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월하스님"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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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호·법명 : 노천월하(老天月下, 1915~2003) ''' - 영축총림 초대 방장, 제9대 종정
 
* ''' 생애·업적 '''
 
스님은 1915년 음력 2월 25일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군수리에서 출생했다. 속명은 윤희중(尹喜重)이고 법명은 명근(明根)이며 월하(月下)는 법호이다. 종정이 된 후 노천(老天)이라는 새 법호와 함께 ‘노천월하’로 지칭되고 있다. </br>
 
1932년 18세에 금강산 유점사로 출가해 1933년 19세 되던 해 유점사에서 차성환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으며, 1940년 4월, 26세 때 통도사에서 구하 스님을 계사로 보살계와 비구계를 수지하였다. </br>
 
1942년(28세) 4월 24일에 구하 스님에게 사법(건당)하였으며, 1944년 12월에는 철원 심원사 강원에서 대교과를 이수하였다. 스님은 구하 스님에게 건당한 이후 심원사 강원에서 공부할 때와 오대산 한암 스님 문하에서 몇 차례 안거한 시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통도사에서 정진하면서 구도자의 살림살이를 맡아 왔다. </br>
 
1951년에는 대덕법계를 품수받았고, 1954년에는 불교정화운동에 적극 동참했다. 1955년(41세) 2월 4일 스님은 문교부장관실에서 비구 측 5인 대표로 효봉·청담·박인곡· 손경산 스님과 함께 사찰정화 수습대책위원회에 참가하여 ‘승려자격 8대원칙’을 결정하였다. </br>
 
1956년에는 비구측 총무원의 총무부장과 통도사 주지 소임을 맡았으며, 1958년(44세) 4월에는 감찰원장을, 1960년(46세) 5월 20일에는 종단비상사태 수습대책위원회 선전부 위원과 종회의장을, 1961년(47세) 11월 28일~29일에는 불교정화촉진위원회 위원을, 1962년(48세) 3월 21일에는 비상종회 비구측 대표(5인 : 청담·행원·능가·추담·월하 스님)로 참석하였으며 1975년 10월 61세 때 재단법인 동국학원 재단이사장에 선출되었다. </br>
 
스님은 1967년부터 1971년까지 통도사 조실로서 한 번도 바깥출입을 아니 하고 수행과 후참 납자 제접에 힘썼다. 1984년 70세 때 통도사 영축총림 초대 방장에 추대되었다.
 
1994년(80세) 4월10일에는 범종추 측 전국승려대회에서 개혁회의 의장으로 추대되었고, 같은 해 5월 3일에는 원로회의에서 종정으로 추대되어 5월 13일에 조계사에서 전통적인 육법 공양에 따라 대한불교조계종 제9대 종정 취임식을 거행하였다. </br>
 
2003년 12월4일(음력 11월11일) 통도사 정변전에서 입적했다. 세수 89세, 법랍 71년. 다음은 스님의 임종게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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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
 
한 물건이 이 육신을 벗어나니
 
두두물물이 법신을 나투네.
 
가고 머무름을 논하지 말라.
 
곳곳이 나의 집이니라
 
일물탈근진(一物脫根塵).
 
두두현법신(頭頭顯法身)
 
막론거여주(莫論去與住)
 
처처진오가(處處盡吾家)
 
</poem>
 
</br>
 
2014년 문도회에서는 스님의 탄신 100주년을 맞아 스님의 일대기를 <영축산에 달 뜨거든>이란 이름으로 펴냈다. </br>
 
※ 출처 :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선원총람』, 2000, p. 212. 外
 
  
[[분류 : 비구스님]]
 

2024년 3월 2일 (토) 18:45 기준 최신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