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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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자 시절은 몹시도 힘이 들었다. 때가 아니면 음식을 금지하고 매 끼니를 보리밥으로 때우기 일쑤여서 수저를 내려놓고 돌아서기가 무섭게 배가 고팠다. 옷도 다 떨어 진 것만 주는 바람에 누덕누덕 기워 입고 생활하였다. 어른스님의 시봉을 맡았다가 얼만 지나지 않아 은사스님의 시자로 들어가 은사스님과 함께 생활하였는데 취침 시간을 불문하고 다음날 새벽 3시에 반드시 일어나야 했기에 힘이 많이 들었다. 더군다나 행자 때의 일이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법이었다. 늘 잠이 모자랐던 스님은 새벽에 예불을 하면서도 ‘몰래 숨어 잠잘 데가 없을까?’ 하고 궁리를 하다가 마침내 기막힌 장소 한 곳을 떠올렸다. 바로 이불을 넣어 두는 벽장이었다. 그래서 그 곳에 들어가 잠자기에 적당하다 싶은 데를 손으로 더듬거리는데 이미 누군가가 스님보다 먼저 와서 자고 있었다. 한창 젊은 나이의 행자스님들은 꼭두새벽부터 소임을 살면서 어른스님들 시중을 들다 보면 하루에 잠자는 시간이 많아야 서너 시간에 불과했기 때문에 행자스님들에게 가장 큰 고통은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잠이었던 것이다.
 
행자 시절은 몹시도 힘이 들었다. 때가 아니면 음식을 금지하고 매 끼니를 보리밥으로 때우기 일쑤여서 수저를 내려놓고 돌아서기가 무섭게 배가 고팠다. 옷도 다 떨어 진 것만 주는 바람에 누덕누덕 기워 입고 생활하였다. 어른스님의 시봉을 맡았다가 얼만 지나지 않아 은사스님의 시자로 들어가 은사스님과 함께 생활하였는데 취침 시간을 불문하고 다음날 새벽 3시에 반드시 일어나야 했기에 힘이 많이 들었다. 더군다나 행자 때의 일이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법이었다. 늘 잠이 모자랐던 스님은 새벽에 예불을 하면서도 ‘몰래 숨어 잠잘 데가 없을까?’ 하고 궁리를 하다가 마침내 기막힌 장소 한 곳을 떠올렸다. 바로 이불을 넣어 두는 벽장이었다. 그래서 그 곳에 들어가 잠자기에 적당하다 싶은 데를 손으로 더듬거리는데 이미 누군가가 스님보다 먼저 와서 자고 있었다. 한창 젊은 나이의 행자스님들은 꼭두새벽부터 소임을 살면서 어른스님들 시중을 들다 보면 하루에 잠자는 시간이 많아야 서너 시간에 불과했기 때문에 행자스님들에게 가장 큰 고통은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잠이었던 것이다.
  
 
   
 
 
==4. 참고문헌==
 
==4. 참고문헌==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 뜨란출판사, 2007, pp. 395~404.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 뜨란출판사, 2007, pp. 395~404.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

2022년 6월 11일 (토) 20:35 판



정의

혜돈 스님은 수행과 불사에 매진해 온 대한민국의 비구니스님이다

생애

1949 경북 상주 출생
1967 화운사에서 지명(智明)스님을 은사로 출가
1969 대은(大隱)스님을 계사로 사미니계 수지
1973~1976 해인사 약수암, 삼선암, 내원암, 대성암 등 안거 성만
1974 화운사 사교 수료
     범어사에서 고암(古庵)스님을 계사로 비구니계 수지.
1987 중앙승가대학교 졸업
1989~1997 전북 남원사 주지
1999~2000 화운사 주지
2004 현재 화운사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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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운사 혜돈스님.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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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 중 : 실상(實相)
  • 수계제자 : 묘향(妙香)•지정(智晶)

활동 및 공헌

  • 수행지침 : 주한 바 없는 데서 마음 작용은 현실이 그대로 해인삼매로다.
  • 생활신조 : 승려로서 자존심을 가지자.
  • 상 훈 : 대한불교 조계종 금산사 주지 표창패 수여 (1995)

출가

할머니 손잡고 다니던 세 살의 불연이 출가로 이어지다 혜돈(慧頓)스님은 1949년 5월 15일 경북 상주의 불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연일이며, 이름은 정민오이다. 세 살 때부터 할머니 손을 잡고 고향에 있는 작은 암자 극락암을 다녔다 고즈넉하고 정갈한 분위기가 왠지 좋았다. 스님이 살던 곳은 심심산골이어서 중학교에 진학하려면 상주 읍내까지 나가야만 했다. 당시만 해도 남존여비 사상이 팽배했던 시절이라 집안에서는 장녀인 스님을 중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살림을 돕게 하였다. 하지만 정작 스님은 외지로 나가서 학업을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갈수록 간절해졌다. 나중에 스님의 부모님은 스님에게 상주 읍내에 진학한 남동생 뒷바라지를 시키면서 고향집에 바쁜 일이 있으면 집안일을 돕도록 하였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집도 싫고 부모도 싫은 나머지 절에 가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스님은 열여덟 살 되던 해 친척 오빠에게 부탁하여 절에 가서 며칠을 지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오자 다 큰 처녀가 외박하고 왔다며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그 후 스님은 마지막 수단으로 편지를 써놓고 집을 나와 그 길로 어려서 할머니 손을 잡고 다니던 극락암으로 가서 어디라도 좋으니 절에만 보내달라고 주지스님께 부탁하였다. 처음에는 철없는 아이의 푸념으로만 여기고 야단을 치시던 극락암 주지스님은 출가에 대한 진심을 알고 화운사를 추천해 주었다. 다음날 새벽, 스님은 혹시라도 아는 사람을 만나면 집에 다시 붙들려 가게 될까 조심하며 서울행 첫 차인 완행열차를 타고 수원으로 향했는데, 도착할 무렵에는 이미 날이 저물어 있었다. 화운사 입구에 당도했을 때는 밤 8시가 거의 다 된 캄캄한 밤중이었다. 차에서 내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간신히 길을 찾아 낮은 고개에 오르자 청아한 목탁소리가 들려왔다. 목탁소리를 들으니 안도의 한숨이 나오고 그 동안의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쏟아졌다. 마침내 스님보다 어린 행자가 차려주는 꿀맛 같은 저녁 공양을 하는 것으로 출가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때가 스님의 나이 19세 되던 1967년 10월 21일이었다. 행자생활 막상 출가를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스님은 불교를 잘 알아서 발심 출가를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고요하고 엄숙한 절 분위기가 좋았고 학교에 보내주지 않는 부모님이 싫어서 집을 도망쳐 나왔다는 것이 좀 더 솔직한 심정이었다. 다만 은사 지명스님은 뵙자마자 너무나 좋았다. 지명스님 같은 분과 함께 살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했다. 하루하루 지명스님을 뵙는 기쁨으로 살던 혜돈스님은 어느 날 『선가귀감』을 읽게 되었다. 그 뜻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너무나 색다른 세계가 그 속에 있었다. 스님은 미지의 세계에 단숨에 매료되었다. 그때부터 공부를 낙으로 삼고, ‘나의 괴로운 마음을 없애는 방법은 없을까?’ 하고 궁리하였다. 혜돈스님이 출가한 당시 화운사에는 학인 30여 명이 있었으며 선원에도 몇 분의 스님이 있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삭발하지 않으면 큰방에 못 들어가게 하는 규칙이 없었기에 혜돈스님은 머리를 깎지 않고 행자로서 큰방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화운사에 들어간 지 3개월쯤 후인 정월 대보름이 지난 뒤 삭발하였다. 행자 시절은 몹시도 힘이 들었다. 때가 아니면 음식을 금지하고 매 끼니를 보리밥으로 때우기 일쑤여서 수저를 내려놓고 돌아서기가 무섭게 배가 고팠다. 옷도 다 떨어 진 것만 주는 바람에 누덕누덕 기워 입고 생활하였다. 어른스님의 시봉을 맡았다가 얼만 지나지 않아 은사스님의 시자로 들어가 은사스님과 함께 생활하였는데 취침 시간을 불문하고 다음날 새벽 3시에 반드시 일어나야 했기에 힘이 많이 들었다. 더군다나 행자 때의 일이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법이었다. 늘 잠이 모자랐던 스님은 새벽에 예불을 하면서도 ‘몰래 숨어 잠잘 데가 없을까?’ 하고 궁리를 하다가 마침내 기막힌 장소 한 곳을 떠올렸다. 바로 이불을 넣어 두는 벽장이었다. 그래서 그 곳에 들어가 잠자기에 적당하다 싶은 데를 손으로 더듬거리는데 이미 누군가가 스님보다 먼저 와서 자고 있었다. 한창 젊은 나이의 행자스님들은 꼭두새벽부터 소임을 살면서 어른스님들 시중을 들다 보면 하루에 잠자는 시간이 많아야 서너 시간에 불과했기 때문에 행자스님들에게 가장 큰 고통은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잠이었던 것이다.

4. 참고문헌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수행담록』 중. 뜨란출판사, 2007, pp. 395~404.
  • 한국비구니연구소 저. 『한국비구니명감』. 뜨란출판사, 2007,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