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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호양익(靑昊兩翼) 스님은 일제 강점기인 1934년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답풍리에서 김해 허씨 수봉옹과 밀양 박씨를 부모로 태어났다. 젊은 시절 동국대 총무과장 일을 부탁받아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낸 안호상 박사를 만나러 가는 자리에서 동산큰스님을 처음으로 만났으며, 이후 동산스님과의 두 번째 만남에서 오랜 인연의 느낌을 받고 범어사로 출가했다. 29세 되던 1962년 3월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으셨으며, 31세 되던 1964년 3월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br> | 청호양익(靑昊兩翼) 스님은 일제 강점기인 1934년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답풍리에서 김해 허씨 수봉옹과 밀양 박씨를 부모로 태어났다. 젊은 시절 동국대 총무과장 일을 부탁받아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낸 안호상 박사를 만나러 가는 자리에서 동산큰스님을 처음으로 만났으며, 이후 동산스님과의 두 번째 만남에서 오랜 인연의 느낌을 받고 범어사로 출가했다. 29세 되던 1962년 3월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으셨으며, 31세 되던 1964년 3월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br> | ||
양익스님은 이후 전통불교무도와 관법수행에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무도를 통해 온갖 번뇌와 욕심을 떨치고 궁극의 깨달음에 이르는 체계를 세우기 위해 노력한 결과 법화경과 화엄경을 토대로 몸과 마음을 실천적 수행을 통해 번뇌를 여의토록 하는 “불교금강영관”이란 전통의수행법을 정립했다. 이후 스님은 불교금강영관 관주로서 범어사에서 대승금강승문을 열고 인연되는 스님과 재가자들을 대상을 불가에서 비전하는 무술과 불법을 지도하기 시작했다.</br> | 양익스님은 이후 전통불교무도와 관법수행에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무도를 통해 온갖 번뇌와 욕심을 떨치고 궁극의 깨달음에 이르는 체계를 세우기 위해 노력한 결과 법화경과 화엄경을 토대로 몸과 마음을 실천적 수행을 통해 번뇌를 여의토록 하는 “불교금강영관”이란 전통의수행법을 정립했다. 이후 스님은 불교금강영관 관주로서 범어사에서 대승금강승문을 열고 인연되는 스님과 재가자들을 대상을 불가에서 비전하는 무술과 불법을 지도하기 시작했다.</br> |
2024년 5월 11일 (토) 22:03 판
- 인물명 : 청호양익(靑昊兩翼))
청호양익(靑昊兩翼) 스님은 일제 강점기인 1934년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답풍리에서 김해 허씨 수봉옹과 밀양 박씨를 부모로 태어났다. 젊은 시절 동국대 총무과장 일을 부탁받아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낸 안호상 박사를 만나러 가는 자리에서 동산큰스님을 처음으로 만났으며, 이후 동산스님과의 두 번째 만남에서 오랜 인연의 느낌을 받고 범어사로 출가했다. 29세 되던 1962년 3월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받으셨으며, 31세 되던 1964년 3월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양익스님은 이후 전통불교무도와 관법수행에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무도를 통해 온갖 번뇌와 욕심을 떨치고 궁극의 깨달음에 이르는 체계를 세우기 위해 노력한 결과 법화경과 화엄경을 토대로 몸과 마음을 실천적 수행을 통해 번뇌를 여의토록 하는 “불교금강영관”이란 전통의수행법을 정립했다. 이후 스님은 불교금강영관 관주로서 범어사에서 대승금강승문을 열고 인연되는 스님과 재가자들을 대상을 불가에서 비전하는 무술과 불법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38세 되던 1971년 범어사 서지전과 극람암(현재의 휴휴정사)에서 연수원을 열고 본격적으로 불교금강영관의 전수에 전념했다. 45세 되던 1978년부터 범어사 청련암에 주석하시면서 원적하실 때까지 28년간 범어사 청련암을 불교 금강영관 전문수행도량으로 이끌었다.
73세 되신 금년 부처님 오신 날인 5월 5일에는 평소 주석하고 있는 범어사 청련암에서 상좌 약연스님을 불러 “홍천의 불사와 단양의 동산스님 생가 복원사업, 청련암 불사를 맡기겠다.”고 전하시고 오후에는 통도사 적멸보궁을 직접 참배하며 등을 달기도 했다.
다음날인 2006년 5월 6일 새벽 새벽 1시 20분경, 범어사 청련암 있던 약연스님, 행언스님은 큰스님께서 급히 찾는다는 전갈을 받고 스님의 처소로 찾아가자 가부좌를 한 채 고요한 모습이셨으며, 큰스님의 입적을 예감한 두 스님이 “스님이 가시면 제자들은 어떻게 합니까?”라는 물음에 대답없이 고요히 앉은 채 세수 73세 법랍 45세로 원적에 들었다.
[출처 및 참고자료] 청련야우(靑蓮夜雨) 靑昊堂 兩翼大禪師(청호당 양익대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