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월스님(觀月, 1904生, 비구니)
관월(觀月)스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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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 | 관월(觀月) |
법호 | |
속명 | 정경옥(鄭敬玉) |
출생 | 1904.07.26. |
출가 | 1935년 |
입적 | 1998.04.04.(음3.8) (세수95세, 법랍64세) |
사찰 | 석황사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리 473-11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관월(觀月)스님은 지극한 무소유행 실천으로 참수행의 표본을 보인 대한민국의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경력
연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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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 | 강원 홍천 출생 |
1935 | 홍천 수타사에서 보현(普賢)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42 | 성호(性鎬)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범룡(梵龍)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 |
1954 | 홍천군 두촌면 철정리 가리산에 정교암(正敎庵) 창건 |
1960 | 인제군 북면 한계리 장수대로 들어옴 |
1998 | 1998년 4월 4일(음력 3월 8일) 석황사에서 입적(세수95세, 법랍64세) |
수행지침 | 천수관음 정진, 무상으로 돌려라. 평생 시간에 맞추어 관음정진 |
수계제자 | 해성(海成)·경조(敬眺) |
활동 및 공헌
출가
관월(觀月)스님은 1904년 7월 26일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에서 아버지 정씨의 9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이름은 정경옥이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정규교육을 받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스님은 1935년 홍천 수타사로 출가하여, 1942년 성호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고, 같은 해 범룡(梵龍)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하였다.
수행
관월스님은 1954년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철정리 가리산에 정교암(正敎庵)을 창건하고 염불정진에 전념하였다. 1960년에는 동안거에 맞추어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3리 설악산 장수대에 빈손으로 들어가서 바위굴을 파고 쌀 한 말과 약간의 소금으로 100일 정진을 마친 후 그곳에 토막집을 짓고 3년 동안 정진을 하였다.
스님이 처음 장수대에 들어올 때 비구스님 세 분이 함께 동참하였는데, 한 분은 3일 뒤에, 또 한 분은 5일 뒤에, 마지막 남은 한 분마저 10일이 지나자 무서워서 견딜 수 없다며 떠나고 말았다. 비구스님들이 떠나면서 스님에게 같이 떠날 것을 권했지만 스님이 거절하자 ‘비구니 몸으로 얼마나 견디나 두고 보자.’며 떠났고 한다.
바위굴에서 낙엽을 덮고 정진할 때면 밤에 호랑이가 와서 자고 가기도 했다.
스님이 장수대 바위굴 옆에 조그만 토굴을 짓고 정진하던 1970년대 말에 국립공원보호법이 제정되면서 ‘무허가 건물 철거 명령’이 떨어져 석황사도 설악산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고, 현재의 석황사로 이주를 하게 되었다.
평생 새벽예불과 백일기도를 남의 손에 맡기지 않았던 스님은 반듯한 법당을 지어 불자들의 귀의처(歸依處)로 삼게 하고 싶다는 간절한 발원을 하였고, 그렇게 시작한 대웅전과 삼성각 불사를 평생의 원력으로 삼았다. 93세의 노스님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단청과 법당의 닫집 등 남은 불사를 불철주야로 원만 회향하였다.
두타행
스님은 불자들에게 ‘절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합장을 하고 부처님을 대하듯 정성껏 해야 한다. 그리고 항상 마음을 착하게 먹고 정성껏 기도하면 저절로 부처가 된다.’며 손수 시범을 보여 가르치기도 하였다.
언젠가 법회가 끝나고 방안에 가득히 둘러 앉아 노스님의 수행담을 듣던 사람들이 가르침을 청했다.
“내가 무슨 할 말이 있나. 참으로 자성불(自性佛)에게 귀의하면 따로 닦을 수행도 기도도 없어. 내가 사십 년간 생식하며 입던 옷이 있는데 아래 고이는 더 이상 기울 수가 없어서 태워 버리고, 다 떨어진 누비저고리가 있어. 떨어진 옷을 기워 입는 두타행도 해볼 만해.”
그리고는 솜을 직접 누벼 만들었다는 누비저고리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어찌나 낡았는지 누비 자국이 거의 보이지 않는 적삼이었다. 유행에 뒤떨어져서 또는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옷은 물론이고 일상 잡화를 쉽게 버리는 우리 시대에 노스님의 누비옷은 출가사문의 청빈한 삶의 좌표를 보여준다.
- 사진출처(관월스님)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 뜨란출판사 (2007년, p.342)
입적
스님은 입적에 들 때까지 천수경과 관음정근으로 정진을 계속하였다. 연로하여서 거동이 불편 해지자 방에서 오전 9시와 오후 7시에 시간을 맞춰 한 시간씩 정진을 늦추지 않았으며, 마지막 입적에 들 때에는 그 정진마저 무상으로 돌리고 세수 95세, 법랍 64세 되던 1998년 4월 4일(음력 3월 8일) 새벽 4시에 고요히 입적하였다.
수계제자
스님의 수계제자로는 해성(海成)·경조(敬眺)스님이 있다.
참고문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상, 뜨란출판사 (2007년) p339~342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년) p44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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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월(觀月)스님 | 본항목 | 관월스님(觀月, 1904~1998) | 觀月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관월스님(觀月,_1904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속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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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월(觀月)스님 | 보현(普賢)스님 | ~의 수계제자이다 | |
관월(觀月)스님 | 홍천 수타사 | ~에서 출가하다 | |
관월(觀月)스님 | 정교암(正敎庵) | ~을(를) 창건하다 | |
관월(觀月)스님 | 성호(性鎬)스님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사미니계 |
관월(觀月)스님 | 범룡(梵龍)스님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비구니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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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 석황사 :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리 473-11
주석
다른 비구니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