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성연스님(聖蓮, 1928生, 비구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bigun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생애)
(생애)
46번째 줄: 46번째 줄:
 
{| class="wikitable sortable" style="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64%"  
 
{| class="wikitable sortable" style="vertical-align:middle; text-align:left; background-color:white; width:64%"  
 
|-
 
|-
|문중|| [[삼현(三賢)문중]]
+
| style=" width:120px |문중|| [[삼현(三賢)문중]]
 
|-
 
|-
 
|수계제자 || 정수(淨修)
 
|수계제자 || 정수(淨修)

2022년 8월 23일 (화) 10:44 판



정의

성연(聖蓮)스님은 부산 금천선원에서 성진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양산 증산사를 창건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연도 내용
1928 충북 음성 출생
1956 부산 금천선원에서 성진(性眞)스님을 은사로 출가
1957 범어사에서 동산(東山)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58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내원사에서 별좌소임(3년간)
1966~1970 동학사 강원 도감 역임(5년간), 내원사 8안거 성만
1987 양산 증산사 창건, 증산사 요사채 불사
1997~1998 대웅전, 낙성식 완공
2000 증산사에서 수행 정진
2004 양산 증산사 주석
문중 삼현(三賢)문중
수계제자 정수(淨修)

활동 및 공헌

출가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 450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 451
사진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 452

성연(聖蓮)스님은 1928년 2월 25일 충북 음성 당골에서 아버지 조규분과 어머니 연씨 사이의 1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본관은 함안이며, 이름은 조내용이다. 평소 동학사 미타암의 지현 노스님과의 친분으로 미타사를 다니던 중 1956년 3월 스님의 나이 29세에 부산시 금정구 금천 선원에서 성진(性眞)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스님이 행자 생활을 하던 금천선원은 인법당 1채와 그 옆으로 방이 하나, 그리고 요사 방 2칸, 산신각이 전부였다. 금천선원 주변에는 크고 작은 40여 채의 집이 있었는데, 대부분이 나무를 하고 농사를 지으며, 산신기도와 산제기도 등을 하며 살고 있는 전형적인 산골이었다.

내원사 수옥스님과 지내다

금천선원에서 1년을 보낸 스님은 30세 되던 1957년 3월 15일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고, 그 이듬해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지하였다. 그러나 내원사에서 불사를 하니 가서 도와 드리라는 말씀에 스님은 내원사로 가게 되었다. 당시 내원사 주지는 비구니 3대 강백 중 한 분이신 수옥스님이셨다.

성연스님은 수옥스님을 모시고 부산 시내를 다니면서 시주를 받고 장을 보러 다녔으며, 별좌 소임을 살며 대중을 외호하였다. 또한 새벽 3시에 일어나 도량석을 돌고 예불 후 참선에 들어가 저녁 11시에 방선을 하였다.

당시 내원사 선방에는 30여명의 스님들이 상주하고 있었는데 본공스님, 선경 스님 등이 계셨다. 통도사 극락암에 주석하고 계시던 경봉 노스님께서 가끔 와서 법문도 하고, 며칠씩 머무시다 가시기도 하셨다. 경봉 노스님은 스님들도 때로는 영화배우가 되어야 한다는 법문도 하시고, 아픈 사람에게는 병이 곧 선지식이며 병이 있어야 스님 노릇도 잘 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해주시기도 하셨다.

또 가끔씩 수옥스님이 쪽지에 글을 적어 경봉 큰스님께 심부름을 보낸 적도 있었다. 그럴 때면 스님은 수옥스님이 준 쪽지를 봉투에 넣어 소중히 간직하고 내원사에서 통도사 극락암까지 한나절이나 걸리는 먼 길을 걸어서 다녀오기도 하였다. 심부름을 시키면서 수옥스님은 ‘경봉 큰스님을 뵐 때 오래 걸어 발에서 냄새가 날지도 모르니까 깨끗하게 씻고 큰스님을 뵈어야 한다.’며 양말과 수건을 챙겨주시곤 하셨다. 또 구화 노스님과 향곡스님께 심부름을 가기도 했는데 수옥 스님을 모시고 가기도 하였다. 향곡스님께서 월내 묘관음사에 계실 때 법문을 들으러 가기도 하고, 재를 지내러 가기도 하셨다.

1966년 수옥스님이 돌아가시자 스님은 내원사를 나와 동학사 강원을 갔다. 그때 동학사는 지금의 강원을 짓고 있는 중이었기에 불사를 도우면서 43살이 되던 1970년까지 5년간 도감을 살았다.

불사를 마치고 동학사를 나와서 금천선원으로 다시 돌아온 스님은 은사스님, 사형님들과 생활하다가 내원사 선방을 다녔는데 다리가 아파서 선방을 못 가게 되었다. 그렇지만 금천선원에 있으면서 인천의 전강 큰스님께 법문을 들으러 다니기도 하였다.

증산사를 창건하다

세수 60세 되던 1987년에 스님은 기도처를 구하던 중 한때는 보살 절이었으며 당시는 대처승이 살고 있던 증산사에 오게 되었다.

증산사는 9평 법당에 요사 방 2칸이 있었는데, 기와가 낡아 지붕에서 비가 새서 천막으로 덮고 있었다. 스님은 어렵게 화주를 하여 1층 21평과 2층 21평 총42평의 요사를 짓고, 1997년부터 1998년까지 2년에 걸치셔 법당 불사를 하여 2월 24일 낙성식을 하였다. 스님이 맨 처음 왔을 때 증산사는 변변한 진입로조차 없었고, 마실 물도 나오지 않을 만큼 상황이 열악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사찰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스님이 60세가 넘는 노구(老軀)로 잠시도 쉬지 않으면서 일구어 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04년 스님은 양산 증산사에서 수행 정진 중이며, 수계제자로는 정수(淨修)스님이 있다.


참고자료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권. 뜨란출판사, 2007, pp. 449~453.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276.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성연(聖蓮)스님 본항목 성연스님(聖蓮, 1928~) 聖蓮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성연스님(聖蓮,_1928生,_비구니)

※ 범례

  • 범주: 본항목, 문맥항목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항목1 항목2 관계
성연(聖蓮)스님 삼현(三賢)문중 ~의 일원이다
성연(聖蓮)스님 성진(性眞)스님 ~의 제자이다
성연(聖蓮)스님 부산 금천선원 ~에서 출가하다
성연(聖蓮)스님 동산(東山)스님 ~으로부터 사미니계를 받다
성연(聖蓮)스님 동산(東山)스님 ~으로부터 비구니계를 받다
성연(聖蓮)스님 양산 증산사 ~을 창건하다

지도

  • 증산사(경남 양산시 물금읍 증산리 873)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