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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 '''사찰명 : 무주 향산사(茂朱 香山寺)''' * 소재지 : 전북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720 (전북 무주군 무주읍 향한로 27-7) 무주군 무주읍 소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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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군 무주읍 소재지에 위치한 향산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로 비구니들이 수행하는 사찰이다. </br> | 무주군 무주읍 소재지에 위치한 향산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로 비구니들이 수행하는 사찰이다. </br> | ||
− | 향산사는 | + | 향산사는 삼일 독립운동 당시 민족대표 중의 한 분인 백상규(白相奎) 즉 용성(龍城) 대선사가 1918년경 창건하시고, 병자년(1936년)에 선파(仙坡)스님이 중창했다. </br> |
용성선사는 도심포교를 위해 지장회를 조직하여 포교당을 설립하시고, 부인선원으로 참선수행을 지도했다. 그후 선파(仙坡), 전강(田岡) 선사 등 고승대덕 스님들께서 주석하면서 포교를 했고 1975년 비구니 혜안(慧眼)스님이 인법당이었던 것을 팔작지붕의 법당으로 건립했다.</br> | 용성선사는 도심포교를 위해 지장회를 조직하여 포교당을 설립하시고, 부인선원으로 참선수행을 지도했다. 그후 선파(仙坡), 전강(田岡) 선사 등 고승대덕 스님들께서 주석하면서 포교를 했고 1975년 비구니 혜안(慧眼)스님이 인법당이었던 것을 팔작지붕의 법당으로 건립했다.</br> | ||
향산사 소장불서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전후 시기에 간행된 불교 의식에 관한 불서로서, 97책(목판본 75, 필사본 12, 신식본 10) 중 17책이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br> | 향산사 소장불서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전후 시기에 간행된 불교 의식에 관한 불서로서, 97책(목판본 75, 필사본 12, 신식본 10) 중 17책이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br> |
2024년 8월 16일 (금) 20:31 기준 최신판
- 사찰명 : 무주 향산사(茂朱 香山寺)
- 소재지 : 전북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720 (전북 무주군 무주읍 향한로 27-7)
무주군 무주읍 소재지에 위치한 향산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로 비구니들이 수행하는 사찰이다.
향산사는 삼일 독립운동 당시 민족대표 중의 한 분인 백상규(白相奎) 즉 용성(龍城) 대선사가 1918년경 창건하시고, 병자년(1936년)에 선파(仙坡)스님이 중창했다.
용성선사는 도심포교를 위해 지장회를 조직하여 포교당을 설립하시고, 부인선원으로 참선수행을 지도했다. 그후 선파(仙坡), 전강(田岡) 선사 등 고승대덕 스님들께서 주석하면서 포교를 했고 1975년 비구니 혜안(慧眼)스님이 인법당이었던 것을 팔작지붕의 법당으로 건립했다.
향산사 소장불서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전후 시기에 간행된 불교 의식에 관한 불서로서, 97책(목판본 75, 필사본 12, 신식본 10) 중 17책이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2003년도에 대한불교조계종 문화유산발굴조사단에 목판본 30종 75책, 필사본 11종 12책, 신식본 2종 10책이 정밀 조사되어, 이중 15종 17책이 사료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특히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詳校正本慈悲道場懺法)』(1474년)은 궁실의 수명장수와 극락왕생을 기원할 목적으로 간행된 불서이며, 『운수단가사(雲水壇謌詞)』(1651년), 『운수단(雲水壇)』(1680년),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天地冥陽水陸齋儀纂要)』(1568년) 등은 국내에서 소개되지 않은 희귀본으로 추정되고 있다.
[출처 및 참고자료]
- 여행은 행복이다 무주 향산사(香山寺)
- 지도 : 향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