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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옥문중은 조계종 승단정화운동이 한창이던 1956년 전국비구니계의 추천으로 조계산 선암사 주지를 역임한 광호(光毫, 1915~1989)스님과 제주 관음사를 창건하고 법화사를 중창하는 등 제주불교를 중흥시킨 인물로 이름높은 봉려관(蓬廬觀, 1865~1938) 스님의 세계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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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옥문중은 혜원(蕙園, ?-1955)스님과 봉려관(蓬廬觀, 1865-1938)스님의 세계가 대표적이다. 혜원스님은 인선(仁善, 1900-1991), 광호(光毫, 1915-1989)를 상좌로 두었고, 봉려관스님은 경우, 대지월, 화선, 대혜, 목련, 성해, 길만, 원만을 상좌로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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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선스님은 성환, 성각, 법연, 법명을 상좌로 두었고, 법손자는 귀연, 종열, 종우(이상 성환 상좌), 종진(성각 상좌), 효정, 대우(이상 법연 상좌), 경동, 주연(이상 법명 상좌) 등이 세계를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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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승단정화운동이 한창이던 1956년 전국비구니계의 추천으로 조계산 선암사 주지를 역임한 광호스님은 계민 문중의 성문스님과 함께 교구본사주지로 비구니가 부임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광호스님은 이후 동학사주지로 부임해 강당을 복원하는 등 동학사가 오늘날 비구니 전문 강원으로서 자리매김하는데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 광호스님은 법희, 법인, 능인, 법능, 법공, 법영, 진우, 보은, 법열, 묘현, 법운, 보관, 연심 등 13명을 상좌로 두었다. 법손자는 상운, 상문, 효덕, 지정, 지수, 정하, 혜달(이상 법희 상좌), 지형, 지훈, 상욱, 현암, 지명, 현경, 성관, 원만, 수정(이상 법인 상좌), 상진, 상일, 지은(이상 능인 상좌), 상용, 상조(이상 법능 상좌), 진성, 지성(이상 법공 상좌), 대성, 영운(이상 법영 상좌), 지언(진우 상좌), 선덕(보은 상좌), 선웅, 지웅(이상 법열 상좌), 대화(법운 상좌), 학봉, 인성(이상 연심 상좌) 등이 세계를 잇고 있다.  
  
1950년대 당시 광호스님의 선암사 주지역임은 동화사 주지를 역임한 계민문중의 성문(性文) 스님과 함께 교구본사주지로 비구니가 부임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광호스님은 선암사 주지 역임 이후 동학사 주지로 부임해 강당을 복원하는 등 동학사가 오늘날 비구니전문강원으로서 자리매김하는데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 1
 
광호스님은 문하에 법인(法印)⋅법희(法喜)⋅법능(法能)⋅능인(能忍)⋅법공(法空)⋅진우(眞佑)⋅법영(法暎)⋅보은(報恩)⋅법열(法悅)⋅법운(法雲)⋅묘현(妙玄)⋅보관(普觀) 등 12명을 상좌로 두었다. 법손자로는 지형(志炯)⋅지훈(志訓)⋅상욱⋅상경⋅지명(志明)⋅원만⋅현경(이상 법인상좌)⋅상운(법희상좌)⋅상용(법능상좌)⋅상진⋅상일⋅지연(이상 능인상좌)⋅진성(辰性)⋅지성(知聲, 법공상좌)⋅지은(진우상좌)⋅선덕(善德, 보은상좌)⋅선웅(법열상좌) 스님 등이 세계를 잇고 있다.
 
  
광호스님의 장법손인 김천 청암사승가대학장 지형(志炯, 1947~현재)스님이 도업(道業)⋅도림(道林)⋅보련(普蓮)⋅도겸(道謙)⋅도현(道玄)⋅길장(吉藏)⋅명준(明俊)⋅명오(明悟)⋅도유(道逾)⋅도성(道成) 등을, 부산 부곡동 보덕사 주지 지훈(志訓, 1947~현재)이 도영(道暎)⋅자선(慈善)⋅수암(守岩)⋅휴담(休潭)⋅범견(梵見) 등을 제자로 배출하고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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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려관스님은 1865년 6월 14일() 제주시 화북리에서 출생했다. 부친은 순흥 안()씨 치복(致福)이며, 모친은 신()씨이고, 차녀이다. 속명은 안려관(安廬觀)이다. 1899년 관음신앙을 처음 받아들였고, 1907년 12월 8일() 해남 대흥사에서 비구니 유장을 은사로 비구 청봉화상을 계사로 승려가 되었다. 1909년 한라산에 관음사를 최초 창건한 것을 필두로 도심포교를 위해 1925년 제주 상권중심지에 성내포교당을 창건했으며, 제주도와 일본 오사카에 10여개의 사찰을 창건, 중창해서 근대제주불교를 일으켜 세웠다. 불교유치원 및 중학교 설립에 앞장섰으며, 1911년 법정사를 창건해서 1918년 법정사 항일운동을 견인시킨 인물이다. 봉려관스님은 1938년 5월 29일() 관음사에서 입적하였다. 법손자는 인홍, 인흥(이상 대지월 상좌), 인하, 인명(이상 화선 상좌), 법선, 법명, 법경, 법희, 법조, 법주, 법현, 법정(이상 성해 상좌), 금강(원만 상좌) 등이 세계를 잇고 있다. (출처: 혜달(2021), 『봉려관, 근대제주불교를 일으켜 세우다』, 조계종 출판사.
광호의 은사인 혜원스님은 광호스님과 함께 인선(仁善)스님을 상좌로 삼았는데, 인선은 성환(性環)⋅성각(性覺)⋅법련(法蓮)⋅법명(法明) 등 4명을 배출했고, 이 가운데 성환스님이 종열(宗悅)⋅종우(宗雨)스님에게 사사했다.
 
  
봉려관스님은 1865년 6월 14일 제주시 화북리에서 부친 순흥 안(安)씨 치복과 모친 평산 신(申)씨 사이 차녀로 태어나 이름을 여관(廬觀)이라고 하였다. 35세가 되는 1899년 심(心)출가의 인연을 맺고 한라산 중턱에 있는 동굴(현재 관음사 경내의 해월굴)에 기거하면서 주력정진에 매진하던 중 백의관음보살의 현몽에 따라 43세 때인 1907년 정미년 음력 12월 8일에 해남 대흥사에서 유장(宥藏)을 은사로, 청봉화상을 계사로 삭발수계했다. 1908년 정월 5일 제주로 돌아와 주민들의 불교에 대한 몰이해 속에서도 포교정진의 일념을 놓지 않았으며, 마침내 이듬해인 1909년 한라산 북쪽 아미산에 관음사를 창건하고 이후 계속해서 원당봉 불탑사와 시내 중심가에 관음사포교당인 대각사를 창건했다. 한라산 남쪽에는 중문 법정산 법정사와 법화사를 중창하고, 제주서부지역인 한림면 고산리 월성사와 제주동부지역인 구좌면 김녕리 백련사 등을 창건했는가 하면, 바른 불법홍포를 위해 당시 조선불교대회 법사인 이회명(1866~1951)을 초청해 순회포교를 하면서 불교의 취지를 강연하는 등 수시로 법회를 열었다.혜전(2007), 「봉려관 스님과 제주불교의 중흥」, 앞의 책, pp.349~357.
 
  
봉려관스님은 1925년 12월 25일 제주불교협회 창립을 비롯해 이회명과 함께 제주불교부인회와 제주불교소녀단 등을 창설하는 등 200여 년 이상 무불경지(無佛境地)로 계속되어온 제주불교의 옛 명성을 재건하는데 헌신하다가 1938년 5월 29일 세수74세 법랍31세로 입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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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려관스님은 1925년 12월 25일 제주불교협회 창립을 비롯해 이회명과 함께 제주불교부인회와 제주불교소녀단 등을 창설하는 등 200여 년 이상 무불경지(無佛境地)로 계속 되어온 제주불교의 옛 명성을 재건하는데 헌신하다가 1938년 5월 29일 세수 74세 법랍 31세로 입적했다. (출처: 하춘생(2013),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pp.260-261)
(출처: 하춘생(2013), 『한국의 비구니문중』, 해조음, pp260~261)
 
  
 
[[분류: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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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12일 (월) 13:38 기준 최신판

두옥문중은 혜원(蕙園, ?-1955)스님과 봉려관(蓬廬觀, 1865-1938)스님의 세계가 대표적이다. 혜원스님은 인선(仁善, 1900-1991), 광호(光毫, 1915-1989)를 상좌로 두었고, 봉려관스님은 경우, 대지월, 화선, 대혜, 목련, 성해, 길만, 원만을 상좌로 두었다. 인선스님은 성환, 성각, 법연, 법명을 상좌로 두었고, 법손자는 귀연, 종열, 종우(이상 성환 상좌), 종진(성각 상좌), 효정, 대우(이상 법연 상좌), 경동, 주연(이상 법명 상좌) 등이 세계를 잇고 있다. 조계종 승단정화운동이 한창이던 1956년 전국비구니계의 추천으로 조계산 선암사 주지를 역임한 광호스님은 계민 문중의 성문스님과 함께 교구본사주지로 비구니가 부임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광호스님은 이후 동학사주지로 부임해 강당을 복원하는 등 동학사가 오늘날 비구니 전문 강원으로서 자리매김하는데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 광호스님은 법희, 법인, 능인, 법능, 법공, 법영, 진우, 보은, 법열, 묘현, 법운, 보관, 연심 등 13명을 상좌로 두었다. 법손자는 상운, 상문, 효덕, 지정, 지수, 정하, 혜달(이상 법희 상좌), 지형, 지훈, 상욱, 현암, 지명, 현경, 성관, 원만, 수정(이상 법인 상좌), 상진, 상일, 지은(이상 능인 상좌), 상용, 상조(이상 법능 상좌), 진성, 지성(이상 법공 상좌), 대성, 영운(이상 법영 상좌), 지언(진우 상좌), 선덕(보은 상좌), 선웅, 지웅(이상 법열 상좌), 대화(법운 상좌), 학봉, 인성(이상 연심 상좌) 등이 세계를 잇고 있다.


봉려관스님은 1865년 6월 14일(음) 제주시 화북리에서 출생했다. 부친은 순흥 안(安)씨 치복(致福)이며, 모친은 신(申)씨이고, 차녀이다. 속명은 안려관(安廬觀)이다. 1899년 관음신앙을 처음 받아들였고, 1907년 12월 8일(음) 해남 대흥사에서 비구니 유장을 은사로 비구 청봉화상을 계사로 승려가 되었다. 1909년 한라산에 관음사를 최초 창건한 것을 필두로 도심포교를 위해 1925년 제주 상권중심지에 성내포교당을 창건했으며, 제주도와 일본 오사카에 10여개의 사찰을 창건, 중창해서 근대제주불교를 일으켜 세웠다. 불교유치원 및 중학교 설립에 앞장섰으며, 1911년 법정사를 창건해서 1918년 법정사 항일운동을 견인시킨 인물이다. 봉려관스님은 1938년 5월 29일(음) 관음사에서 입적하였다. 법손자는 인홍, 인흥(이상 대지월 상좌), 인하, 인명(이상 화선 상좌), 법선, 법명, 법경, 법희, 법조, 법주, 법현, 법정(이상 성해 상좌), 금강(원만 상좌) 등이 세계를 잇고 있다. (출처: 혜달(2021), 『봉려관, 근대제주불교를 일으켜 세우다』, 조계종 출판사.


봉려관스님은 1925년 12월 25일 제주불교협회 창립을 비롯해 이회명과 함께 제주불교부인회와 제주불교소녀단 등을 창설하는 등 200여 년 이상 무불경지(無佛境地)로 계속 되어온 제주불교의 옛 명성을 재건하는데 헌신하다가 1938년 5월 29일 세수 74세 법랍 31세로 입적했다. (출처: 하춘생(2013), 『한국의 비구니 문중』, 해조음, pp.260-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