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전(法田)스님
- 법호·법명 : 도림법전(道林法傳, 1925~2014), 도림법전(道林法田, 1925~2014)
- 생애·업적
법전스님은 1925년 음력 12월8일 전남 함평군 대동면 연암리에서 아버지 김원중, 어머니 최호정의 3남1녀 중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속명은 향봉(香奉)이다. 어린 시절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한 스님은 14세 되던 해인 1938년 장성 고불총림 백양사 청류암으로 출가했다. 1941년(17세) 영광 불갑사에서 설호(雪浩)스님을 계사로 설제(雪醍)스님을 은사로 수계득도 했다. 법명은 법전. 1947년(23세) 백양사 강원(승가대학) 대교과정을 마치고 백양사의 만암(曼庵)스님 회상에서 참선수행에 정진했다.
1948~1950년(24~26세) 문경 봉암사 결사에 동참했다. 이때 성철스님을 만났다. 봉암사 결사 해체 후 결사참여 대중들은 흩어졌다. 스님은 경남 고성 문수암에서 하안거 중 한국전쟁을 맞았다. 1951~1954년(27~30세) 통영 안정사 천제굴에서 성철스님을 시봉하면서 하안거와 동안거를 했다. 도림(道林)이라는 법호는 이 무렵 성철스님으로부터 받았다.
1955년 대구 팔공산 파계사 성전암에서 성철스님을 모셨으며 문경 원적사와 상주 갑장사에서 안거했다. 1956년(32세) 문경 대승사 묘적암에서 동안거에 들어 홀로 정진했다. 1957년 파계사 금당선원에서 정진하면서 성전암 성철스님에게 법을 묻고 정진력을 깊이 하게 됐다.
1958년 태백산 홍제사에서 하안거, 동안거, 1959~1966년 문경 갈평 토굴 및 태백산 도솔암, 사자암 백련암, 대승사, 김용사 금선대, 지리산 상무주암 등 제방선원에서 정진했다. 1967~1969년 해인총림에서 안거하면서 총림 유나를 역임했다. 1969~1984년(45~60세) 김천 수도암에 주석하면서 가람 중수와 선원을 복원하여 제방의 납자를 제접했다.
1981년 중앙종회의장, 1982년 총무원장을 역임한 후 1983년 수도암에서 6년 결사 시작했다. 1984~1993년(60~69세) 해인총림 선원 수좌. 1986~1993년 해인사 주지. 1993~1996년(69~72세) 해인총림 부방장, 1996년 해인총림 제7대 방장, 2000년(76세) 원로회의 의장을 거쳐 2002년 조계종 제11대 종정으로 추대됐다. 2003년 법문집 <백척간두에서 한 걸음 더>를 펴내고 2006년(82세) 해인사 제8대 방장으로 재추대되었으며 같은 해 대구 동구 진안동에 도림사를 창건했다. 2007년(83세) 조계종 제12대 종정으로 재추대됐다.
2009년 자서전 <누구 없는가> 출간했으며 2014년 12월23일(음력 11월2일) 도림사 무심당(無心堂)에서 원적에 들었다. 법랍 73년, 세수 90세. 원적 후 스님이 머물던 해인사 퇴설당에서 스님이 쓰던 경상(經床) 서랍에 임종게가 남겨져 있었다.
山色水聲演實相 (산색수성연실상)
曼求東西西來意 (만구동서서래의)
若人問我西來意 (약인문아서래의)
巖前石女抱兒眠 (암전석녀포아면)
“산빛과 물소리가 그대로 실상을 펼친 것인데/ 부질없이 사방으로 서래의를 구하려 하는 구나/ 만약 어떤 사람이 나에게 서래의를 묻는 다면/ 바위 앞에 석녀가 이이를 안고 재운다 하리라.”
※ 출처 : 불교신문(2017-09-11 13:19)[이진두의 고승전] <20> 도림당 법전대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