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스님(一禪, 1952生, 비구니)
일선(一禪)스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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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명 | 일선(一禪) |
법호 | 향산(香山) |
속명 | 최영숙(崔榮淑) |
출생 | 1952년 11월 17일(비구니) |
출가 | 1965년 |
입적 | |
사찰 | |
특이사항 |
목차
정의
향산(香山) 일선(一禪)스님은 어린 나이에 동양화에 입문하여 화가로서 명성을 드높인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경력
연도 |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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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 | 전남 순천 출생 |
1965 | 신광사에서 경인(敬仁)스님을 은사로 출가 |
1967 | 내원사 동·하안거 성만 |
1968 | 월하(月下)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1976 | 동학사 강원 졸업 |
1977 | 월하(月下)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
1985 | 중앙승가대학교 졸업 |
1987 |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학과 졸업 |
1987 | 제1회 광주 인제미술관 개인전 |
1991 | 제2회 백상기념관 개인전 |
1998 | 제3회, 제4회 서울 경인미술관 개인전 |
2002 | 정릉 용화사 주지 |
인적사항
문중 | 삼현(三賢) |
수계제자 |
활동 및 공헌
출가
향산(香山) 일선(一禪)스님은 1952년 11월 17일 전남 순천시 금곡동 181번지에서 아버지 최신룡(崔伸龍) 거사와 어머니 조월명화(趙月明華) 보살 사이의 3남 1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본관은 초계이며, 이름은 최영숙이다.
스님은 1956년 13세 되던 해에 속세를 떠나 출가사문의 길로 들어섰다. 어린 나이에 풍요로운 집과 정든 혈육들을 뒤로한 채 엄격하고 청정한 기운이 가득한 절로 출가하게 되었지만 전혀 망설임이 없었고 그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일선스님은 1965년 비로소 머리를 깎고 본격적인 절 생활을 시작했다. 은사스님은 삼현문중의 경인(敬仁)스님이다.
일선스님 일가의 출가인연
스님의 양친은 모두 돈독한 신심을 지닌 분들이었고, 친조부는 순천 선암사에 주석하던 최대운 스님이시다. 대운스님은 선암사에 주석하면서 한편으로는 광주 시내에 신광사를 창건하였다.
당시 일제는 결혼하지 않은 스님이 절을 짓거나 주지를 맡는 것을 금지시켰다. 때문에 대운스님은 일제의 강권에 의해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식을 두고서도 늘 속가를 떠나 선암사 등에서 대중들과 함께 수행에 매진하셨다.
일선스님의 아버지는 당신도 선친처럼 스님이 되길 원했다. 일선스님이 어렵고도 어려운 부처님의 제자, 공부하는 스님으로서의 길을 걷게 된 데에는 아버지의 출가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 아버지는 이런저런 이유로 출가를 쉽게 이루지 못하자 스스로 수행의 고삐를 죄며 언제 어디서나 참선 수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스님의 속가 집안은 당시 순천 지역에서 매우 번성했던 집안이었다. 사람들이 스님의 집을 가리켜 ‘순천 최부잣집’이라고 일컬었을 정도였다. 스님은 남부러울 것 없는 부잣집 맏딸로 태어나 온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랐다.
일선스님의 아버지는 당신의 출가 의지를 대를 이어 전했다. 일선스님이 국민학교에 입학한 뒤부터 매번 방학 때면 어린 일선스님을 신광사로 보냈다. 그리고 국민학교를 졸업하자 여법하게 출가시켰다. 일선스님은 13세 되던 해까지 방학 때마다 옷을 챙겨서 순천의 집을 떠나야 했다. 두어 달 동안 광주 신광사에서 스님들과 함께 생활한 후 개학을 일주일 앞두고 집에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하곤 했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체득
최씨 집안의 출가 인연은 일선스님의 출가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스님의 세 남동생 중에서 바로 아랫동생도 대학교를 마친 후 출가하였다. 현재 분황사 주지 종수(宗水)스님이 바로 일선스님의 속가 동생이다. 월산스님 아래로 출가하게 된 종수스님은 10만 배 정진 후 계를 받아서 당시 문중 안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나머지 두 남동생 중에서 한 명은 공군에서 복무하던 중 사고로 순직하여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스님의 아버지는 일선스님과 종수스님의 출가를 지켜본 후 마지막 남은 자식이 결혼을 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주변을 정리하고 출가하셨다.
아버지 운곡(雲谷)스님은 오래도록 속세에 머물렀지만 언제나 수행 정진의 삶을 놓지 않으셨던 분이었다. 비록 늦깎이 출가자였지만 스님으로서의 위의(威儀)는 누구 못지않게 반듯하셨다. 평생 신묘장구대다라니 정근을 놓지 않았으며 4남매를 낳기 훨씬 전인 젊은 시절부터 매일 참선 정진을 하셨다.
출가 후 더욱 참선에 매진하던 운곡스님은 1990년 마침내 원산스님에게 인가를 받고 3년간 보림(保任)하며 당신이 얻은 깨달음을 더욱 익히셨다.
그래서 온 집안은 물론이고 일선스님 스스로도 출가자의 길을 걷는다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다.
엄격한 수행
일선스님이 속한 삼현문중은 가풍이 매우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정행스님이 비구니 최초의 전계사로 추대되었던 만큼 무엇보다 출가자로서의 계행을 철저히 지켰으며 단 한순간의 흐트러짐도 없는 수행 생활이 늘 강조되었다.
행자 생활을 건너뛰긴 했지만 법당 소임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겨울에 물수건으로 법당 마루를 닦으면 이내 살얼음이 얼 정도로 법당 안은 몹시 추웠고, 한 여름철 온 몸에서 땀을 줄줄 흘리며 기도하는 일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해운스님은 일선스님에게 매일 사분정근 때마다 천주(千珠)를 세 번씩 돌리며 기도 정근하도록 하셨다. 날마다 10시간 넘게 정근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보면 목이 쉬다 못해서 찢어지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지만 스님은 늘 기쁜 마음으로 기도하였다.
가끔 삼선암을 떠나 신광사에 들렀던 정행 큰스님은 이런 일선스님을 보며 몹시 안쓰러워하면서 “목이 많이 아플 땐 소금을 찍어 먹어가며 기도하면 좀 나아진다.”고 도움 말씀을 건네면서도 “아무리 더워도 꼭 가사 장삼을 수하고 기도하라.”고 일러주기도 하셨다.
큰스님은 어린 일선스님이 힘든 출가 생활을 마다하지 않고 당연하게 여기며 어른스님들이 시키는 일이면 무슨 일이든 군말 없이 해내는 모습을 보고 매우 기뻐하셨다.
어느 해 겨울의 일이다. 신광사에 들른 정행 노스님은 남몰래 당신의 그릇에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담아 가지고 일선스님이 기도 중인 법당 안으로 들어오더니 일선스님에게 마시라고 하셨다. 그리고 일선스님이 우유를 마시는 동안 대신 목탁을 잡으셨다.
정행 노스님의 따뜻한 배려와 바른 가르침은 일선스님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출가 생활을 지켜주는 크나큰 지표가 되었다. 정행 노스님과의 아름다운 인연은 이후에도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일선스님은 1968년 내원사에서 다섯 스님들과 함께 사미니계를 받았다.
그 후 스님은 1971년 동학사 강원에 방부를 들였다. 당시 동학사 강원의 중강을 맡고 있던 분은 광주 대광사의 주지스님인 태경스님이셨다.
수학
일선스님은 태경스님 지도 아래 사집을 마치고 비구 호경 큰스님께 사교와 대교를 배웠다. 그 때만 해도 강원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또 강사스님이 편찮거나 불사가 시작되면 강원에 있는 모든 학인들은 공부를 잠시 뒤로 미루고 불사에 매진해야 했다. 그렇게 일선스님은 동학사에서 6년 동안 공부하고 1976년에 졸업하였다. 1977년 비구니 구족계를 수지하고, 내원사에서 하안거와 동안거를 성만하였다.
정행 노스님은 동학사에 가 있는 증손을 늘 잊지 않으셨다. 학기가 새로 시작될 때마다 매번 “내 사랑하는 증손 보아라!” 라는 말로 시작되는 편지를 인편을 통해서 부쳐왔다. 편지에서 노스님은 일선스님에게 언제나 “많이 먹고 많이 자고 공부는 특등으로 해라.” 하시며 자상히 챙기셨다.
동학사 강원을 졸업한 후 일선스님은 1982년 중앙승가대학교에 입학했다. 1985년 학교를 마친 후에는 수년간 화순 운주사 말사인 능주 포교당을 맡아서 포교에 전념하였다.
일선스님은 은사 경인스님과 어린 시절 자신을 자애롭게 이끌어주신 정행 노스님을 가장 존경 한다. 정행 노스님은 스님의 상좌들이 강원을 마치면 당신이 직접 불러 앉혀 놓고서 『법화경』을 가르치셨다.
정행 노스님은 『화엄경』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탁월한 해석을 보일 만큼 지혜가 높으신 분이었다. 그런데도 언젠가 신문을 읽고 계실 때 글을 읽을 줄 모르는 한 노스님이 스님 옆으로 다가와 “내용을 압니까?” 하고 묻자 “모릅니다.” 라고 대답하실 만큼 속이 깊고도 넓으신 분이었다.
동양화가 입문
일선스님은 화가로도 유명하다. 스님이 처음 붓을 잡은 것은 국민학교를 다닐 때부터였다. 스님의 부친은 “출가자는 서예에 능해야 한다.”며 어린 딸을 동리의 서당에 보내 붓글씨를 익히게 했다. 그때부터 꾸준히 붓글씨를 연마하다가 1976년 동학사 강원을 졸업한 후 신광사에 돌아와서는 용곡선생이 운영하는 유명한 서예학원 용곡서실에 등록하고 본격적으로 수련했다.
이때 스님은 수묵화의 세계에 눈을 떴다. 서실 옆에 동양화가 김숙 선생의 화실이 있어서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동안 스님은 엄하신 어른스님들 몰래 그림을 배우러 다녔다. 그림은 서예와는 또 다른 세계를 열어주었으며 수행에 지친 심신에 활력을 주기도 했다.
전남대 미술대 교수이며 미술평론가인 장석원 선생은 스님의 예술세계를 ‘무심필(無心筆)’이라고 명명했다. 스님의 그림에는 수행자로서의 기품과 따뜻함, 중생에 대한 사랑이 깃들어 있어서 물질적인 욕구에 찌든 일반인의 마음을 정화해준다는 것이다.
입문하게 된 연유
일선스님이 그림에 관심을 두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스님은 출가 전 조부가 계시던 선암사에 자주 갔다. 그곳에서 스님은 각종 불교 행사에 쓰이는 장엄용 종이꽃을 만드는 화공(化工)스님에게 종이꽃 만드는 방법을 배우기도 하였다.
당시 절에서는 생화를 쓰는 대신 종이로 만다라나 연꽃을 만들어 행사장을 장엄하는 풍습이 있었다. 때문에 종이꽃을 만드는 기능을 지닌 화공스님은 한 절에 머무르지 않고 전국의 절을 다니며 행사가 열릴 때마다 초빙되어 행사장을 장엄했다. 어린 나이지만 손재주가 있는 아이로 인정받은 스님은 한동안 탱화를 배워서 탱화불사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활발한 작품활동
어린 시절에 이미 불교미술과 남다른 인연을 가진 바 있던 스님은 수묵화를 시작한 후 곧 채색화의 세계로 영역을 확장해나갔다. 일선스님은 차츰 수많은 전시회에 출품을 요청받게 되었으며,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학과를 졸업한 1987년 마침내 첫 번째 개인전을 광주 인제미술관에서 개최하였다.
수행 중에 산사 주변에서 만나는 정경들을 따뜻한 필치로 묘사한 스님의 그림들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대중의 성원은 1991년 백상기념관에서 두 번째 전시회, 1998년 서울 경인미술관에서 세 번째 전시회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스님의 그림을 본 석주 큰스님은 일선스님에게 ‘향산(香山)’이라는 아름답고 향기 높은 법호를 지어주셨다.
불교계에 미술 활동을 하는 스님의 숫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미미하다. 그리고 비구니스님보다는 비구스님들이 적극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편이다. 비구니스님으로서 꾸준히 개인전을 열며 초지일관의 진지한 자세로 화엄정진 하는 이로는 일선스님이 거의 유일하다.
그동안 스님은 1978년 한·중 서예교류전 입선 및 우수상을 수상하였고, 1986년 아주대회(아시안게임) 기념 불교미술대전 1976년부터 용연회를 비롯하여 1977년 단적회, 1986년에는 동락전에 출품했다. 또한 그해에 동남아 스케치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였으며 1993년에는 정릉 불교미술협회전에 참가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일선스님의 미술 활동은 이 부문에 관심이 많은 후배 스님들에게 큰 용기를 줌과 동시에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일러주는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일선스님은 불교계의 수많은 자선 전시회에도 작품을 기증하였다. 불우한 이웃을 돕는 ‘카루나(연민)’의 모임을 비롯해서 정신대 할머니들의 마지막 쉼터인 ‘나눔의 집’ 건립 불사에도 작품을 보내어 크게 일조하였다.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 뜨란출판사, 2007, pp. 284~291.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367.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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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一禪)스님 | 본항목 | 일선스님(一禪, 1952~ ) | 一禪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일선스님(一禪,_1952生,_비구니) |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 항목2 |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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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선(一禪)스님 | 경인(敬仁)스님 | ~의 제자이다 |
일선(一禪)스님 | 내원사 | ~에서 안거 성만하다 |
일선(一禪)스님 | 월하(月下)스님(1915~2003; 비구스님) |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 |
일선(一禪)스님 | 동학사 강원 | ~을 졸업하다 |
일선(一禪)스님 | 월하(月下)스님(1915~2003; 비구스님) |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 |
일선(一禪)스님 | 중앙승가대학교 | ~를 졸업하다 |
일선(一禪)스님 |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학과 | ~를 졸업하다 |
일선(一禪)스님 | 첫 개인전 | ~을 열다 |
일선(一禪)스님 | 정릉 용화사 | ~에서 주지를 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