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파혜정(圓坡慧淨)
- 법호·법명 : 원파혜정(圓坡慧淨)
- 생애·업적
1933년 전북 정읍에서 출생한 스님은 고등학생 시절에 공주 마곡사에서 생종하처래 사향하처거(生從何處來 死向何處去)라는 주련을 읽고 나서 삶에 대한 의문이 가슴을 짓누르게 되자 발심 출가 했다. 스님은 1953년 수덕사에서 남훈스님을 계사로, 금오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하고, 1955년에 조계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구족계와 보살계를 수지했다.
1957년 불국사 선방을 시작으로 법주사, 해인사, 봉암사 그리고 월출산 상견성암에서 삼년결사를 마쳐 23안거를 성만했다. 처음 출가해 법주사 강원을 마친 후에도 경전과 어록 읽기를 좋아했는데, 어느 날 스승이신 금오스님으로부터 "글 읽기를 좋아하면 중노릇 힘들다"는 말씀을 듣고 화두 참구에 더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렇다고 경전을 아주 멀리하지는 않았다. 60년대 불교정화의 기치가 높게 걸렸을 때 중앙종회의원직을 맡아서 종단 일을 돌보면서도 태국 왓벤랴 사원에서 남방불교를 3년간 수학했다.
1972년 동국대학교 감사를 시작으로 1976년 법주사 주지, 1977년 제14대 총무원장직을 맡아서 대한불교조계종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서 스님 특유의 온화한 설득력으로 종단 안정과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1992년 대한불교조계종 단일계단 계단위원, 제 5교구 본사 대승보살계 전계대화상을 맡기 전부터 전국 모든 본·말사의 계단에 참석해 계율의 소중함과 중요성을 가르쳤다. 또한 법주사 회주로써 충북 불교의 위상과 법주사의 전법도량으로서 기틀을 다지고 종단 법계위원과 법계위원장직을 맡아서 종단의 기강과 위엄을 드러나도록 했다. 2004년 5월 해인사에서 대종사 법계를 수지해 종도들에게 수행의 귀감이 됐다.
스님은 평생을 청빈하게 살고 모든 이들을 차별 없이 자비로서 맞았다. 지위 고하나 빈부여부는 마음에 없었다. 스님의 방문은 항상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었고, 몸이 좀 불편하실 때조차 방문객을 돌려보내지 않았다.
스님의 몸이 불편하자 제자들은 괴산 각연사로 모셔서 시봉했는데 입적하기 10일전에 맏상좌 지명스님께 열반송을 읊어 주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도송
生死去來本來空 (생사거래본래공)
回顧首山碧水碧 (회고수산벽수벽)
千年石虎産麒麟 (천년석호산기린)
莫尋前三三後三 (막심전삼삼후삼)
나고 죽고 오고가는 것이 본래 실체가 없어라
머리를 돌이키니 산도 푸르고 물도 푸르도다!
천년 묵은 돌 범이 기린을 낳으니
달리 전 삼삼 후삼 삼을 찾지 말지어다.
열반송
四大六識本來空(사대육식본래공)
六根六塵戱弄劇(육근육진희롱극)
千喜萬樂一春夢(천희만락일춘몽)
大休觀處見性具(대휴관처견성구)
지수화풍 사대와 여섯 감각기관의 모든 인식이 본래 공하니
그 인식들은 여섯 감각기관과 그 대상사이에서 일어나는 희롱극에 불과하다.
밖의 경계에 의해서 기뻐하고 즐기는 것들에 빠지지 말라. 모두가 한 토막의 봄꿈일 뿐이다.
이 육신의 헐떡거림을 지우고 유정무정의 모든 생멸을 평등하게 관해 보라. 내 본성에 갖추어져 있는 부처와 지옥을 보살도의 발원에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보게 되리라.
※ 출처 : 충청투데이(2011.02.24. 21:25) 청빈·차별 없던 삶 … 열반의 길 떠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