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사(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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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의 셋째 아들인 인평대군의 원당으로, 경기도 안성시서운산에 위치한 절.

개설

청룡사(靑龍寺)는 고려 원종대에 창건되어 대장암으로 불렸는데, 나옹 화상이 중건하고 청룡사로 고쳐 불렀다. 청룡사에 공양왕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었는데, 세종이 공양왕 무덤 곁의 암자로 이안하였다. 인조의 아들 인평대군이 자신의 원당으로 삼았다.

내용 및 변천

(1) 창건

경기도 안성시서운산에 소재한 청룡사는 1720년(숙종 46)에 나준(羅浚)이 지은 「안성서운산청룡사중수사적비(安城瑞雲山靑龍寺重修事蹟碑)」에 그 내력이 전해져 온다. 그에 의하면, 청룡사는 1265년(고려 원종 6)에 명본(明本) 국사(國師)가 창건하여 대장암(大藏庵)이라 불렀는데, 그로부터 약 100년 후 1364년(고려 공민왕 13)에 나옹(懶翁) 화상이 꽃비가 내리고 용이 오르는 것을 보고, 산 이름을 서운산이라 부르고 절 이름을 청룡사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2) 조선시대

청룡사에는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의 진영(眞影)이 봉안되어 있었는데 세종이 이를 고양현(高陽縣)의 공양왕 무덤 곁에 있는 암자로 이안(移安)하라고 명하였다(『세종실록』 19년 7월 17일).

조선후기에 이르러 광해군은 전답 50결과 절에 필요한 물품들을 청룡사에 하사하였다. 또한 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麟坪大君)은 청룡사를 원당으로 삼았는데, 대웅전 뒷산에 자리한 인평대군의 후손인 완천군(完川君)의 묘를 통해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당시 청룡사가 왕실과 매우 밀접하게 교류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존하는 청룡사 문화재 가운데 시왕상[十王像]은 1669년(현종 10)에, 대종(大鍾)은 1674년(현종 15)에, 감로왕 불화는 1687년(숙종 13)에 조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17세기에는 건물 중수 등의 큰 불사보다는 불상이나 불화 등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청룡사에 큰 불사가 있었던 때는 1720년(숙종 46)이었다. 청룡사 승려 사간(思侃)이 중심이 되어 대웅전, 관음전, 문수전 등을 중수하였는데, 당시의 중수 사실이 앞에서 언급한 사적비에 적혀 있다. 시주자 가운데 남자 신도를 의미하는 거사(居士)와 여자 신도를 의미하는 사당(舍堂)의 이름이 많이 등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후 청룡사는 쇠락하였던 것 같다. 설월낭주(雪月浪鑄)가 쓴 「청룡사대법당수보문(靑龍寺大法堂修補文)」에 의하면, 절이 황폐하여 대웅전만 남아 있는데 그나마 기둥이 부식되고 처마는 내려앉을 정도여서 영월천학(泳月天鶴)이 공덕주가 되어 1821년(순조 21)에 수리하였으며, 1878년(고종 23)에 대웅전 삼존상을 개금하고 불화를 조성하였다.

참고문헌

  • 사찰문화연구원, 『경기도Ⅰ』, 사찰문화연구원 출판국, 1993.
  • 금봉건, 「전통목조건축의 천연덕스러운 가구미-안성 청룡사 대웅전」, 『건축』42, 대한건축학회, 1998.
  • 황현정, 「조선후기 안성 청룡사의 佛事 후원자 연구」, 『지방사와 지방문화』1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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