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수진스님(修眞, 1950生, 비구니)

biguni
이병두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8월 31일 (수) 12:5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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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수진(修眞)스님은 수도암에서 보화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여러 강원에서 공부하고 수도사에서 수행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50 충남 서산 출생
1961 수도암에서 보화(普和)스님을 은사로 출가
1967 개심사에서 사미니계 수지
1977 수덕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운문사 강원 8회 졸업
2021 수도사 주석 http://m.joongdo.co.kr/view.php?key=20210215010005446
문중 육화(六和)문중
저서 『그날의 그림자는 소용돌이치네』, 황금알, 2019 (공저)

『고양이가 앉아 있는 자세』, 황금알, 2020 (문학청춘작가회 동인지 3, 공저)

『참꽃』, 황금알, 2021 (문학청춘작가회 동인지 4, 공저)

특기 염불
수계제자 동일(童逸)

활동 및 공헌

출생

수진(修眞)스님은 1950년 3월 9일 충남 서산시 팔봉면 금학리에서 아버지 이회만과 어머니 남평 문씨 문순홍 사이의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이며, 이름은 이세영이다.

스님이 태어났을 당시 스님의 속가는 형편이 매우 어려웠다. 생활이 어렵다 보니 아들은 공부를 가르쳤지만 여자는 공부를 가르치지 않았다. 아버지는 ‘여자는 이름 석 자만 쓰고 읽을 줄 알면 된다.’며 공부하는 것을 반대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절에 다니고 있던 스님의 먼 친척인 육촌 올케가 수진스님에게 절에 같이 가보자고 권하였다. 스님은 쾌히 승낙하고 육촌 올케를 따라 절에 갔는데, 스님들이 너무 잘 해주면서 서로들 상좌를 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해에 육촌 올케가 청양 정혜사로 입산하자 스님도 비로소 발심하였고, 또한 절에 가면 늙을 때까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말에 솔깃하여 출가를 하게 되었다.


출가

1961년 살얼음이 얼기 시작하는 10월, 가족들에게는 나들이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스님은 색동저고리를 입고 수도암으로 도망을 갔다.

수도암에 오자마자 삭발을 해달라고 부탁하여 옥색저고리에 고의를 입고 보화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당시에는 장삼이 없어서 스님은 지금 대처승들이 입고 다니는 검은 두루마기를 입었다. 하루는 옷의 동정이 너무 누렇게 바랜 것을 보고 희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양잿물에 빨았는데 동정이 어디로 갔는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은사스님께 조심스레 말씀드리니 불호령이 떨어지면서 호되게 혼이 난 적도 있었다.


수학

스님은 1967년 개심사에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고, 『화엄경』을 다 마친 후 1977년에 비구니계를 수지하였다.

스님은 공부가 너무나 하고 싶어 강원에 보내 달라고 은사스님을 설득하여 개심사 강원에 입방하였고, 화엄사 강원과 청룡사 강원을 거쳐 운문사에서 졸업하였다.

공부를 하기 위해 몇몇 강원을 옮겨 다닌 스님은 화엄사에서는 이모스님인 법우스님께 글을 배웠고 청룡사 강원에서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청룡사 강원에는 스님들 외에도 수녀, 수사, 신부님들도 있었고 대졸 출신뿐만 아니라 교편을 잡던 사람들도 있어서 강의 내용이 어려웠다. 내전뿐만 아니라 장자 등 한문 강의도 있어서 벅찼다고 한다. 그곳에서 실력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것을 몸소 체험한 스님은 한때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져 심한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다.

스님이 운문사에 있을 때 노스님이 입적하셨다. 노스님이 많이 편찮으셨는데 공부 중이어서 점심공양도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한 것이 지금도 가슴에 아픔으로 남아 있다.

노스님이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는 돈이 없어서 스님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율무차를 한 번 뽑아 드린 것이 전부였다. 그 율무차 한 잔을 가지고 서로 마시라고 양보하면서 눈물을 흘린 기억을 떠올리면 더 잘 해드리지 못한 것, 생전에 맛있는 것을 제대로 못 해드린 것이 한이 될 뿐이라고 한다.

스님은 자신이 어려운 형편 때문에 많이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배우려는 아이가 있으면 뭐든지 다 해주고 싶어 하였다. 인연이 되는 사람은 무조건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여 아이들을 키울 때는 적극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고 생각하는 스님은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자기가 한 일에는 뭔가를 이루는 날이 꼭 온다.’고 믿는다.


내전과 외전의 조화를 이루는 참된 수행

수도사 대웅전
출처 : 다음 블로그 https://blog.daum.net/nicep/16165534

언젠가 셋방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신도 한 분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가정불화까지 있었던 보살님은 어느 날 가정 문제로 고민하던 중 스님을 찾아와서 자신의 고민을 의논하였다.

그 보살은 남편이 외도를 하는 것도 모자라 술을 마시면 폭행이 잦아 이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스님은 보살님을 위로하며 참고 견디면 반드시 좋은 날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자 보살님은 고맙다면서 10년 후에는 웃으면서 스님을 뵈러 오겠노라고 약속을 하며 떠났다.

10년이 흐르고 난 뒤 어느 날 한 처사가 절에 와서 기도를 하며 필요한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절을 둘러보고는 가로등이 없는 것을 보고 가로등을 세워주었다. 10년 전 스님을 찾아왔던 보살의 남편이었다.

스님은 과거 배고프던 시절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공부하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세상이 많이 좋아진 만큼 나태하지 말고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옛날 스님들은 은사스님과 대중에게 극진했는데 지금은 많이 변해서 안타깝습니다. 부처님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줄 수 있을 정도로, 어떻게 하면 부처님의 일을 더 좋게 할 수 있는가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수행을 하는 데 있어서도 끈기와 근면을 배워야 합니다. 또 젊은 스님네 들이 폭넓은 지식을 갖고 있어서 보기는 좋으나 참선 수행이 모자라는 것 같습니다. 외전도 중요 하지만 무엇보다 내전을 잘 가꾸어 조화를 이뤄야 참된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님은 염불하는 것을 좋아하며 틈틈이 자수 놓는 것도 즐긴다. 지금은 어깨가 아파서 쉬고 있지만 예전에는 병풍에 수를 놓아서 선물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또한 글 쓰는 것을 즐기며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을 생활지침으로 삼고 있다.

2004년 수도암사에서 수행 정진 중인 수진스님의 수계제자로는 동일(童逸)스님이 있다.

(2022년 상황 확인이 안됨)

참고자료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수진(修眞) 본항목 수진스님(修眞, 1950~) 修眞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수진스님(修眞,_1950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수진(修眞)스님 육화(六和)문중 ~의 일원이다
수진(修眞)스님 수도사(수도암) ~에서 출가하다
수진(修眞)스님 보화(普和)스님 ~의 제자이다
수진(修眞)스님 석암(昔岩)스님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
수진(修眞)스님 수도사(수도암) ~의 주지를 역임하다

사찰

  • 수도사(수도암)(☎ 041-662-3825):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 144-2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