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호학밀(晴湖學密)

big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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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호·법명 : 청호학밀(晴湖學密)
  • 생애·업적

청호학밀(晴湖學密, 1875~1934)스님(나재철) (다른 이름: 청호양익) 스님은 1875년 1월26일. 경기도 고양 뚝섬(지금은 서울)에서 태었다. 부친 나윤천(羅允天)과 모친 원씨(元氏)의 둘째 아들로, 속명은 나재철(羅在哲)이었다. 법명은 학밀(學密), 법호는 청호(晴湖). 오은(五隱)이라는 아호를 쓰기도 했지만, ‘나청호 화상’이란 이름으로 많이 불리었다.
12세 되던 해 “출가하지 않으면 오래살기를 바라지 말라”는 말을 듣고 양양 명주사로 입산했다. 은사는 월운(月運)스님. 1889년 명주사에서 성담(性潭)스님에게 사미십계를 수지하고, 1897년에는 평창 월정사 용허(龍虛)화상에게 비구계를 받았다. 같은 해 월정사 선원에서 하안거를 했다.
어린 시절 고향의 한문서당에서 <통감(痛鑑)> <대학(大學)> <맹자(孟子)> <논어(論語)> <중용(中庸)>을 수료했다. 출가 후 명주사 일봉(日峯)강백 문하에서 사미과 초등과정을 졸업하고, 예천 용문사 혜옹(慧翁)스님에게 중등과를 공부했다. 이어 고성 건봉사 대강백 진하(震夏)스님 문하에서 고등과를 마치고, 같은 강원의 초우(草友)스님에게 수의과를 수료했다. 1911년 봉은사 선시(選試)에 합격해 대교사(大敎師)가 됐다.
1908년 조선불교 원종 감사부장을 맡았으며, 1912년.1915년.1924년 세 차례 봉은사 주지를 지냈다. 1924년에는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교무원 이사로 선임됐다. 1925년 7월 다수 인명을 구조하여 칭송을 받았지만 총독부에 협조하여 친일파라는 비판을 받았다. 1934년 음력 7월20일 봉은사에서 입적했다. 세수 60세. 법랍 49세. 당시 신문에는 “광주 대본산 봉은사 주지 라청호 선사는 지난달 29일에 별세하였음으로 2일 정오에 수송동 각황사에서 본말사 승려가 집합하여 영결식을 거행한다고 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각황사는 지금의 조계사.
※ 출처 : 불교신문(2008.06.07) 18. 청호학밀(晴湖學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