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유견포복(大紅油絹包袱)"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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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홍색 유견(油絹)으로 만든 보자기.
 
대홍색 유견(油絹)으로 만든 보자기.

2017년 12월 9일 (토) 20:47 기준 최신판



대홍색 유견(油絹)으로 만든 보자기.

내용

물건을 싸거나 덮기 위해서 만든 보자기로 1403년(태종 3) 명나라 사신 황엄(黃儼) 등이 왕의 면복(冕服)과 책(冊) 등을 가지고 온 물건 속에 대홍유견포복(大紅油絹包袱) 1조가 들어 있었다(『태종실록』 3년 10월 27일). 1443년(세종 25)에는 호군(護軍)김황(金滉)을 사은사(謝恩使)로 삼아, 유수강(柳守剛)과 함께 관복을 청하는 자문(咨文)을 써 가지고 북경(北京)에 보냈다. 그 자문은 태종 때 받은 관복이 오래되어 때가 묻고 더러워서 깨끗하지 못하므로 다시 보내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는데, 그 안에 대홍유견포복이 있었다(『세종실록』 25년 12월 18일). 대홍유견포복은 중국에서 보내온 보자기로 세종 이후에는 보이지 않는다.

용례

朝廷使臣黃儼朴信翰林待詔王延齡鴻臚寺行人崔榮至 齎冕服及太上王表裏中宮冠服元子書冊而來 設山棚結綵備儺禮 上率百官 迎于西郊 至敬德宮受賜 禮畢 儼入內 傳冠服于靜妃出 上行禮 如太平館設宴 禮部咨曰 (중략) 大紅油絹包袱一條(『태종실록』 3년 10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