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손노비(法孫奴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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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에서 승려가 자신의 직속 후계인 승려에게 물려주던 노비.

개설

한국에서는 예로부터 노예를 노비(奴婢)로 칭했고, 소유의 대상에 따라 공노비와 사노비로 구분되었다. 사원에서 소유하는 노비인 사사노비는 공노비로 간주되었지만, 그 가운데에는 승려 개인 소유의 법손노비(法孫奴婢)가 존재했다. 국가에서는 이들에 대한 사적 소유를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였으나 실제로는 사찰이나 승려가 사적으로 노비로 소유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용 및 특징

고려와 조선시대에 사원이 본 주인이 되어 소유한 노비를 사사노비(寺社奴婢)라 하는데, 법손노비는 사사노비의 일종이다. 사사노비는 사원에 예속된 노비로 사원에 대해 일정한 의무를 지고 있어서 입역(立役), 사원의 사유지 경작, 신공(身貢)의 납부, 잡역 등을 부담하였다. 다만 사사노비가 부담하는 입역, 신공 등은 원칙적으로 사원의 유지와 사원 본연의 목적인 종교 활동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했다. 그래서 승려 개인이 자의적으로 사사노비의 신공을 다른 목적이나 용도로 쓸 수 없고,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사사로이 부릴 수 없었다. 엄밀하게는 승려 개인에 의한 사사노비의 사적인 사역 및 소유 자체가 불법이었으며, 개인의 사노비(私奴婢)와는 성격이 달랐다. 그래서 국가에서는 사사노비의 개인적인 사역이나 증여를 금지했던 것인데, 이것이 고려말 조선초에 들어서는 거의 지켜지지 않았고 사사노비를 불법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변천

사사노비 중에 개인에 대한 예속성을 가진 존재가 법손노비(法孫奴婢)였다. 법손노비는 사사노비와는 별도의 파악 대상이 되어, 법손(法孫) 관계가 되는 승려와 제자와의 사이에서 상속되는 자들로 개인에 대한 예속성이 강한 노비였다. 사사노비는 상속이 가능했기 때문에 사적인 목적을 위한 사역이 가능했다. 억불 정책이 시행되던 조선 태종 때는 국가에서 임의로 법손노비의 수를 제한하여 일정 정도 이상으로 증가하는 것을 방지하였다. 국가에서 법손노비를 공노비의 하나로 취급한 것이다.

법손노비는 1406년(태종 6)의 사원혁파(寺院革罷)와 함께 사사노비를 관으로 귀속시키는 속공(屬公) 조치가 취해질 때까지 존속했지만, 1421년(세종 3)의 속공 조치 이후 완전히 없어졌다(『세종실록』 3년 9월 11일). 세종 때의 속공으로 승려 개인에 의한 법손노비의 소유는 완전히 금지되었다. 그러나 법손노비의 소유가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승려들은 은닉 등 여러 방법을 통해서 법손노비를 소유하고자 했다. 법손노비가 예속성이 강한 사노비와 같은 존재였던 만큼 승려들이 그 소유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참고문헌

  • 한우근, 『유교정치와 불교: 여말선초 대불교시책』, 일조각, 1993.
  • 공축영, 「여말선초의 사사노비에 대한 연구」, 『대전실전·중경공전논문집』12, 1983.
  • 심재훈, 「고려말 조선초 사사노비에 대한 일고찰」,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7.
  • 이재룡, 「조선전기의 노비연구」, 『숭전대논문집』3, 1971.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