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언(典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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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명부(內命婦) 종7품 궁관(宮官).

개설

내명부는 내관(內官)과 궁관으로 구성된 조직으로, 이 중 내관은 왕의 후궁이며 궁관은 여관(女官)으로 지칭되던 궁녀 조직이다. 궁관은 왕의 시위와 궁중 실무를 맡았으며, 이 중 전언(典言)은 왕 혹은 왕비 등 웃전의 말씀을 전달하거나 또는 아뢰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종7품 궁관이며 상궁(尙宮)을 보좌하였다.

담당직무

전언의 직무는 선전(宣傳)과 계품(啓稟)을 담당하는 것이다. 즉, 모시는 웃전의 말씀을 아래로 전하거나, 반대로 웃전에게 말을 올리는 일을 담당하였다. 말을 전하는 것이 전언의 주된 임무였다. 전언은 내명부 궁관 중 가장 품계가 높았던 상궁을 보좌하였다. 상궁이 왕비를 보좌하고 궁궐의 업무를 총괄하는 중에 말을 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에 그 직속 궁관으로서의 전언의 역할도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언은 국가와 왕실의 의례가 시행될 때에도 주로 말을 전달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왕비가 조하(朝賀)를 받을 때에 전언은 왕비의 좌석 앞에 꿇어앉아 조하를 올리는 주체, 즉 왕세자나 왕세자빈 혹은 내·외명부의 치사(致詞)를 왕비에게 전하는 역할을 맡아하였다. 왕비의 가례에서도 책봉한다는 교명을 상궁이 받아 왕비에게 전해주면 왕비는 이를 받았다가 전언에게 전하여 주었다. 돌아가신 왕비나 세자빈에게 시책이 주어질 때에도 전언은 시책을 올려놓을 책안을 향안(香案) 앞에 놓고, 상궁이 책(冊)을 읽은 후에 이를 영좌 옆에 놓는 일을 하였다(『세종실록』 28년 6월 23일), (『영조실록』 28년 1월 11일). 국상 중에는 진향의(進香儀)·계빈의(啓殯儀)·조전의(祖奠儀)·견전의(遣奠儀)가 시행될 때 축문(祝文)이나 전문(奠文)을 읽는 임무를 담당하였다.

변천

세종대 내관과 궁관 제도가 만들어졌을 때에는 정7품으로 인원은 1명으로 규정되었다(『세종실록』 10년 3월 8일).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종8품으로 관품이 변경되어 법제화되었다.

참고문헌

  • 『경국대전(經國大典)』
  •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 한우근 외 역;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인문연구실 편, 『(역주)경국대전: 주석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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