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 환희대

big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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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丁卯) 추석을 앞둔 어느 달 밤, 정혜사 소림초당에 주석하고 계시던 만공선사께서 완월(玩月)하시던 중, 덕숭산 비원(秘苑)이라고 일컬어진 환희대 도량에 이르시어 ”좋고 좋도다! 참으로 환희(喜)로운 터로다."라고 찬탄하시었다.

1927년 10월, 그 터에 간단한 초옥을 짓고 환희암으로 명명한 후, 비구니 스님 세분이 정진하며 사셨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초옥이 퇴락하여 1942년, 새로 기와를 올린 암자를 짓고 상량식을 거행하였다.

이후, 몇몇 스님들이 이곳에 거처하며 정진했으나 만공스님 입적(入寂) 후에 돌보는 사람이 없어 비게 되자, 서산에 살던 김국평이라는 만공스님의 신도가 이 암자를 지을 때 크게 시주하였다는 연고로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노환으로 대중처소에 머물기 어려우셨던 김일엽스님을 모시기 위해 손상좌인 월송(月松)스님이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의 고문변호사로 계시던 황해진(黃海振)변호사를 통해 법적인 절차를 밟아 김국평씨에게 소정의 대금을 지불하고 환희대를 인수하였다. 그 이후 김일엽스님께서는 대중처소(大衆處所)에서 열반하시려는 뜻에 따라 1970년 견성암 선원으로 이거(居)하실 때까지 만 10여년을 환희대에 주석하 시며 제자들과 함께 정진하셨다.

1966년 덕숭총림 수덕사 제 2대 방장(方丈)을 지내신 벽초 선사께서 환희대 고가(古家) 옆 객실채를 신축해주셨다. 1971년 김일엽스님 입적 이후 손상좌 월송스님을 위시한 문도들이 힘을 모아 유고 문집을 간행하고, 1973년에는 환희대 앞뜰에 김일엽스님을 기리는 5층추모석탑을 건립하였다. 1978년 월송스님과 정진스님은 김일엽스님의 기념도량을 정비, 환희대 원통보전(圓通寶殿)과 요사채 보광당(普光堂), 난야(蘭若) 등의 창건불사를 시작했다. 덕숭총림 수덕사 제 3대 방장이신 원담선사의 지도아래 많은 불자들의 도움으로 1984년 원통보전과 보광당의 낙성식을 봉행하였다. 2007년 12월(음력 11월) 정진, 월송스님의 불사공덕(佛事功德)을 기리는 이니보탑(二尼寶塔)을 건립하였다.

출처 : 환희대(인터넷 카페) https://cafe.daum.net/hwanheedae/8SM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