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선스님(花仙, 1909生, 비구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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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선스님은 1909년 7월 17일 제주도 북제주군 한림읍 고산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부친은 전주 이씨 덕우德雨이고, 모친은 김씨이며, 속명은 이화선이다. 1935년 관음사로 출가해서 비구니 봉려관을 은사로, 비구 회명을 계사로 출가 수계하였다. 계보는 ‘봉려관-화선’이다. | 화선스님은 1909년 7월 17일 제주도 북제주군 한림읍 고산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부친은 전주 이씨 덕우德雨이고, 모친은 김씨이며, 속명은 이화선이다. 1935년 관음사로 출가해서 비구니 봉려관을 은사로, 비구 회명을 계사로 출가 수계하였다. 계보는 ‘봉려관-화선’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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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보살 화선스님=== | ===미소보살 화선스님=== | ||
화선스님을 뵈었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화선스님은 온화한 분이셨다. 말이 항상 부드럽고, 고마움을 아시는 분이셨다”고 하고, 그리고 또 “인자하시고 성품이 좋으신 분이며, 뵈면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분이셨다”고 말한다. 지금도 화선스님은 ‘늘 온화한 미소로 사람을 맞이하고, 부드러운 말로 응대하며, 시주의 고마움을 아시는 분’으로 회자되고 있다. | 화선스님을 뵈었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화선스님은 온화한 분이셨다. 말이 항상 부드럽고, 고마움을 아시는 분이셨다”고 하고, 그리고 또 “인자하시고 성품이 좋으신 분이며, 뵈면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분이셨다”고 말한다. 지금도 화선스님은 ‘늘 온화한 미소로 사람을 맞이하고, 부드러운 말로 응대하며, 시주의 고마움을 아시는 분’으로 회자되고 있다. | ||
| − | 화선스님은 우리 안에 갖추어진 부처님의 자애를 부드러운 말씨와 온화한 미소로 피워낸 수행자라 하겠다. | + | 화선스님은 우리 안에 갖추어진 부처님의 자애를 부드러운 말씨와 온화한 미소로 피워낸 수행자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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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3일 (화) 23:37 기준 최신판
| 화선(花仙)스님 | |
|---|---|
| 법명 | 화선(花仙) |
| 법호 | 서월(瑞月) |
| 속명 | 이화선李花仙(또는 李化善) |
| 출생 | 1909년 07월 17일 |
| 출가 | 1935년 04월 08일 |
| 입적 | 1977년(또는 1976년) |
| 사찰 | 제주 보덕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독짓골 8길 26(도남동 80-2), 보덕사 |
| 특이사항 | |
목차
정의
화선(花仙)스님은 은사 봉려관을 따라 근대 제주불교 사찰 건립에 참여하였고, 부산 보수동 법제사 매입 및 제주도 도남 보덕사를 개창했으며, 일제 강점기 제주도 김녕 백련사 주지를 역임하여 근대 제주불교 중흥에 기여한 비구니이다.
생애
| 연도 | 내용 |
|---|---|
| 1909 | 제주도 북군 한림읍 고산리에서 출생 |
| 1935 | 제주도 한라산 관음사로 출가 |
| 1935 | 한라산 관음사에서 이회명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
| 1940 | 제주도 김녕 백련사 주지 |
| 1977 | 음력 9월 17일(또는 18일) 제주도 도남 보덕사에서 입적(세수 69, 법납 43) |
| 문중 | 두옥문중(斗玉) |
| 수행지침 | 관음기도, 일상이 인욕, “승려는 마음이 따뜻해야 한다”. |
| 수계제자 | 인하, 인명 |
활동 및 공헌
이화선, 봉려관 제자가 되다
화선스님은 1909년 7월 17일 제주도 북제주군 한림읍 고산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부친은 전주 이씨 덕우德雨이고, 모친은 김씨이며, 속명은 이화선이다. 1935년 관음사로 출가해서 비구니 봉려관을 은사로, 비구 회명을 계사로 출가 수계하였다. 계보는 ‘봉려관-화선’이다.
백련사 주지를 역임하다
제주도 김녕리 대흥사포교당(김녕 백련사)은 1940년 7월 15일 송광사 금어 일섭스님이 김우일, 박상순, 신병철, 고재섭 등을 데리고 들어와서 후불탱화, 지장탱화, 칠성탱화, 신장탱화, 산신탱화, 독성탱화, 감로탱화 등 조성 불사를 착수하였다. 당시 백련사 주지가 바로 비구니 화선이었다.
부산 법제사 매입, 제주도 도남 보덕사 개창
화선스님은 부산시 보수동 소재 법제사를 대처승으로부터 매입해서 두옥문도의 수행도량으로 남겼다. 이어서 제주도 독짓골 남순사(현 보덕사)를 개창해서 인하에게 물려주었고, 인하의 주도 하에 중창하였다. 3번째 중창은 인하, 법련(인하의 제자), 능인(안광호-능인)이 목조 전통 대웅전과 2층 60평 골조 선방을 창설하였다. 화선스님이 부산 보수동 법제사와 제주도 도남 보덕사를 두옥 문중의 포교도량으로 남게 한 것이다.
미소보살 화선스님
화선스님을 뵈었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화선스님은 온화한 분이셨다. 말이 항상 부드럽고, 고마움을 아시는 분이셨다”고 하고, 그리고 또 “인자하시고 성품이 좋으신 분이며, 뵈면 마음이 편해지는 그런 분이셨다”고 말한다. 지금도 화선스님은 ‘늘 온화한 미소로 사람을 맞이하고, 부드러운 말로 응대하며, 시주의 고마움을 아시는 분’으로 회자되고 있다. 화선스님은 우리 안에 갖추어진 부처님의 자애를 부드러운 말씨와 온화한 미소로 피워낸 수행자라 하겠다.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 식별자 | 범주 | 유형 | 표제 | 한자 | 웹 주소 |
|---|---|---|---|---|---|
| 화선(花仙)스님 | 본항목 | 화선스님(花仙, 1909~ ) | 花仙 |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화선스님(花仙,_1909生,_비구니) |
릴레이션 데이터
| 항목1 | 항목2 | 관계 | 속성 | |
|---|---|---|---|---|
| 화선스님(花仙) | 두옥문중(斗玉) | ~의 일원이다 | ||
| 화선스님(花仙) | 봉려관스님(蓬廬觀) | ~의 수계제자이다 | ||
| 화선스님(花仙) | 제주 관음사 | ~에서 출가하다 | ||
| 화선스님(花仙) | 회명스님 | ~(으)로부터 계를 받다 | 사미니계 | |
| 화선스님(花仙) | 제주도 김녕 백련사 | ~에서 직임을 수행하다 | 주지(감원) |
작성자
혜달(사단법인 봉려관 불교문화연구원장)
지도
- 제주 보덕사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독짓골 8길 26(도남동 80-2), 보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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