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광스님(妙硄, 1946生, 비구니)"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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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서예
 
|특기|| 서예

2022년 8월 23일 (화) 14:00 판


정의

월강(月江) 묘광(妙硄)스님은 동학사 미타암에서 지관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여 양산 증산사 주지를 역임한 대한민국 비구니 스님이다.

생애

1946 충북 청원 출생
1960 동학사 미타암에서 지관(智觀)스님을 은사로 출가
1964 동학사에서 무불(無佛)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69 범어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70 동학사 강원 졸업, 해인사 하안거 성만
1987 양산 증산사 주지 취임
1990 요사채 42평 완공
1998 법당 50평 2층 건물로 완공
2004 증산사 주지

경력

연도 내용
1946 충북 청원 출생
1960 동학사 미타암에서 지관(智觀)스님을 은사로 출가
1964 동학사에서 무불(無佛)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69 범어사에서 석암(昔岩)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70 동학사 강원 졸업, 해인사 하안거 성만
1987 양산 증산사 주지 취임
1998 요사채 42평 완공
1985 법당 50평 2층 건물로 완공
2004 증산사 주지
문중 [[삼현(三賢)문중 [[
특기 서예
수계제자 상진(相眞)

활동 및 공헌

출가

월강(月江) 묘광(妙光)스님은 1946년 8월 13일 충북 청원군 강외면 정중리 23번지에서 아버지 박홍규의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이며, 이름은 박종숙이다.

일찍이 불교를 믿으신 어머니 덕분에 스님은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자주 절에 다니곤 하였다. 이처럼 어려서부터 스님들 곁에서 살다시피 했던 인연과 어른들의 인도로 15세에 출가하였다.

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52


스님은 1960년 음력 5월 5일 동학사 미타암에서 지관(智觀)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고, 노스님은 인정스님이시다. 노스님께서는 1978년 음력 6월 12일 충청남도 공주군 동학사 미타암에서 입적하셨다.

스님은 출가 후 불사를 하시는 은사스님을 헌신적으로 모시면서 1964년 음력 9월 25일 동학사에서 무불(無佛)화상을 계사로 사미니계를 수지하였고, 1969년 음력 3월 15일 범어사에서 석암(昔岩)화상을 계사로 비구니계를 수계하였다.

출처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53

수행과 수학

그리고 이듬해 3월 15일 동학사에서 대교를 수료하고 서울에 잠시 머물다가 그해 여름 해인사에서 하안거를 성만하였다. 스님이 강원에 있을 때에는 심부름을 많이 했다. 노스님들의 시봉은 물론이고 선배 스님들의 일을 수시로 도와주며 공부를 해나갔다. 손에 물 마를 새 없이 일과 공부를 병행하였고, 워낙 먹을 것이 없던 시절이라 강냉이죽을 먹으면서 견뎠다. 그나마 강냉이죽도 없을 때에는 굶어야 했다. 요즘 학인들의 생활과는 달라도 너무나 달랐다.

증산사를 불사하다.

1987년 1월 16일, 스님은 서울에서 서예학원에 다니면서 마땅한 인연처를 찾던 중에 아는 스님의 소개로 현재의 증산사에 거처를 정하게 되었다. 당시 증산사는 대처승이 살던 절이었는데, 9평짜리 법당, 같은 크기의 초가로 지은 요사채, 46평의 땅이 사찰의 전 자산이었다.

절 살림이 가난하여 불사를 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더군다나 다 허물어져 가는 초가집이다보니 조금만 비가 와도 천장에 비가 샜다. 식수는 물론 드나드는 길도 마땅치 않아 경운기 2대로 시멘트를 날라가며 어렵고 힘들게 불사를 하였다. 신도들의 시주와 아는 사람을 통해 빚을 낸 돈으로 불사를 이룬 것이 지금의 증산사이다. 갖은 고생 끝에 스님은 1990년 음력 2월 20일 요사채 42평을 완공하였고, 1997년 법당 불사를 시작하여 다음해 음력 2월 24일에는 법당을 50평의 이층 건물로 완공하였다. 지금도 신도들이 많지 않아 재정적으로 힘든 실정이지만 스님은 기도로써 증산사를 지켜가고 있다.

출처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 54

서예를 좋아하는 묘광스님은 2004년 현재 세수 59세, 법랍 44세로 가람 수호에 힘쓰며 수행정진 중이다.

수계제자로는 상진(相眞)스님이 있다.

(2022년 현재 상황 확인이 안됨)

참고문헌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수행담록』. 하권. 뜨란출판사, 2007, pp. 51~54.
  • 한국비구니연구소.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133 .
  • 하춘생.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2013, p. 183, 389

시맨틱 데이터

노드 데이터

식별자 범주 유형 표제 한자 웹 주소
묘광(妙硄)스님 본항목 묘광스님(妙硄, 1946~ 현재) (妙硄 http://dh.aks.ac.kr/~biguni/wiki/index.php/%EB%AC%98%EA%B4%91%EC%8A%A4%EB%8B%98(%E5%A6%99%E7%A1%84,_1946%E7%94%9F,_%EB%B9%84%EA%B5%AC%EB%8B%88)
  • 문맥항목 유형: 승려(비구니), 승려(비구), 인물, 단체, 기관/장소, 사건/행사, 물품/도구, 문헌, 작품, 개념/용어,

릴레이션 데이터

주석

항목1 항목2 관계
묘광(妙硄)스님 지관(智觀)스님 ~의 제자이다
묘광(妙硄)스님 양산군 증산사 ~에서 출가하다
묘광(妙硄)스님 양산군 증산사 ~의 주지를 역임하다
묘광(妙硄)스님 양산군 증산사 ~를 정비(중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