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국(繙繹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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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개혁 때 외국의 공문과 공적인 편지를 번역하던 외무아문 소속 부서.

개설

1894년 6월 외무아문(外務衙門)이 설치되고 그 산하에 번역국을 두었다. 번역국은 외국의 공문과 공적인 편지를 번역하는 일을 맡았다. 1895년 4월 외무아문이 외부로 개편되면서 번역국을 폐지하고 번역관(繙譯官)을 두는 것으로 축소하였다. 한편 대한제국기에는 1899년 8월 궁내부 산하에 외사과(外事課) 이외에 번역과(繙譯課)를 설치하였다. 이때의 번역과도 외국 문서의 번역을 담당하였다. 1900년 12월에는 궁내부 산하에 예식원을 설치하였고, 통신원 관제에서도 번역과를 두었다.

설립 경위 및 목적

1894년 6월 군국기무처는 조선 왕조 국가의 권력 구조를 변경하여 의정부와 궁내부를 분리하고 국가와 왕실의 권한을 구분하려고 하였다. 6월 28일에는 의정부를 중심으로 중앙 행정 기구를 전격 개편하고, 8개 아문 중 외교 통상을 담당하는 외무아문을 설치하였다.

외무아문은 이전의 예조(禮曹)와 1880년대 설치된 통리기무아문 계통의 업무를 인계받은 것으로 보인다. 외무아문은 교섭·통상 사무를 관장하며 공사(公使)·영사(領事) 등 외교관을 감독하는 중앙 관청이었다. 그 산하에는 총무국, 교섭국, 통상국, 번역국, 기록국, 회계국 등의 관서가 있었다. 번역국에서는 외국의 공문과 공적인 편지를 번역하는 일을 맡아보았다. 참의 1명, 주사 4명으로 구성되었다.

조직 및 역할

1895년 4월 1일부로 내각 관제와 7부 제도로 개편되자 외무아문은 외부(外部)로 개편되었다. 외부에는 대신관방(大臣官房) 외에 교섭국·통상국 2개의 국을 두어 외무아문에 있던 번역국은 폐지되었다. 대신 외부 소속으로 번역관을 두었다. 번역관은 2명 이하로 주임관(奏任官)이었고 문서 번역을 담당했다. 또한 3명 이하의 번역관보(繙譯官補)를 두고 판임관(判任官)으로서 번역관의 사무를 돕게 하였다.

변천

대한제국기에 들어와서 번역 사업은 외부에서 일부 담당하였으나 궁내부 산하에도 여러 기관이 설치되어 이를 주관하였다. 1899년 8월 24일 포달(布達) 50호로 궁내부 관제를 개정하며 궁내부 외사과를 설치하고 종목과를 없앤 다음 번역과를 설치하였다. 번역과에서는 외국의 문서 번역을 관장하였다. 번역과는 주임관인 과장 1명, 주임관인 번역관 2명, 판임관인 번역관보 2명, 판임관인 주사(主事) 4명으로 구성되었다.

1900년 12월 16일 포달 71호, 궁내부 관제에서 내사과를 문서과로 개칭하고 외사과·번역과는 폐지하고 예식원을 설치하였다. 예식원은 궁내의 교섭과 모든 예식, 친서, 국서·외국 문서의 번역 사무를 관장하였다.

1900년 12월 19일에는 칙령 52호 통신원(通信院) 관제에서 통신원 산하에 번역과를 둔다고 하였다. 이때 번역과는 제반 외국 문서의 번역과 국문·한문 서류의 외국어 번역 등을 맡았다.

참고문헌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 『일성록(日省錄)』
  • 『관보(官報)』
  • 송병기·박용옥·박한설 편저, 『한말근대법령자료집』1~4, 국회도서관, 1970~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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