국교정상화 50년 개론 2015년은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의 기념하는 해이다. 한국에서는 식민지지배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청산이 불충분하다는 이유를 들어 1965년 국교정상화를 비판하는 견해가 있지만 한국과 일본이 상호협력 해서 쌓아 올린 성과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그 자체로 동아시아지역 내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함께 공유하는 동반자를 가지게 된 것은 한일양국에 충분히 축복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50년 동안 한일관계는 1990년을 기준으로 냉전시기(전반기)와 탈냉전시기(후반기)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전반기 한일관계는 냉전체제하에서의 반공자유진영의 일원으로서 <반공연합체 구성>과 한국의 빈곤을 극복시키기 위해 양국 시장의 연계를 심화시키는 <경제발전>이란 큰 축으로 한일간 제반 문제가 존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보다 더 많은 <접근과 협력의 시대>였던 것은 틀림없다. 그시기 한일양국의 제휴는 비록 양국의 과거사에 대한 불철저한 봉합과 정치적 타협이 있었지만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후반기 최근 25년 동안 일본사회에서 한국의 존재감과 심리적 우월감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즉, 한국에서 중산층의 성장을 바탕으로 한 정치적 민주화와 시민운동, 시민사회의 교류도 비약적으로 활발해졌다. 냉전 이후 한일간에 통용되는 <아시아의 문화회귀 의식>이 작용되고, 1998년 문화교류관련 개방이 이루어지면서 일본에서 한류, 한국에서 일류가 사회현상으로 퍼지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비대칭적인 한일관계가 수평화되고 상호 존재감도 균형화되면서 양국에서 냉전시대에 봉합되었던 한일간의 제반 문제들이 상호 일거에 분출되기 시작했다. 쌍방향의 다양하고 직접적인 정보 접근이 한일관계가 양호할 때는 한류 붐으로 연결 되었지만 지금은 한국의 결점을 도드라지게 하는 혐한의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역사는 그 시대를 살아온 삶과 꿈,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생각한다. 또 변화된 현재의 시점에서 해석되는 것이 역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해석의 기준은 바로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 즉, 생명, 평화, 인권, 환경, 사랑 의 문제 등 이런 보편적 관점에서 해석되고 역사를 보면서 실타래처럼 얽힌 한일의 문제를 하나씩 풀어 나가야 할 것이다. 한일국교정상화50주년에 담은 함축된 의미, 한국은 별로 중요하게 평가하지 않았고, 일본은 평가는 했으되 지키고 실천하려는 마음이 부족했던 50년의 과실, 다시 한 번 우리를 뒤돌아보게 한다. 나는 50년이라는 역사 속에서 그 시대에 따라 이슈가 있어 왔고 갈등도 있어 왔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비관하고 경직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갈등은 때론 불가피할 수 있겠지만 꼭 그래야만 된다고 믿을 필요가 없는 새로운 미래를 위한 진통일 뿐이다. 나는 항상 시련 뒤에 축복이 온다는 믿음이 있다! 그래도 50년 기간 한일양국이 서로 잘 대응, 극복해 나왔다고 보며 그런 갈등을 관리할 수 있는 역량 과 지혜, 가능성이 한일양국에는 충분히 있다고 믿는다.

2. 변화된 한일관계 지금 한일관계가 딱,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일본: 아도노 마츠리)라는 속담에 들어 맞는다. 먼저 한일관계의 판이 바뀌었다는 점을 상호 먼저 인식해야 한다. 판이 바뀌었는데도 양국에서는 문제의 발화점, 해결방식 등에 있어 아직도 과거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이다. 일본관점에서 보면 한국사회 내에서 일어난 변화가 한일관계에 큰 파장을 던지고 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한국국민은 국가발전으로 자신감을 얻었고, 잃어버린 20년간 장기침체가 이어진 일본을 이전만큼 평가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며, 일본 여론은 최근 자신감을 키운 한국이 역사문제로 도덕적 우위에 서려는 과도한 요구를 반복하는데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특히 2011년 3.11 동일본대지진 후에 갈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양상인데, 작은 문제가 크게 되고 그 갈등도 국제화 되고 아베총리 칼러와 박근혜대통령 스타일의 충돌에 의해 양국 국민의 감정도 서서히 멀어지고 있고 불신감을 넘어 일부 혐오감마저 생기게 되었다. 거기에 반해 한국여론은 일본의 우경화가 한일관계 악화의 주요인중 하나로 지적하고 있다. 지금의 한일관계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양국은 서로 잘 아는 것처럼 과신과 오만에 빠져 있는 게 문제라면 가장 큰문제이다. 실제는 서로 알지 못하면서 과거에만 사로잡혀 상호 대화도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거울을 보고 자기한테 이야기하는 기가 막힌 꼴이다. 양국의 매스컴도 자기가 믿고 싶은 것들, 보고 싶은 것들만 보도하고 있는 것 같다. 불행하게도 한일양국 모두 이런 흐름에 브레이크를 걸어줄 양심 세력은 급격히 줄어들었으며, 사회에서 그 위상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거기에다 심판과 감독에 입장에 서있어야 할 양국의 지도자와 미디어가 갈등의 최전선에서 선수로 뛰고 있으니, 갈등의 해결자, 중재자는 찾아보기 힘든 형상이다. 그 동안 일본은 상대적으로 동아시아 지역 내에서 중국의 대두에도 불구하고 한일양국은 가치관의 공유라고 하는 입장에서 한국과의 친근감을 어필해왔지만 최근에는 여러 국면에서 한일양국의 대중국 에 대한 다른 시각, 대응,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한국이 친중국적 태도를 보이고 대일 <역사문제공동 연합전선>을 이루게 되니 여기에 대한 소외감과 배신감이 극대화되어 한일양국 악화의 구조적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더 이상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 전반기에 기대했던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배려와 수용, 여유는 없어진 지 오래다. 과거에는 일본이 잘못한 것이 사실이니 참아야 한다는 태도를 견지해왔지만 지금은 계속된 사과 요구에 사과 피로증까지 생겼으며 이런 현상으로 일본사회에서 혐한 헤이드 스피치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여기에 비해 한국은 일본지도자의 몰이해와 망언으로 인한 망각 피로감으로 한일 상호 부정적인 인식이 최고조에 달해 있다. 한마디로 최근의 한일관계는 상호성, 인정성, 평등성이라는 한일 상호교류의 가장 기본적 자세에 따뜻함마저 결여된 느낌이 든다. 최근의 한일 수평화로 인한 급작스러운 한일간의 경쟁관계 표면화로 상호 제로섬 게임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왔다면, 이젠 한일양국이 변화된 위상에 걸맞게 상호인정과 평등성에 입각해 공통과제를 놓고 경쟁적 협력관계로 레벨 업 시킬 수 있도록 한일관계를 이해하고 새로운 한일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노력을 실질적으로 전개해야 할 시기에 와있다.

3. 한일문화의 원형과 변화 일본인에게 변하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을까? 일본인의 마음(心)을 알 수 있는 예전 대표적인 고전(만요집, 일본 서기등)에 나와있는 3종류의 노래가 있다. 천황에 대한 충성, 국가에 대한 충성, 주군에 대한 충성 등이다. 국가 즉, 공(公)에 대한 충성심, 자기자신을 헌신함으로써 자기자신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또한 일본인은 잘 슬퍼하며 잘 우는 것 같다. 한때 유행한 적이 있는 사까모또의 (一人ぽっちの夜涙をこぼれないように歩く)라는 노래가 있다. 뭔가 일본인은 정서상 혼자서 슬퍼하는 경향이 많다. 혼자서 슬퍼하는 것이 뭔가 일본인의 시대적 정신성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일본인에게는 한국어의 사랑에 해당하는 (愛)라는 한자어는 있지만 거기에 상응하는 순수 일본어인 야마도언어(大和語)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사랑을 확실히 표현하지도 않는다. 한마디로 일본 남성은 여성에게 사랑에 대한 말을 하는데 대단히 인색한 면이 있는데, 일본인에게 있어 최고의 사랑은 역시 꾹 억누르고 참는 지고지순의 사랑인 것 같다. 그런데 비해 일본인에게 사적인 사랑보다 공(公)이 중요하기 때문에 오오야께(おおやけ)라는 公에 대한 것은 두 가지 언어가 존재한다. 한국에는 愛 라는 한자어 외에도 사랑이라는 한국 순수 말이 두 가지로써 존재하지만, 공에는 한자어 외에 다른 순수 한국어가 없다 것이 비교가 된다. 일본의 국민문학의 대표적인 작가 시바료타로 선생의 화신(化神)을 보면 공을 위해, 또는 공의 일을 할 때는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 내용이 나온다. 일본은 칼의 문화로 사무라이 정신이 있는데 사무라이 명예를 지키기 위해 할복을 하면서 죽어가는 경우가 왕왕 있다. 자기 주인인 남편이 멸사봉공으로 공을 위해 죽어간다면 거기에 행복이 있다고 자랑하기도 한다. 그래서 <여기에 행복이 있다>(ここに幸あり)라는 노래가 나오기도 할 정도다. 그런데 한국의 대표적인 국민문학인 <태백산맥>을 보면 그 주인공이 <공>의 일을 하기 위해 빨치산 활동으로 산중에 들어가서 게릴라 활동을 할 때 그 어머니가 <공>의 일에 대한 잘못보다 며느리와 함께 보낼 수 없는 이유로 <가문>을 이을 수 없게 된다 것에 충격을 받는다. 그것은 한국인의 가치관으로 볼 때 가문을 잊지 못하는 것은 용서 받을 수 없는 불효이기에 어머니가 직접 며느리의 손을 잡고 산속으로 들어가 그 아들과 며느리를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한다. 즉, 한국인의 정신은 <충>과 <공>보다 부모에 <효행>을 하는 것이 국가를 위한 길이라고 먼저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 동일하게 <유교정신>을 공유하고 있는데도 한국은 가문을 중시하고 부모에게 효도를 하는 것이 곧 국가를 위한 길, 그것이 국가의 평화를 위한 길이고 국가의 전통과 문화를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효를 앞세우면 충을 할 수 없고, 충을 앞세우면 효를 할 수 없는 딜레마가 생긴다. 그래서 흔히 일본은 <공>의 문화가 있기에 국민들이 잘 순응하고 따라주기에 정치인이 정치하기 좋다는 말도 나온다. 그런데 냉전 이후 <문화의 아시아의 회귀>가 이루어지면서 한국과 일본에서는 아시아 문화의 재발견 과 재창조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고, 일본에 이상한 노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찾는 것이 무엇인가요 (探し物はなんですか) 라는 기타를 치면서 부르는 곡인데 그 가사를 보면 시대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책상 안에도 없고 가방 안에도 없고, 잊어버리면 퍼뜩 떠오르는.. 뭔가 이상한 마음의 공백을 표현한 노래이다. 일본 여성 거의 대부분이 남편으로부터 <당신을 사랑한다>라는 말을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 노래가 유행되고 좀 지나니까 일본사회에 이상한 일이 유행이 되고 있었다. 바로 <정년이혼> 이란 말이다. <당신만을 보며 살겠다. 거기에 나의 행복이 있다>라는 말은 벌써 옛말이 되었다. 90년대부터 시작되는 아시아문화에 대한 안심감과 회귀의식의 작용, 그리고 한일대중문화개방으로부터 드라마겨울연가가 유행되었고, 꽃미남으로부터 사랑이란 강력하고 자극적인 말이 연발되며 <길을 잃어버리면 북극성을 보고 찾아오라>는 <폴라리스>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일본 여성이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반면 보통 한국인이 알고 있는 일본의 <철도원: 뽀뽀야>, <러브레터> 의 이야기에는 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헌신의 아름다움 등이 있었고 그간 한일양국간에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서정성에 그 동안 한국인이 잃어버렸던 공백을 채워줄 만한 양국 공통적인 서정성이 있었기에 한국인에게 많은 감동을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양국의 문화교류, 즉 한류와 일류를 통해 상호 잃어버린 정서를 채워주고 보완해줌으로 많은 사회적인 영향과 변화를 끼쳐왔다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단적으로 표현해 보자면 도가라시(고추)와 와사비 문화이다. 즉, 동일한 매운맛이지만 밖으로 발산하고 주장하려는 한국의 매운 도가라시의 맛과 안으로 참아내려는 일본의 매운 와사비의 맛은 동일하면서도 차원이 다른 한일문화의 원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육적인 면에서도 한국의 교육과 일본의 교육의 차이가 있는데 한국은 자기 어필과 발신 할 수 있는 교육을 강조하는 한편, 일본 교육은 대체로 듣기 교육이 더욱 중시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의 일본도 많은 사회적 변화를 가져오면서 일본인이 예전에 남에 대한 배려와 안으로 수용하려는 모습에서 이제는 한국인처럼 확실히 자기주장으로 표현하며 <공>보다 자신의 삶과 가치를 더욱 중시하게 되는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제반 한일문화의 원형과 급격한 시대적 변화 속에 최근 한일관계에서 일어나는 움직임, 즉 부드럽고 조용한 것 같지만 일본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헤이드스피치>와 같은 혐한 데모가 일본 동경 한복판과 그것도 전국에서 매주 벌어졌던 상황과 대조적으로 오히려 한국은 말은 거칠고 강하게 표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서울 한복판에서 일상적인 반일데모도 없이 의외로 조용하다. 이러한 한일간의 모습은 참 대조적이며 특이하지 않을 수 없다.

4. 한일관계의 새로운 인식과 선택 최근, 굳이 한국과 일본이 잘 지내야 되느냐? , 또는 한일관계를 지금처럼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가? 라는 질문이 나온다. 최근 양국 여론조사에서 이젠 국민감정과 국익이 충돌하기 시작한 위험한 신호를 여러 곳에서 접하게 된다. 최근 한일양국 여론조사에 의하면 일본인과 한국인의 서로에 대한 감정도 급전직하 50%를 훨씬 넘어서기 시작했다. 양국에 대한 국가신뢰도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제는 위의 질문에 대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왔다. 분명한 것은 한국과 일본은 다른 편에 설 수 없다는 것이다. 한일관계는 분명 지금 과도기라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지금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왕 여기까지 왔기에 속에 담아두는 것보다 오히려 전부 토해내고 부딪히면서 상호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게 중요하고 결국에는 손을 잡고 같이 미래를 향해 함께 가는 것이 베스트라고 생각한다. 그 동안 한일양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의 지배와 인권의 존중이라는 가치관을 동아시아의 어떤 나라보다도 선진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지역의 선두주자임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 중국의 사이에 있는 <중간지대 국가>라는 <운명공동체 의식>을 가지며 상호 장점을 충분히 존중하고 협력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우선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여, 수평적 경쟁에 갇히지 않은 새로운 <수평적 협력의 윈-윈의 틀>을 적극 모색해야 하는 것이 한일 미래의 최고의 선택일 것이다. 한일문제는 더 이상 상대방의 일방적 양보만을 요구해서도 어느 일방의 문제로 책임을 전가해서도 안 된다. 이제는 환상을 버리고 서로가 상대방에게만 책임이 있고 상대의 변화를 선결 과제로 간주하는 사고방식에서 탈피해야 할 때이다. 상대를 바꾸기 위해 먼저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부터 바꾸어야 할 때이다. 인생에 있어 100점 만점 완벽한 인생은 없다. 그러므로 한일관계에 있어서도 100점 만점의 해답을 요구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이제는 제발 제반 한일문제에 대한 허들을 낮추어 상대국 정부가 받아주고 양국의 국민들이 이전처럼 웃고 즐겁게 교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국민은 냉철하며 현명하다. 한일 지도자와 미디어는 한일이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에 입각 하여 여론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국민을 설득해 나가야 한다. 또한 중국의 대두가 가지는 의미가 지정학적으로 한일양국에 주는 의미가 각각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며, 한일양국이 상호 다른 대중국 인식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며, 중국이 동아시아의 건설적이고 책임 있는 파트너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한일양국이 공동 연대하여 함께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금 한일관계에 필요한 것은 지금 상호 논리가 아닌 <감동>이다. 눈앞의 득실만 따지지 말고 시대적 변화에 맞는 상호 전략적 시너지 효과를 생각해야 할 때인 것이다. 이에 몇 가지 제언을 해본다.

  1.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한일지도자간의 <신뢰구축>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우선되어야 하며 그것이 올해 역사적인 해를 맞이하여 반드시 <양국 정상회담>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올해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뭔가 미래지향적이고 의미 있는 합의를 내놓지 않는다면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의 분위기는 결코 살아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양국지도자의 결단이 필요한 때이다. 이를 통한 대국적, 전략적인 <역사화해>를 선언해야 할 것이다. <역사화해의 핵심>은 양국정부가 역사인식과 과거사 처리 문제를 더 이상 정치외교의 쟁점으로 삼지 않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함께 천명하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교류하고 협력함으로써 함께 이익을 확장시킬 수 있는 이웃이다. 서로 밉다고 이사 갈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역사 갈등을 완화하고 과거사 처리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며 역사화해를 이룩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풀 뿌리 시민사회가 앞장서서 <문화교류>를 통한 완충적인 환경과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발판을 놓아야 할 것이다.
  2. 역사 화해의식이 이루어지고 나면 그걸 정리하고 교훈 삼아 <한일양국의 공생 50년, 100년의 비전>을 만들 워킹 그룹, 학습 조직 등 집단지성을 활용한 채널구축과 더불어 새로운 미래지향적인 공생의 비전 즉, 한일양국이 함께 공통의 꿈인 향후 <한일공생50년 100년의 그랜드 비전>을 정리해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했으면 한다.
  3. 향후 한일양국의 공생의 시대, 즉 향후 문화산업공동체, 경제공동체를 열어가려면 그걸 지원 해주고 견인해나갈 인재를 발굴, 육성해주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유럽에서 적극적으로 실시하여 효과를 보아, 지금 가치공유를 이루고 있는 것처럼 <한일청소년교류>의 확대를 정부차원에서 목표를 세워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소년 교류사업의 확대는 두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세대간의 만남과 대화를 통한 이해를 넓히는데 불가결한 일로서 앞으로도 양국정부, 지방자치 단체 및 한일관련 각종 민간 네트워크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와 지원이 요청되는 바이다.
  4. 이제 문화교류도 단편적이지 않은 다양하고 다층적인 교류로 확대하는데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확대해나갔으면 한다. 한류도 일류도 이젠 음악과 문화적인 측면에서가 아닌 좀더 업그레이드되어 상호 협력을 극대화하는데 <한일 공동 프로젝트>를 많이 생산해내고 적극적인 지원을 해 나가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한 한일 풀 뿌리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육성과 관심이 중요하다.
  5. 한일상호 문화적 아이덴티티의 상호인정과 공유를 통한 <한일문화의 전략적 제휴>를 통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문화상품 창출>로 갈수 있도록 양국문화의 상호교류를 국제화, 글로벌화의 단계로 이끌어 나가는 상호의 노력과 한일정부차원의 정책적인 협력이 적극적으로 필요하다.
  6. 한일문화교류를 확대해 나가는 데는 경직된 중앙보다는 오픈 마인드가 있는 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교류의 확대가 필요한 때이다. 일본에서는 미야자끼현에 백제촌 즉, 백제마을과 내년이면 고구려민 이주 1300주년을 맞이하는 관동 수도권 사이타마 고구려 집성촌, 한국에서는 충남 부여의 무녕왕릉, 663년 일본 수군2만5천, 육군7천명이 백제 부흥군으로 참전하여 전멸된 전북 부안의 백촌강(백촌강 전투로 그 시점 백제 인구 3분의 1이 일본으로 왔다는 설이 있다)등 한일 상호의 문화교류의 원점을 서로 알리는 역사와의 대화요, 참된 시민교류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지방 발 한일의 역사를 향한 새로운 발견과 마음의 문을 열어나가는 데에도 노력을 함께 추진해 볼 필요가 있다.
  7. 오늘날 다원화 사회에서는 시민네트워크가 발신기지가 되어 정치, 외교에 처방이 전달되고 반영되는 <미들(middle)파워>의 역할기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므로 한일양국의 시민이 중심이 되어 양국의 정치를 움직이게 하는 풀 뿌리 시민사회의 <미들 파워 네트워크>의 활성화와 육성이 필요하다. 문화라는 소프트파워를 기반으로 한 미들 파워 네트워크의 활성화가 굳건한 향후 한일공생 50년, 100년을 이끌어갈 새로운 한일관계의 뿌리 깊은 나무가 되리라 믿는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풀 뿌리 시민사회의 <문화의 힘>을 통한 해결책이 한일 갈등을 최소화하고 화해의 지름길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문화는 정치, 경제, 교육, 예술전반에 걸쳐 분리될 수 없는 가장 기본적인 토양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갈등과 반목을 해결해온 것은 다름 아닌 문화이며 또한 사람을 따뜻하게 이해하고 배려해주며 변화시키는 것도 항상 <문화의 힘>을 통한 감동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본다. 따라서 작금의 한일양국간 인식의 차,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신뢰회복이 제일 중요하며, 그런 의미에서 <한일관계의 키워드는 문화교류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 실례로 2005년도에도 독도문제로 양국간 갈등이 한창 고조되어있었지만 한류와 일류라는 문화적 토양이 살아있기에 기본적인 한류 붐도 지속되고 시청률도 높았으며 한국방문도 최고조였다는 사실을 우린 알 수 기억한다. 제가 소속해있는 NPO법인이 2011년 3.11 동일본대지진이후 가장 큰 피해지인 이시노마끼시의 중학교 오오가츠 중학교 어린이들을 문화예술을 통해 그들의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정신적인 치유를 하는데 지원활동을 계속적으로 해오다 2012년 8월, 한일양국간 위안부, 독도문제로 각종 교류가 중단되는 험악했던 시기에 당NPO법인은 그들과 그들을 지원했던 문화예술 팀과 미디어 등을 데리고 한국에 수학여행 겸 문화교류를 단행했던 경험 속에서 정치, 외교 갈등과 달리 한국국민들과 한국의 학교, 예술단체, 지방자치단체장, 양국의 주요매스컴과 SNS를 통한 따뜻한 성원은 바로 문화교류의 중요성을 대변하는 평화의 메시지로 한일양국에서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그러기에 갈등은 있더라도 문화교류는 결코 중단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신념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안타깝게도 이러한 문화교류를 실천하려는 풀 뿌리 시민사회가 거의 줄어들었고 활동도 급감하고 있는 상태이다.

5. 문화교류의 핵심가치와 역사를 향한 한일 화해와 용서의식 냉전후의 세계는 하드파워로서 군사력과 정치, 외교적 역량이 국제관계를 좌우하던 시대에서 탈피 하여 문화를 상징하는 소프트파워, 즉 <문화의 힘>을 통한 국민교류를 통하여 리드하는 새로운 시대가 되었다. 문화비평가들은 <소프트파워>를 21세기 국제정치를 제압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소프트파워는 이미 냉전을 종식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미국하버드대학의 조셉 나이 교수는 이야기한다. 1989년 동구의 몰락을 가져오고 베를린장벽을 허무는데도 소프트파워로서 TV와 방송이 어떻게 힘을 발휘했는지를 우리는 알 수 있다. 서방국가들의 다양하고 자유분방한 TV프로들이 국경을 넘어 Spill Over하여 동구 국가 국민들이 볼 수 있게 됨으로 인해 문화의 충격을 안겨주었고 결국 폐쇄적이고 낙후된 사회주의체제로부터 탈출해 나오려는 시민의 물결이 서방 행 열차를 가득 메운 끝에 결국 공산체제는 붕괴된 것이다. 여기서 내셔널리즘이라고 하는 것과 상반된 성격을 갖고 있는 문화의 역할 과 차별성을 명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급변하는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한일문화교류>가 정치, 외교적 갈등과 마찰을 넘어서 최소한 한일양국 국민들간의 안정적 관계의 유지를 지켜주고 있는 마지막 보루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린 주목해야 한다. 대중문화교류의 비약적 확대는 한일양국관계 강화에 공헌한다라는 일본 국제교류센터의 야마모또 타다시 이사장의 말도 있다. 일반적으로 문화적 친근감을 활용하면서 교류활동을 촉진시키는 것은 상호의존관계가 심화되고 세계화가 진전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한일간의 문화, 인적 교류의 증대와 그에 따른 각종 플러스 효과로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교류는 즐겁지만 결코 즐거운 일만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문화교류의 진정한 목적은 그저 알면서 재미있게 지내는 것이 아닌 미래를 생각하는 것, 즉, <문화교류의 핵심가치(Core Value)> 는 지역의 평화에 공헌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일관계의 키워드가 문화교류>라고 강조하고 싶다. 한일문화교류는 폴리쉬라는 영혼이 담겨 있어야 하며 그것의 지향점은 궁극적으로 동아시아의 중심인 한일양국의 사랑과 평화에 대한 메시지 발신에 있으며, 매번 반복되는 한일간의 악순환을 끊어내고 선순환적인 한일의 공생 50년, 100년을 견인해나가는데도 일정 역할을 수행해 나가는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한일문화교류를 통한 화해와 평화가 미래의 우리 후손 에게 남겨줄 가장 값진 유산이라고 믿는다. 소화천황이 생전에 계실 때 한국의 대통령을 맞이해 개최한 궁중만찬회 때 <일본이 통일국가를 만들 때 한국으로부터 문화적 은혜를 받았다. 한국은 은인의 국가다>라고 그 당시 정말 말하기 힘든 이야기를 한국대통령께 전했다. 그 다음 일본천황이 한국대통령과 만났던 2002년 월드컵이 있을 때 평성천황 은 <나의 피는 무령왕의 피가 흐른다.>라며 어떤 면에서 한일 혈연관계를 선언했다. 이제는 서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통 큰 한일 <화해와 용서의식>이 이루어져야 한다. 독일과 프랑스 가 1,2차 전쟁으로 일본과 한국보다 훨씬 심한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드골대통령은 독일의 점령으로부터 독립했을 당시, 독일 본으로 먼저 달려가서 독일 시청 사 앞에서 <독일 국민이여 힘을 내라!>라고 먼저 손을 내밀어 잡아주었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으며, 거기에서부터 유럽공동체의 역사적 인 시작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린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일본천황 계는 지금까지 <어모니>라는 말을 쓰고 있다. 그건 고오무천황의 <어머니>를 뜻하는 말이다. 아직까지 일본 천황 계에서 쓰이는 제문, 언어에는 조선어가 많다. 한일관계, 이건 끊을래야 끊어질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역사적, 운명적 관계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화해와 용서를 푸는 순서가 꼭, 일본에서부터 먼저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제는 구태적이고 후진적인 발상이다. 이제는 일본의 향방에 의해 대상적으로 움직이기보다는 한국도 과거와 달리 어느 정도 수평화 되었고 선진화되었고 세계 속에 한국으로 당당하게 역사를 리드해 나가야 하는 시기에 도달해있다. 이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며, 과감히 소리(小利)가 아닌 대리(大利)적 관점에서 한일간의 화해와 용서를 한국이 먼저 손을 내밀어 주도적이며 주체적으로 풀어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적극 선도해 나가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 여기에 일본도 적극적인 화답을 주저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진정 인도의 시성 타골이 말한 <동방의 등불>로서 한국이 동아시아시대에서 중심역할을 주도적으로 당당히 풀어나가고, 또한 과거의 악순환을 스스로의 손으로 확실히 끊어내며 명실공히 새로운 동아시아 시대의 중심으로 사랑과 평화의 이니셔티브를 선점하고 리드해나가는 미래를 향한 용기 있는 대보(大步)의 첫 걸음이지 않겠는가.

발표문 목록

구분 제목
1 한일 양국, 역사대화 어떻게 할 것인가? - 양국 정부간 역사대화의 회고와 전망 -
2 日韓中歷史共同硏究における歷史地理学の手法(Historical Geographic Method in Joint Researches on Japanese-Korean-Chinese History)
한중일 역사공동연구에서 역사지리학의 수법
3 한일 민간교류에 관한 활동소개와 제안
4 한일관계의 키워드 - 문화교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