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산(寶山)스님
'1950년 한국전쟁이후 보산스님이 10여년간 주석하면서 향천사를 재건하였으며 1971년 극락전 1982년 서선당과 단월당을 지었다.'고 하고 있어 예산 향천사나 제7교구본사인 수덕사에 주석하시는 스님으로 보인다.
'내(박경훈)가 대한불교신문(지금 불교신문의 전신)의 편집국장으로 있을 때였다. 보산(寶山)스님이 화주(化主)가 되어 설봉 스님이 현토한 염송을 출판하기로 하였는데, 설봉 스님의 염송[1]강의를 받은 인연으로 그 일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조판(組版)을 하는 사이에 설봉 노스님이 입적(入寂)하셨다. 노스님이 생존해 계실 때는 원고정리를 하면서 의심이 나는 부분은 노스님에게 직접 물어서 원고정리를 할 수 있었으나 스님이 입적하신 뒤에는 물을 곳이 없게 되어 교정을 보는 일이 막막하였다. 그래서 보산 스님과 상의하여 제방(諸方)의 선지식(善知識)에게 묻기로 하였다.'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선사인 것으로 보인다.
[참고자료] 길은골 아낙의 일상 향천사와 메타세콰이어길과 메밀꽃
- ↑ 『선문염송(禪門拈頌)』, 혜심(慧諶)스님이 역대 선사들의 공안(公案) 및 그에 대한 후인들의 염(拈)·송(頌) 등을 모아 편집한 것을 후배인 몽여(夢如)가 증보한 불교 공안집이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선문염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