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청(禮葬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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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과 여흥부대부인(驪興府大夫人)의 장례를 담당하였던 임시 기구.

개설

1897년(광무 1)에 대한제국이 성립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898년(광무 2) 1월 8일(양력)에 고종황제의 생모인 여흥부대부인 민씨(閔氏)가 훙서하자 예장청(禮葬廳)이라 부르는 임시 기구를 설치하여 상례를 치렀다. 그런데 상사가 끝나기 전인 2월 22일에 흥선대원군마저 훙서하였다. 이 역시 예장청을 설치하여 처리하였는데 곧 여흥부대부인의 예장청과 합설하였다. 합설된 규모는 당상(堂上) 2명, 낭청(郎廳) 4명과 기타 인원으로 이루어졌다.

설립 경위 및 목적

대한제국기 이전에는 예장도감(禮葬都監)으로 불렸다. 조선시대 인조대에 그의 생모인 연주부부인(連珠府夫人)의 상례가 대표적 사례이다. 이때에 인조는 예장도감을 설치하여 처리하도록 하였다. 조선시대 국상(國喪)은 왕과 왕후에 해당하는 대상(大喪)과 왕세자와 빈(嬪)의 소상(小喪)으로 구분된다. 대상의 경우 빈전도감(殯殿都監), 국장도감(國葬都監), 산릉도감(山陵都監)을 임시로 설치하여 상례를 주관하였던 반면 소상에는 빈궁도감(殯宮都監), 예장도감, 묘소도감(墓所都監)이 임시로 설치되었다. 도감은 특정한 일을 수행하기 위해 임시로 설치하는 비상설 기구이다. 사안에 따라선 도감보다 격을 낮춘 도청(都廳)이 설치되는 경우도 있으나 조선시대 국장에서는 도감이 맡았다. 연주부부인의 장례를 예장도감에 맡긴 것은 격을 높인 것이었다. 이에 반해 고종은 도감보다 격을 낮추어 흥선대원군과 여흥부대부인의 상례를 관장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예장청을 설치한 사례는 흥선대원군의 사례로 끝나기 때문에 이후 정례화되지는 못하였다.

관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