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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남대 기린산 기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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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소: 강원도 진부면 동산리 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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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10일 (금) 06:07 판

정의

남대 지장암 기린선원은 월정사의 산내 암자인 남대 지장암에서 경영하는 선원이다.

위치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남대 기린산 기슭에 있다.

  • 주소: 강원도 진부면 동산리 63-9



연혁

남대 지장암은 한암스님이 1925년 49세에 봉은사 조실로 추대 받고 잠깐 머물다 오대산 상원사에 들어온 후 입적까지 27년간 산문을 나오지 않았던 곳이다. 1931년경 금강산에서 한암 스님께 공부지도를 받기 위해 이곳에 찾아온 두 분의 비구니 스님(황해도 출신 률노스님, 개성 출신 해노스님) 등이 지장암에 주석하게 되면서 지장암에서 해제 결제없이 30여명의 스님들이 정진했으며, 1937년 본공스님이 한암스님을 친견하고 지장암에서 입승을 살며 선원의 면모를 갖추었으니 이로부터 지장암 기린선원이 탄생하였다.

지장암 비구니선원은 최초 비구니선원을 연 수덕사 견성암(충남 예산}에 이어 윤필암(경북 문경]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다. 1931년경 지장암 기린선원의 설립으로 우리나라 북방 비구니 선불교가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지장암은 한 철에 비구니선객들이 가져오는 쌀 6말과 보살이 가져오는 쌀 9말로 정진할 만큼 어려운 형편이었으나 인홍스님이 원주를 맞으면서 스님의 신심과 원력으로 곡식을 다락에 쌓아 놓을 수 있었고 대중은 먹는 일에 걱정을 하지 않고 정진할 수 있었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한국전쟁 직전 인홍스님이 원주를 살고 본공스님이 입승을 살던 8~9년이 지장암의 선 수행의 황금기로 볼 수 있다.

지장암 기린선원은 1992년까지 매년 하안거에 선원대중이 모여 정진을 하였으나 해가 거듭할수록 시설의 협소함을 절감하고 1994년 지층을 겸한 90여평 규모의 비구니수행도량으로 거듭나 하안거[1]와 동안거[2]로 나뉘어 대중 30명이 함께 좌선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1. 하안거: 음력 4월 15일 ~ 7월 15일
  2. 동안거: 음력 10월 15일 ~ 1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