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길원(綏吉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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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조의 후궁 정빈이씨의 묘.

개설

정빈이씨(靖嬪李氏)는 이준철(李俊哲)의 딸로, 영조가 즉위하기 전에는 후궁인 소원(昭媛)이었다. 1719년(숙종 45)에 나중에 진종(眞宗)으로 추존되는 경의군(敬義君)을 낳았으나, 1721년(경종 1) 11월에 28세로 요절하였다. 1725년(영조 1)에 경의군이 왕세자로 책봉되면서 정빈에 추증되었다(『영조실록』 1년 2월 25일)(『영조실록』 1년 2월 27일). 1778년(정조 2)에는 정빈의 위패를 연호궁(延祜宮)에 봉안하였으며, 시호를 온희(溫僖)라 하고 묘를 봉원(封園)하여 수길원(綏吉園)으로 승격하였다(『정조실록』 2년 3월 18일). 수길원은 오늘날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에 위치해 있으며, 1991년에 사적 제359호로 지정되었다.

조성 경위

정빈이씨의 소생인 경의군은 1728년(영조 4) 10세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는데, 영조는 그에게 ‘효장(孝章)’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그 뒤 1776년(정조 즉위)에 양자인 정조가 즉위하면서 진종으로 추숭되었다. 1778년(정조 2) 영조의 삼년상이 끝나고 그 신주를 종묘에 부묘하면서, 영조가 정해 놓은 궁원제(宮園制)에 따라 정빈과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생모 영빈(暎嬪) 등 추존 왕의 사친(私親)을 봉원하는 일이 논의되었다(『정조실록』 2년 1월 30일). 그에 따라 정빈에게 시호를 올리고, 그 묘를 봉원하게 된 것이다.

조성 상황

정빈의 시호와 원호를 정한 뒤, 상시봉원도감(上諡封園都監)을 설치하여 기존의 묘를 정비해 원(園)으로 조성하였다. 정자각은 4월 13일에서 25일에 걸쳐 건립되었다. 수길원 조성 공사를 마무리한 정조는 1778년(정조 2) 8월 20일, 수길원과 영조의 생모 숙빈최씨의 묘인 소령원(昭寧園)에 나아가 친히 제사를 지냈다(『정조실록』 2년 8월 20일).

수길원의 상설(象設)은 곡장을 두르고 장명등 1개, 망주석 1쌍, 문인석 1쌍을 두었다. 표석은 능 앞에 설치했는데, ‘조선국정빈함성이씨지묘(朝鮮國靖嬪含城李氏之墓)’라 쓰여 있었다. 정자각과 홍살문, 수라간을 건립하였고, 전사청과 제기고, 안향청 등은 인접한 소령원과 함께 사용하도록 하였다. 수길원의 수봉관(守奉官) 및 수복도 소령원의 수봉관 및 수복이 겸하게 하였다(『정조실록』 2년 3월 19일).

변천

1908년(융희 2)에는 제사 제도를 개정하면서, 역대 왕 가운데 정궁(正宮) 출신이 아닌 왕의 생모 신위를 육상궁(毓祥宮)에 봉안하고 일 년에 두 번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그에 따라 인조의 생조모인 인빈김씨(仁嬪金氏)의 신위를 모신 사당인 저경궁을 비롯해, 대빈궁, 선희궁, 경우궁, 연호궁 등이 폐궁되었다(『순종실록』 1년 7월 23일).

참고문헌

  • 『일성록(日省錄)』
  • 『춘관통고(春官通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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