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중학강습원"의 두 판 사이의 차이

biguni
이동: 둘러보기, 검색
(새 문서: * '''명칭 : 제주중학강습원(濟州中學講習院)''' 일본식민지 시대의 제주도에는 정규 중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교가 별로 없어 천여 명의...)
 
 
7번째 줄: 7번째 줄:
 
- [https://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85456 제주일보] (201) 초대 제주 검사장·법과 교수...근현대 사법 기틀 닦아 </br> </br>
 
- [https://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85456 제주일보] (201) 초대 제주 검사장·법과 교수...근현대 사법 기틀 닦아 </br> </br>
  
[[분류 : 기관]]
+
[[분류 : 기관/단체]]

2024년 5월 10일 (금) 21:58 기준 최신판

  • 명칭 : 제주중학강습원(濟州中學講習院)

일본식민지 시대의 제주도에는 정규 중등교육을 받을 수 있는 학교가 별로 없어 천여 명의 학생이 배움을 계속할 수 없는 사회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봉려관스님을 비롯해 제주불교협회가 만원을 출연하고, 해남 대흥사에서 만원을 보조받아 1935년에 제주중학강습원을 마침내 개교하여 운영했다. 제주중학강습원은 교동(校洞)의 명신(明新)학교 터전에 개설했다. 이어 1935년 12월 2일 남학생 70명과 교직원 6명으로 개원했다.
이 외에도 1926년 ‘제주불교소녀단’과 ‘제주불교부인회’를 창립해서 신여성을 양성했으며, 1927년 성내포교당에서 '제주유치원' 개원식을 거행하고, 1930년 불교유치원 창설을 위한 협의체 구성하여 제주 여성과 아동의 계몽과 지위향상을 위해 앞장섰다.

[출처 및 참고자료]
- 제주불교신문 절로가는 길 - 관음사 - “민중의 아픔과 민족의 아픔 함께하는 리더십이 살아 숨 쉬는 곳”
- 제주일보 (201) 초대 제주 검사장·법과 교수...근현대 사법 기틀 닦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