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군(負持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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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쌀 등의 물건을 운반하는 일꾼.

내용

민간에서 요역을 징발하여 관서의 물자를 수송하는 일 등에 동원하는 경우, 부지군(負持軍)이라 이름하는 경우가 있었다. 조선후기 도성의 주민이 부담하는 요역인 방역(坊役) 중에서 가장 괴로운 일로 여겨졌다. 짐을 나르거나, 왕의 거둥 시에 동원되는 일이 많았다. 부지군은 지방에서도 징발되었다. 1712년(숙종 38) 장령정필동(鄭必東)은 당시 통신사 일행의 방물(方物)을 서울로 수송하는 일에 부산첨사가 동원하는 부지군의 수가 1,000명이 넘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통신사 일행의 복물(卜物)은 각 고을로 하여금 말을 세 내어 운반하도록 하였으나, 그 외에 사람이 져서 운반해야 할 방물은 부지군 1,000여 명을 징발해서 멀리까지 운반하도록 하였으므로 지역민의 고통이 컸음을 지적하였다.

용례

掌令鄭必東上論事疏 略曰 臣居在通信使往來之路 其回還時貽弊郡邑 實是前古未有 信使方就拿命 雖身不騎馹 而從人所騎 專責驛路 卜物則令各邑 貰馬以運 上使三十餘駄 副使亦如之 各邑官吏四出 閭里勒取牛馬 以充其數 而獨其所持節旄 抛棄站上 爲郵官所拾得 追送於數日之程 從事行中所帶 盡載歸舟 故卜駄之數 臣未之詳 而蓋與上、副使一樣云 卜駄之外 亦有擔運之物 釜山僉使以方物負持軍五百名整待之意 移關列邑 而數外一千名 公然辦出 待候之際 動經旬日 所輸物件 多是龕櫳、櫃櫝之屬 而堅封厚裹 其不封鎖而爲人所目見者 則無非奇花異卉之類 凡此珍奇之品 民間皆認爲獻御之物 彼擅發過千之民 遠致千里之外 使怨歸朝廷 疑及聖德者 其罪可勝言哉 (하략) (『숙종실록』 38년 1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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