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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법호·법명 : 관응지수(觀應智首: 1910~), 관응혜응(觀應慧應 : 1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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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생애·업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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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님은 1910년 9월 17일 경북 상주에서 출생 했다. 속명은 전재영(全在英)이며 법명이 혜응이고 법호가 관응이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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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9년 5월 12일, 광주 남장사에서 탄옹정혜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1934년 유점사에서 대교를 마치고 1936년 3월 15일 선학원에서 일봉(一鳳) 스님을 계사로 모시고 비구계를 수지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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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8년 동국대 전신인 불교전문학교를 졸업 한 후 일본으로 도일, 1942년 일본 용곡(龍谷) 대학을 졸업했다. 1959년 조계사 주지, 1961년 동국학원 이사를 엮임했으며 1965년에 도봉산 천축사 무문관에서 6년 결사를 성만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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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응 스님(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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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계사 주지를 역임하면서 비구, 대처의 분규에 염증을 느껴 조용히 머물 곳을 물색하던 중 찾은 곳이 천축사 무문관이었다. 스님은 6년 동안 완전히 외부와 차단되어 부처님의 6년간 설산 고행을 본받으면서 면벽참선했다. 거기서 깨달음을 얻어 박차고 나오는 것은 곧 자신의 거짓된 껍질을 완전히 부수어 내외가 명철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스님은 말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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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한 스님은 재가자들을 향한 법문에서 화두만이 견성의 길이 아니라고 했다. 어느 집이든 문이 있으면 들어가는 것이지 어느 쪽 문만 사용한다는 법이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 어느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라고 《현대불교신문》에서 말한 적이 있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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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님은 강사로서도 이름이 높아 김룡사 강원 강사 이래 10여 년간 강사 생활을 했다. 특히 유식학(唯識學)에 조예가 깊다.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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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님은 1980년 동화사 금당선원 조실로 납자들을 제접했다. 1981년부터 82년까지 직지사 천불선원 조실로 지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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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지사 중암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내던 스님은 2004년 2월28일(음력2월9일) 오후7시 이곳에서 당신의 한 생을 마감했다. 세수 95세. 법랍 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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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출처 :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선원총람』, 2000, p. 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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