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사 강원(승가대학)

big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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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칭 : 직지사 강원(승가대학)(直旨寺 講院(僧伽大學)
  • 소재지 : 경북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 (경북 김천시 대항면 직지사길 95)

직지사강원은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본사인 직지사 소속 승가대학이다.
직지사는 418년 (신라 눌지왕 2) 아도(阿度)가 창건했다고 한다. 직지사라고 이름한 데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아도가 선산 도리사(桃李寺)를 창건하고 황악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쪽에 큰 절이 설 자리'라고 했기 때문이라는 설과, 고려 초기에 능여(能如)가 절을 중창할 때 절터를 측량하기 위해 자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손으로 측량하여 지었기 때문이라는 설, 선종의 가르침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창건 이후 645년(선덕여왕 14) 자장(慈藏)이 중창하고, 930년(경순왕 4) 천묵(天默)이 중수했다. 936년(고려태조 19)에는 능여가 태조의 도움을 받아 크게 중창했다. 당시의 중요 건물로는 대웅대광명전(大雄大光明殿), 대비로금당(大毘盧金堂), 극락전, 원통전, 지장시왕전(地藏十王殿), 응진전(應眞殿), 설법전, 선등각(禪燈閣), 대장전(大藏殿) 등이 있었다.
현재 금석문으로 남아있는 대장전비에 의하면, 이 절의 대장전에 금자사경(金字寫經) 593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1399년(정종 1) 중건하고, 1488년(성종 19) 등곡학조(燈谷學祖)가 중수했다. 1596년(선조 29) 임진왜란 중에 왜병들의 방화로 43동의 건물 중 천불전·천왕문·자하문(紫霞門)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탔다. 이 때 법당 앞에 있던 대형의 오층목탑도 함께 소실되었다.
그 뒤 1602년부터 70여 년에 걸쳐 절을 중건했는데, 1681년(숙종 7) 조종저(趙宗著)가 쓴 사적기에 의하면 당시의 규모가 8전, 3각, 12당, 3장, 4문에 정실(正室)만 352칸에 달했으며, 부속 암자는 26개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805년(순조 5) 이후부터 사세가 차츰 기울기 시작하여 퇴락을 거듭하게 되었다.
최근에 이르러 대대적인 중건에 착수하여 1966년부터 1981년 10월까지 10동의 건물을 중건하고, 10동을 옮겨 지었으며, 9동을 중수했다. 부속암자로는 운수암(雲水庵)과 백련암(白蓮庵)이 있다.
1981년도 관응강백에 의해 황악불교 전문학림을 시설하고 3년간 결사를 통해 1983년 장태원 산, 도해범하, 용해연관, 지해시현, 일해재원, 정해지수, 서해원욱, 명해진성, 성해자일, 금태성 정, 종화지욱 등의 강사를 배출하였다.
이후, 1988년 제1회 승가대학 졸업생을 배출하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사찰전서, 직지사지)

[출처 및 참고자료]
-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강원총람』, 1997, pp. 214, 215.

- 대한불교조계종 교구본사(제8교구 직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